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 전자레인지 요리에 대해 이야기하던 내게 직장 동료가 물었다. 여름은 집밥 애호가인 나조차도 요리하기 싫어지는 계절이다. 안 그래도 더운데 한 끼 먹자고 불 앞에서 낑낑대고 나면 에너지를 모두 소진하고 만다. 한 칸 자취방에서 가스불을 쓰게 되면 음식 냄새가 온 방을 뒤덮는다. 뜨거운 실외기 공기 때문에 환기할 수 없는 건 덤이다. 여름에도 삶의 질을 지키기 위해 전자레인지 요리로 간단히 식사를 해결한다.
공식 첫 요리는 바로 고기 야채찜이다. 원래 냄비로도 고기와 야채를 쪄먹곤 했는데 전자레인지로도 조리할 수 있다는 걸 유튜브를 보고 처음 알게 됐다. 냉동 대패 삼겹살 뭉텅이를 툭툭 쳐 일부를 꺼낸다. 고기가 녹을 동안, 야채를 씻어 물기를 빼둔다. 돌돌 말린 채 녹아 있는 대패 삼겹살을 펴 키친타월로 핏물을 툭툭 닦고, 야채와 고기를 번갈아가며 쌓는다. 길게 자른 버섯에 고기를 말아 쪄도 좋다. 소금 후추로 간하고 전자레인지에 돌려 참소스를 찍어 먹는다.
이렇게 불도 쓰지 않았는데 그럴싸한 식사를 할 수 있어서 전자레인지 요리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전자레인지 요리는 1인 가구에게 적합한 요리법이다. 보통 숙주 한 봉지, 알배추 하나는 1인 가구에게 많기에 두 번 정도 나누어 먹으면 된다. 무엇보다도 설거지감이 적게 나와 정리까지도 수월하다. 평소 같으면 밥 먹고 설거지를 쌓아둔 채 누워버렸을 텐데, 요리도 힘들지 않았고 설거지 거리도 적으니 뚝딱 해버리고 만다.
뚜껑 없는 내열 유리 용기에 손에 집히는 접시를 뚜껑 삼아 요리하다 보니 전자레인지 전용 실리콘 용기에 눈이 간다. 용기까지 구입하니 유튜브 알고리즘이 나를 전자레인지 요리의 세계로 인도한다. 오트밀 참치죽, 양념 명란 덮밥, 양배추찜, 리소토, 가지 덮밥 등 다양한 요리를 시도한다. 참신한 전자레인지 레시피들을 찾아보곤 하는데, 사람들은 전자레인지로 국도 끓이고, 수육, 만두, 비빔밥도 만든다. 난 아직도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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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툭하면 야근을 했다. 일을 싸들고 돌아오기도 일쑤였다. 퇴근 후 진이 다 빠져 무기력하게 누워 있다 보면 2시간이 금세 갔다. 일에 모든 에너지와 시간을 쓰고 나면 나를 위한 에너지는 남지 않았다. 피곤한 탓인지 자잘하게 아팠다. ‘새롭게 하는 일이니 올해는 실수만 없게 하자.’라는 마음으로 버텼지만 나는 사라진 것 같았다. 일이 나를 잡아먹었다.
전자레인지 요리를 시작한 뒤 저녁 시간이 조금은 가벼워졌다. 그래서 더 생산적으로 시간을 보내게 됐냐고 묻는다면 그렇지는 않다. 다만 먹고사는 일이 조금 덜 버거워졌고, 충동적으로 배달을 시킬 일이 줄었다. 먹는 노동에 잡아 먹히지 않고 숨 쉴 틈이 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