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표 택배가 왔다. 불고기, 호두 멸치볶음, 밭에서 직접 기른 갓으로 담근 김치, 4개의 지퍼백에 소분되어 온 누룽지, 피카추 돈가스, 커다란 김자반, 한 끼 분량으로 먹기 좋게 포장된 세 종류의 생선, 직접 따신 듯한 감이 담겨 있다. 냉장고에 잘 넣은 후 제일 먼저 하는 일은 김치를 꺼내서 먹어보고 감탄하는 일이다.
“여보 이거 봐. 생선이 세 종류나 돼”
“와 이번 김치도 진짜 맛있다. 어머니 완전 김치 명인이시네.”
손질되어 온 모양을 보면 얼마나 신경 써서 챙겨 넣으셨는지가 보인다. 시어머니는 주변 사람들을 살찌우는 요리 솜씨를 갖고 계신다. 결혼하고 첫 명절인 이번 추석에도 음식이 잔뜩 차려져 있었다. 음식을 잘하시기도 하시고 자식들 먹이시는 기쁨을 무엇보다 크게 느끼시는 분이시다. 그래도 손목이 아프신 어머니께서 저 많은 음식을 혼자 차리신 게 마음이 안 좋았다. 설거지라도 하려고 남편과 함께 손에 물을 묻히자마자 시어머니께 적발되었다. 차마 내 손은 때리지 못하시고, 남편 손을 탁 때리면서 둘 다 나가라고 하셨다.
우리 부모님은 본가가 아닌 먼 타지에서 생활하시다가 명절이나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만 올라오신다. 시댁에 있다가 친정에 가는 일정이었는데, 시어머니께서 손수 만드신 전, 게장, 소갈비찜, 김치, 식혜를 큰 장바구니 두 개에 넘치도록 싸주시면서 말씀하셨다.
“부모님이 멀리서 오셔서 음식 장만하기 어려우실 거야. 이거 갖고 가서 이번 명절에 친정에서 먹어. 너희들 먹을 김치는 택배로 따로 보내줄게”
덕분에 장만을 하지 않고도 친정 식구들과 풍족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그렇게 명절이 지나고 시어머니로부터 택배가 온 것이다. 친정 식구들까지 챙겨주신 시어머니의 따스함 덕인지 이번 택배가 더 귀하게 느껴진다. 절대 버리지 말고 다 먹어야지라는 비장한 마음까지 든다.
나머지는 잘 먹을 것 같은데, 감은 둘 다 잘 먹지를 않아서 고민하다가 감말랭이를 만들었다. 그냥 감은 안 먹지만 곶감이나 감말랭이는 잘 먹기도 하고 오래 보관할 수도 있으니 감말랭이 만들기에 돌입했다. 감을 깎고 씨를 빼고 적당한 크기로 썬다. 겉은 쫄깃하지만 안은 촉촉하고 달콤했던 감말랭이를 떠올리며 레시피를 뒤적거린다.
깎아놓고 보니 두 번은 해야 할 것 같다. 두 번을 해야 하니 시간이 짧게 걸리는 레시피를 선택했다. 오븐에 180도로 30분 돌리고 뒤집어서 40분을 추가로 돌린다. 나름 감말랭이의 모양은 갖췄지만 안이 서걱거린다. 더 돌리면 겉이 탈 것 같고, 마음이 급해 다음 판을 만든다. 다음 판을 돌리는 동안 첫 판에서 나온 감말랭이를 실온에 둔다. 잠시 두니 감말랭이에 촉촉하게 당분이 올라온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만든 감말랭이는 서걱거리지만 못 먹을 정도는 아니다. 다음에는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저온에서 오래도록 건조해야겠다. 썩혀서 버리는 것보다 낫다고 스스로를 위로한다.
김치가 맛있다고 너무 호들갑을 떨어서였을까. 어느 날 남편이 이런 말을 했다.
“혼자 자취하던 시절에는 반찬을 별생각 없이 반찬을 받아왔는데 여보 덕분에 당연한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됐어.”
두 명이서 사니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더 다채롭다. 신혼인 우리가 진정한 가족이 되어가는 이 시기에 중요한 건 무형의 가치들을 차곡차곡 쌓아나가는 일일 것이다. 소박한 이유로도 감사하며 삶을 풍성하게 살아갔으면 좋겠다. 음식을 나누는 어머니의 손길에는 많은 게 담겨 있다.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라는 가르침이 먼 데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