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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pc민코치 Apr 10. 2020

미국으로 떠나서 알게 된 것들

나를 이끌어준 삶 속의 메시지들 - 7


 2015년 초에 결재를 진행했다. 2015년 6월에 일주일간 코치 인증 교육을 받는데 거의 1,500만 원이 들어가는 것이 확정되었다. 결재를 하고 한동안 자다가 깨곤 했다. 내가 미친 것이 아닐까 싶었다. 그전까지 내가 지불했던 제일 비싼 강연이 2,000불이었다. 그것도 브랜든의 강연이었다. Expert Academy. 백만장자 메신저라는 책의 교육과정이었다. 한 230만 원 정도였던 셈이었다. 그 과정을 신청할 때도 정말 심사숙고했었고 쉽게 결정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1,500만 원이라니. 정말 무시무시한 금액이었다. 만약 강연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걱정이 너무 컸다. 그때였다. 브랜든 팀에서 다시 연락이 왔다. 코치 이수를 하다가 2일째까지 듣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아무것도 묻지 않고 바로 환불 처리해주겠다고 약속했다. 충격적이었다. 이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대신 그때부터는 마음이 편해졌다. 일단 가보자. 정말 아니면 그때 가서 환불해달라고 하면 되지 뭐.     

 사실 이전까지 나의 공부 방식은 조금 치사했다. 깊이있게 배움을 이어간 적이 없었다. 이 정도면 남들이 잘한다고 하겠다 싶으면 그 정도에서 멈췄다. 그 이상의 목표가 없었다. 남들이 어느 정도 부러워할 대학에 가고, 어느 정도 부러워할 회사에 입사하면 충분했다. 남들의 인정 또는 칭찬. 그것이 내 행동의 기준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최대한 배우고 싶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깊이있게 배우고 싶었다. 코칭 교육이 어찌 진행될지는 몰랐다. 하지만 적어도 앞에서 강사가 하는 말은 제대로 알아들을 수 있어야 했다. 그래서 브랜든의 영상들을 반복해서 들었다. 그 사람이 말하는 것은 아무리 빨라도 알아들을 만큼 귀에 익숙하게 해놓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1,500만원이라는 비용이 주는 마음가짐이 어마어마했다. 이래서 돈을 들여서 배워야 제대로 배운다고 하는구나 싶었다. 자면서도 틀어두고 자고, 현장에 나갈 때도 듣고 다녔다.      

 그렇게 교육을 준비하던 중 쿠웨이트 부임 2년 4개월 만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현장 소장은 좀 더 있기를 바라는 입장이었지만 내 의사는 명확했다. 둘째 아이가 태어났을 때의 사건을 겪었을 때부터 회사의 기본 규정만 채우기로 마음먹었다. 더 이상 그곳에서 머물고 싶지 않았다.     

 처음으로 찾아갔던 코치 인증 교육은 샌프란시스코 인근의 산타클라라라는 지역이었다. 멋들어진 호텔 입구에 안내 표지판들이 서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등록을 하고 있었고 나도 그 틈에 끼었다. 이 곳에 온 사람들은 대부분 성격이 활발했다.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툭하면 인사를 받았고, 그때마다 한참을 서서 떠듬떠듬 영어로 이야기를 해야 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한국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반갑게 말을 걸어오는 경험을 한 적이 없었으니까.

브랜든의 말은 알아들을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말은 쉽지 않았다. 고작 등록하고 방으로 돌아왔을 뿐인데 힘이 쪽 빠졌다. 내일부터 있을 교육이 정말 쉽지 않을 거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너무 많이 힘들었던 탓에 시차 문제없이 잠을 깊이 이룰 수 있었다.     

 다음 날 아침 미리 받은 명찰과 팔찌를 차고 교육장에 들어갔다. 신나는 음악이 크게 틀어져 있었다. 하지만 그 음악을 즐길 정신은 없었다. 책상 위에 놓여있는 폴더와 인쇄물들을 보니 바짝 긴장이 되었다. 자리에 앉아서 굳을 얼굴로 책상만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진짜 여기를 왔구나. 그런데 이 분위기는 뭘까.


 내 머리속의 세미나장과는 전혀 달랐다. 이 곳은 강연장이 아니라 축제가 이루어지고 있는 공연장의 느낌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메인 스테이지 부근에 모여서 음악에 맞춰서 춤을 추고 서로 바라보면서 웃고 있었다. 그야말로 문화 충격이었다. 저 사람들도 나와 같은 수업료를 내고 온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왜 저들은 즐겁고 나는 심각한 걸까. 그냥 내 영어 실력이 모자라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도 틀린 생각이었다. 전 세계에서 사람들이 모였다 보니 나보다도 영어를 더 못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런데 그 사람들도 즐겁게 어우러져 있었다. 그냥 내 마음에 즐겁고 여유로운 틈이 없었던 것이었을 뿐이었다. 그런 생각이 이어지고 있는데 브랜든 버처드가 무대 위로 나왔다. 그러고는 정말 쉴 새 없이 무대 위를 뛰어다녔다. 강연장은 열광의 도가니로 바뀌었다. 마치 가수 싸이의 공연장에 온 느낌이었다.

(이 동영상은 2020년의 HPX 영상입니다. 위에서 말한 2015년 영상은 별도로 찍지 않아 이 영상으로 그 분위기를 전해드립니다.)


