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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oni Aug 09. 2022

MZ세대 팀장의 술 처방법

 대부분의 사람들이 쉽게 그려질 8-90년대 우리네 아버지들 모습 중 하나가 있다. 퇴근 후, 검은 비닐봉지 속 짤랑이는 초록병들과 딸, 아들을 위한 아이스크림을 흔들며 집에 오셔서는 안주와 함께 병뚜껑을 돌려 술을 즐겨 드시던 풍경.  


요즘의 MZ세대들에게는 빨간 두꺼비가 그려진 초록병의 소주 대신 위스키, 와인, 수제맥주, 프리미엄 소주, 논알콜 맥주등의 다양한 ‘술’이 대세다. 꼭 MZ세대뿐만이 아니라 홈술과 혼술족이 늘면서 특히 다양한 주종을 즐기는 주(酒)류가 위스키, 와인, 프리미엄 소주 시장의 급격한 매출 상승을 리드하고 있었다.  


 미나 또한 그 주류가 된지 오래였다. 

갓 스무살을 넘긴 어느날, 사촌 오빠들과 눈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도록 술게임을 하면서 술을 진탕 마시고는 고모 댁에서 잠을 잔 적이 있었다. 전날 과음으로 퀭한 얼굴을 하고 일어났다가 사촌오빠가 사다준 컨디션 한 병을 원샷했지만 결국 아침부터 화장실 변기를 부여잡고 있는 미나를 보고 미나의 고모가 하던 말씀이, “으이고~ 이 아가씨야 술을 그래 마시면 우짜노! 쯧쯧 밀양 박 씨 피가 어디 가나~!” 였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20대 초반에는 회사 동료들, 친구들 가릴 것 없이 또 한 잔을 기울이면서 사회초년생의 생채기를 알코올로 치료하기도, 혹은 영업사원이자 인사팀원으로, 내외부 고객들과 잔을 부딪히며 일을 논하기도 했더랬다. 


 이제는 어느덧 주(酒)계에 입문한지 10년은 훌쩍 넘고 15년이 되어, 그간 쌓은 내공으로 상황별 힐링 술과 맞춤 안주를 딱딱 생각해내내는 미나다. 


  그 안에는 수많은 궁합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요즘 자가처방이자 힐링용으로 가장 많이 애정하는 주종은 와인이다. 주황빛 조명에 잔잔한 재즈 선율의 노래를 선곡하고, 와인 한 병을 따서 남편과 거실 다이닝테이블에 둘러 앉아 이런 저런 안주와 함께 얘기를 나누다 보면 하루의 피로가 금새 씻겨져 내려갔다. 그런 날에는 TV도 영화도 유투브도 다 필요 없었다.


“처음 팀장이 되고 나서는 그렇게 한참을 집 앞 편의점 앞에서 먹는 매운 안주에 소주만 땡기더니, 참 신기해. 매운 맛 팀장에서 와인 안주의 느끼한 맛 팀장으로 진화하는 시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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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인은 미나가 가끔 혼자 조용히 시간을 보내고 싶을 때도 안성 맞춤이었다. 소주는 그래봐야 종류가 열 가지가 넘어가지 않고 맛도 비슷한데, 와인은 포도 종류, 원산지 종류만 해도 셀 수 가 없을 만큼 다양하니 이것 저것 비교하고 알아보며 먹는 재미가 꽤나 쏠쏠했고 머리아프던 고민도 잠시 잊혀졌다. 


 처음엔 와인에 대해 멋모르고 시작했지만 그렇게 몇 년을 한 병, 두 병 사 모으려 와인가게와 마트를 들락날락하고 이 책 저 책을 뒤지다 보니 꽤나 잘 맞는 와인도 알게 되고 그 다음부터는 퇴근 후, 친구들과, 남편과, 가족들과의 상황별 술 처방에도 점점 노하우가 생겨갔다.


 결국 결혼 몇 년 만에 코로나를 마치고 겨우 가게 된 유럽행 신혼여행에서도 3주라는 시간 동안 이탈리아 한 나라만을 여행하면서 북부, 중부, 남부의 지역 와인이란 와인은 최대한 맛보겠다고 난리부르스를 쳤더랬다.  뭐, 결국엔 많이 먹어보다 보니 감이 늘었다.


 “스읍-“

 그런 의미에서 미나는 오늘도 열심히 투명한 유리잔 속 찰랑이는 검붉은 보랏빛 액체를 흔들며 향을 맡고 있다. 마치 소믈리에라도 된 냥 와인을 이리 굴리고 저리 굴려가며 조명에 비추어 색도 보고, 향도 맡고, 맛도 보면서 온전히 와인을 느껴보고자 하는 것이다. 


 연희동에는 책 바가 있다. 조용히 독서와 함께 위스키나 칵테일을 한 잔 하면서 힐링할 수 있는 공간으로 꽤 유명하다. 미나도 언젠가는 자신를 찾아와 고민을 털어놓는 사람들에게 딱 맞는 와인과 안주를 권하며 그들에게 힐링같은 조언과 코칭을 선사할 날을 그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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