조금 다른 자기계발 이야기 - 세번째 이야기
초등학생 시절에 우주소년단이라는 서클활동을 했고 그 덕분에 5학년 때 계룡산 야간산행을 한 적이 있다. 목표는 별자리 관측이었다. 가을이었고 9시부터 등산을 시작해서 정상에 도착했을 때의 시간은 대략 밤 12시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아이들과 함께 오셨던 부모님들까지 합치면 거의 100명이 이동했었고, 랜턴을 달고 마치 광부들이 석탄을 캐러 가듯 길을 밝히면서 산을 올랐었다. 한참을 오르다보니 널찍한 분지가 있었고 그곳에서 우리는 하늘 가득한 별들을 만났다.
장관이었다. 모래를 양손에 가득 움켜쥐고 힘껏 하늘에 뿌려서 그 모두가 알알이 박힌다고 해도 눈앞에 보이는 별보다는 그 숫자가 적을 것 같았다. 생에 처음으로 자연에 압도되었던 순간이었던 것 같다. 쏟아지는 별빛만으로도 길이 밝아 보인다는 생각이 들만큼 하늘 가득 별밭이었다. 그런 압도적인 광경을 태어나서 처음 본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학생들 모두에게 너무나도 인상적이었고, 모두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었다. 학생들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선생님들과 부모님들도 연신 감탄했다. 우리나라 하늘에 이렇게 많은 별이 보이는지 몰랐다는 말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물론 그 날의 광경만으로도 멋있었지만 사실 그 날을 이렇게 선명하게 기억하는 이유는 선생님의 말씀 한마디가 가슴에 남았기 때문이었다.
“저 수많은 별들 중에 분명히 여러분들의 별이 있어요. 잘 찾아보세요. 어떤 별이 맘에 들어오는지 유심히 잘 봐요. 그리고 정말 중요한 건, 그 바로 옆에 여러분의 꿈도 함께 있다는 사실이에요. 잘 찾아보세요. 그 별 옆에 여러분의 꿈이 잘 있는지.”
어린 나이였던 내게도 너무나도 멋있는 말이었다. 내 별이 저렇게 찬란히 빛나고 있다니, 그리고 내 꿈도 그 옆에서 함께 빛나고 있다니. 환하게 웃었다. 너무나도 즐거웠다. 그렇게 그 날의 기억은 멋진 추억으로 가슴에 남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기억은 작아지게 마련이었다. 입시를 치르고 대학을 다니면서 방황할 동안에는 단 한 번도 하늘의 별과 내 꿈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서울의 하늘이 워낙 오염되어서 별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핑계대고 싶다. 아마 하늘 가득 별이 빛났다면 그러지 않았을 거라고 말이다.
그렇지만 그건 말 그대로 핑계일 뿐이었다. 괜히 회피해보고 싶었을 뿐, 모든 책임은 고스란히 내 몫이었다. 그것이 누군가의 강요였건 자신의 무관심함이었건 말이다. 어떤 이유이었던 간에 나는 내 삶이 그저 흘러가는 것에 동의했었다. 능동적이었건 수동적이었건 내가 선택한 것임을 부인할 수 없었다. 당연하게도 그 때부터는 내 앞에 놓인 삶이 아프게 느껴졌다.
내가 품어야 할 현실에는 따끔거리는 가시가 돋아 있었다. 무언가 해야 할 목표가 생기면 그 가시를 참을만 했다. 어쩌면 참을만하기 보다는 잠시 잊을 수 있었다는 것이 더 적확한 표현일 것 같다. 그렇게라도 잠시나마 아프지 않고 싶었다.
그래서 한 가지 목표를 이루면 또 다른 목표를 찾으려 했다. 가끔은 몇 단계의 연속된 목표를 잡기도 했다. 그러나 점점 그런 시간들에도 내성이 생겼다. 짧은 목표를 가지고 있는 탓에 성실하게 살아갈 수는 있었지만 꿈을 가지지 않은 탓에 가슴이 뛰는 일은 많지 않았다. 나중에는 몇 달을 노력해서 자격증을 따도 전혀 기쁘지 않았다. 자괴감만 켜켜이 쌓여갔다.
