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해야 함을 아는 날
머릿속은 늘 분주하다.
작은 바람에도 낙엽들이 우수수 흩날리듯 찰나의 시간 수많은 생각들이 어깨 위로 스치며 떨어진다.
온갖 감정들도 마음에 내려앉는다.
그런 날이 있다.
머릿속을 파고드는 생각에 유독 깊게 잠식되어 버리는 순간들을 품은 날.
세찬 바람에 떠밀려 하늘을 무서운 속도로 덮어버리는 회색 구름처럼, 기억의 편린들이 가슴 구석구석을 뾰족하게 파고든다.
‘아, 내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구나’라며 알아차리는 순간. 이미 기억과 생각들로 인한 감정 안에서 한껏 웅크리고 있는 초라한 내 모습이 보인다. 마주하고 싶지 않은 내 모습.
무릎에 얼굴을 깊게 파묻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이 축축하고 어둡고 추운 곳에서 어떻게 빠져나가지...’
벗어날 궁리를 하면 할수록 감정의 호수는 한없이 깊어진다.
검은빛이 되어버리다 금세 늪이 된다.
도망가고 싶다는 허우적거림은 온몸에 힘이 빠지고 나서야 멈춘다.
‘괜찮아 괜찮아... 아니. 괜찮지 않아 나는 지금 괜찮지 않아. 괜찮지 않아도 돼. 그래도 돼.
문득 떠오르는 작은 감정에도 눈물이 나고 심지어 거대한 슬픔의 파도에 휩싸여도 괜찮아.
나약한 내 모습이 싫다는 미움의 몸부림도 괜찮아. 자책조차도.
그 어떤 모습이라도.’
나는 가라앉지 않았다.
밀어내고 숨기고만 싶었던 감정들이 손을 내밀어줌을 안다.
포근히 안아주고 마음을 어루만져준다.
그래. 언젠가는 마주해야 할 너희들이지.
오늘은 문득, 그런 날이다.
몸과 마음에 힘을 빼야 하는 날.
나를 있는 그대로 안아줘야 하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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