 처음에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쉬는 시간이 끝나고 새로운 강연이 시작될 때에는 신나는 음악을 틀어놓았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다들 박수를 치면서 자리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또한 강연이 길어질 때마다 중간에 일으켜 세웠다. 어떻게 긴장을 풀고 몸의 에너지 레벨을 유지하는 지를 직접 가르쳐주었다. 그래서인지 하루 종일 앉아있었으면서도 많이 피곤하지 않았다. 50분마다 한 번씩은 자리에서 일어나게 하는 느낌이었다. 그 덕분이었을까. 시차 문제로 인한 피로는 거의 없는 편이었다. 

 그리고 수강생들이 지루해지지 않게 하기 위한 노력들도 많이 했다. 옆 사람과 하이파이브를 하는 액티비티나, 허그를 하게 하는 액티비티도 자주 넣어서 강연이 금방 금방 흘러가게 했다. 참 좋은 수업 방식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수업은 오전 9시부터 저녁 7시까지 쉴 새 없이 이어졌었다. 그리고 대부분이 롤플레이였다. 즉, 모르는 사람과 단 둘이 앉아서 서로를 코칭해주는 방식이었다. 한국에서 준비해온 것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이었던 셈이다. 코칭을 한국말로 해도 쉽지 않을 상황이었다. 태어나서 이렇게 식은땀을 흘리면서 대화를 이어가 본 적은 없었다. 점심시간도 두 시간이었다. 다른 사람들과 친하게 알고 지낼 시간을 준다는 이유였다. 숨이 턱턱 막혔다. 1:1로 이야기할 때도 온 집중을 해야 겨우 알아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원형 식탁에 앉아서 다 같이 이야기를 시작하면 아무것도 못 알아들었다. 대화 중간에 누군가가 끼어들고 다시 건너편에서 누군가가 말을 시작하면 그걸로 끝이었다. 밥이 어떻게 속으로 들어갔는지도 모를 정도였다고 나 할까. 그러고 나서 오후에 다시 영어로 코칭이 이어졌다. 정말 하루가 너무나도 길고 길었다. 특히나 전 세계의 지역별 발음들은 나를 좌절시켰다.

 강연이 모두 마무리되고, 저녁 먹을 생각도 없이 방으로 돌아왔다. 얼른 내용을 정리해야 덜 잊어버릴 거라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같이 밥 먹고 싶은 사람도 없었다. 끝나면서도 이곳에서 새로 만난 사람들끼리 같이 밥 먹으면서 친해지라고 하는데, 하루 종일 집중해서 강연을 듣고 나니 저녁 먹으면서도 영어를 듣고 말하기는 싫었다. 더구나 식당 안이 사람들로 바글바글 했기 때문에 옆사람이 하는 소리도 듣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렇게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내 결심을 합리화했다. 그러고는 방으로 돌아와서 하루를 가만히 돌아보았다. 


 우선, 이 곳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나보다 여유가 넘쳤다. 영어를 잘하고 못하고는 문제가 아니었다. 삶을 대하는 자세가 달랐다. 어떻게든 더 즐거울 수 있는 방향으로 현실을 인식하고 있었다. 나는 왜 그런 마음을 가지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강연 중간에 정말 흥미로운 질문이 하나 있었다. 경제적인 자유를 가진 사람들은 손을 들어보라고 했다. 전체 인원 중에 약 1/4 정도가 손을 들었다. 하긴 만불이라는 교육비를 내고 오는 사람들 중에는 그런 사람들이 있을 가능성도 있겠지. 그런데 대체 어느 정도로 돈을 벌면 경제적인 자유를 가졌다고 하는 걸까? 옆 사람에게 슬쩍 물었다. 돈이 얼마나 있어야 경제적인 자유를 가진 거냐고. 그러자 아주 간단하지만, 깜짝 놀라게 한 답이 돌아왔다.      


“사고 싶은 것은 그 자리에서 사는 정도로 보면 되죠. 그 대상이 자동차나 집이나 뭐 작은 건물 밭.. 그런 것들?”     

사고 싶으면 그 자리에서 집도 살 수 있다니.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대체 이 많은 사람들이 무슨 방법으로 그런 부자가 되었을까. 그리고 그렇게 돈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왜 와있는 것일까. 그래서 경제적 자유를 이루었다는 사람에게 가서 물었다.     


“조금 전에 경제적인 자유를 이루었다고 손을 들으셨던데요, 우선 멋지시네요. 정말 축하드립니다. 그런데 그만큼 부유하시면서 코치가 되는 교육에는 왜 오신 건가요?”     


“돈을 많이 벌고 보니, 부유하다는 것이 생각만큼 큰 의미를 가져다주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삶의 의미를 더해줄 수 있는 일을 찾아보려고 하다가 이렇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어요.”     


머릿속에 또다시 그 세 단어가 떠올랐다. Live, Love, Matter. 아무리 부유해도 그에 대한 답을 찾고 싶은 거구나. 결국 돌고 돌아서 사람들이 가지게 되는 질문이 저것이라면, 여기까지 온 것은 잘한 일이 맞기는 한 것 같았다.     

일단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고 나니, 그 이후의 일정은 생각보다 잘 버텨냈다. 코칭 인증을 받게 되어 참 뿌듯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결국 모든 사람이 삶의 의미를 찾아서 계속 무언가를 찾아다니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 더 큰 소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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