어느덧 나는 목표를 향해 삶의 방향을 트는 것이 아니라 삶이 가는 방향에 맞춰서 목표를 잡고 있었던 셈이다. 등대를 보고 항해하고 있는 배가 아니라 배의 전방에 등대가 있는 듯 살려고 했다. 삶이 어긋나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자 현실이 다시 나를 아프게 찔러댔다. 그래도 그 즈음 새로운 도피처가 생겼다.
갓 태어난 딸아이가 웃으면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삶의 가시가 무디어진 듯 했다. 이 아이만 웃게 해줄 수 있으면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서글펐다. 그나마 이전에는 내 삶에서의 목표들로 아픈 것을 잊었다. 그러나 이제는 나 자신도 아닌 아이에게로 도망쳤을 뿐이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부모들이 자식을 위해 자신의 삶을 묻어두게 되는 것임을 알았다. 나뿐 아니라 나의 아내까지 그렇게 될까봐 두 배로 서글퍼졌다. 혼란스러웠다. 탈출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 때 내 삶에 모래폭풍이 몰아쳤다. 나를 지탱하던 가족을 떠나서 말 그대로 모래폭풍이 부는 중동의 사막에서 객지 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
며칠간 적응 못하고 헤맸다. 겨우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사막 한가운데 서 있었다. 살아있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곳이었다. 눈길이 닿는 모든 곳이 모래뿐이었다. 그 안에서 고스란히 혼자였다. 사막의 어딘가에 덩그러니 놓인 모래처럼 혼자였다. 숨이 막혔다. 그렇게 며칠이 흘렀다. 우연히 저녁 늦게 사무실에 들러야할 일이 있어서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깜짝 놀랐다.
수많은 별이 빛나고 있었다. 어릴 적에 보았던 많은 별은 아니었지만 그 시절의 그 순간으로 나를 이끌어 주기에는 충분할 만큼이었다. 그렇게 한참 별을 올려다보고 있다 보니 선생님이 해주셨던 말씀의 뒷부분이 생각났다.
“별똥별을 보고 소원을 빌면 그 소원이 이루어지는 이유를 여러분은 알고 있나요? 잘 모르면 선생님이 가르쳐 줄 테니 잘 들으세요.”
모든 학생들의 눈이 반짝였다.
“별똥별이 흔들리다가 떨어지는 데에는 2-3초의 시간밖에 들지 않아요. 그 사이에 자기의 꿈을 말할 수 있다면 항상 그 꿈을 마음에 품고 있다는 이야기에요. 그래서 여러분은 여러분이 바라는 소원을 항상 마음에 품고 있어야 해요. 밥 먹을 때도 학교에 갈 때도 말이에요. 그리고 특히 밤길을 걸을 때는 항상 생각하고 있는 게 좋겠지요? 별똥별이 떨어질 때 그 기회를 놓치면 안 되니까요.”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나서, 그리고 지구를 반 바퀴 돌아서 온 쿠웨이트의 하늘에서도 별은 그대로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나에게 아직 소원을 빌 시간이 남아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이라는 생각에 안도감도 느껴졌다. 당연히 거기 있는 건데 왜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인지 조금은 우습다는 생각도 동시에 들었다. 맞다. 별은 당연히 거기 있는 거다. 그리고 내 꿈도 변하지 않고 함께 있다. 단 한 번도 꿈이 나를 외면한 적은 없었다. 내가 바라봐 주지 않았을 뿐.
그랬다. 별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다. 구름에 가려서 보이지 않을 때도 있고, 공기가 탁해서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히 그 자리에 있었다. 나만 그것을 의심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었다.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선명하게 보였던 순간을 기억하고 그 존재를 의심하지 않으면 될 일이었다.
모래위에 털썩 앉았다. 두 손을 뒤로 짚고 한참동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손 안에 고운 모래를 한 가득 쥔 채로 어릴 적의 꿈을 떠올렸다. 나는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사람이고 싶었다. 그 생각만으로도 훨씬 행복해졌다. 그리고 멋진 글을 쓰고 싶었던 꿈도 다시 만났다. 그저 떠올린 것만으로도 한참을 즐겁고 행복했다. 손 안의 모래를 힘껏 하늘로 흩뿌리듯 내던졌다.
언젠가는 어린 시절에 만났던 그 하늘에 있었던 많은 별들을 한국에 돌아가서도 다시 만나길 기도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