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n in Lowland May 22. 2020

유일무이한, 엘렌 보스.

KABK의 비주얼 디벨롭먼트 수업에 대해.

세상에서 내가 제일 무서워하는 선생님 두 분이 있다. 한 분은 한국에, 한 분은 네덜란드에.



그녀가 지나가면 모세가 홍해를 가르듯 길이 열렸다.

꼿꼿한 자세와 단호한 하이힐 걸음걸이. 레진 코팅을 한 듯 빳빳한 펜슬 스커트. 잔머리 하나 없이 헬멧같은 올림머리. 메두사가 질겁해 도망갈 안광. 눈물이 주룩주룩 나올 수 밖에 없던 악명 높은 ‘비주얼 디벨롭먼트’ 수업의 절대 군주.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모두가 좋아했던 선생님.


그녀는 엘렌 보스 Ellen Vos였다.






2013년 9월 2일 월요일, 오전 8시 55분. 아직도 나는 그 순간을 몇분 전 일 처럼 생생하게 기억한다.



KABK에 와서 가장 놀랐던 것 중 하나는 수강 신청 시스템이 아예 없다는 것이었다. 내가 듣고싶은 수업을 정해서 듣는 것이 아니었다. 고등학교처럼 내가 수강해야 할 모든 수업이 이미 정해져있었다. 패션&텍스타일 과의 월요일 첫 번째 수업은 ‘비주얼 디벨롭먼트’ Visual Development 였다. 오전 9시에 수업이 시작하기 때문에 나는 여유를 두고 학교에 왔다. 카페테리아에서 커피를 한 잔 사서 오전 8시 55분에 교실 문을 열었는데, 이게 웬걸. 모두가 군대처럼 각을 잡고 의자에 앉아있었다.


그들 앞에는 서슬퍼렇게 나를 노려보는 중년의 여성이 서 있었다.

순간 나는 내가 제인 에어의 로우드 기숙학교에 입학했나 싶었다.



‘너는 아주 늦었어.’


시계를 보았다. 나는 수업에 늦지 않았다.


‘지금 8시 55분인데?’


그러자 중년 여성의 눈에서 문자 그대로 불꽃 스파크가 튀는 것을 나는 보았다.




‘내가 수업에 들어온 순간부터 수업은 시작인거야! 자리에 앉아!’




그 사나운 일갈에 나는 화들짝 놀라 얼른 의자를 찾아 앉았다. 다른 학생들이 연민에 찬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그는 자리에 앉은 나를 머리에 새기려는 듯 한번 더 노려보고, 자기 수업의 룰을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아니, ‘통보’했다.



‘월요일 오전 9시 전에 반드시 자리에 앉아서 자신을 기다릴 것.’


‘비상연락망을 만들어 결석하는 학생이 반드시 사유를 설명하게 할 것’


‘비주얼 디벨롭먼트는 본인이 앞으로 만들 작업의 컨셉을 설명하는 무드 보드*와 그 무드보드에 연관된 이미지 두 개를 만드는 수업임.’


‘이미지를 만들 때 포토샵같은 컴퓨터 프로그램은 절대 쓰지 말 것. 오리지널 이미지를 절대 나에게 보여주지 말 것. 무조건 재 프린트 된 이미지를 더미(Dummy)* 에 깔끔하게 붙일 것. 풀 때문에 우글거리거나 정확하게 붙지 않은 이미지는 과제 제출로 인정하지 않겠음.’


‘무드 보드는 네가 생각하는 보그나 엘르같은 ‘클리셰 덩어리의 양산형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 아님. 그런 ‘역겨운’ 이미지를 내 시간에 보여준다면 용서하지 않겠음.’


‘무드 보드의 규격은 A0 사이즈 화이트보드여야 함. 절대 보드를 구기거나 더럽히지 말 것.’


‘실제 무드 보드와 따로, 무드 보드 사진을 3장 출력할 것. 한 장은 더미에 깔끔하게 붙이고, 한 장은 기말 제출용으로 보관하고, 한 장은 나에게 제출할 것. 이것이 다 갖춰지지 않으면 역시 과제 제출로 인정하지 않겠음.’



‘내 수업에서 ‘뭐가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안일한 생각 따위는 집어치우는게 좋을거다. ‘잘못될 일은 결국 잘못될 것이다. What will go wrong, will go wrong’. 네가 내 수업 직전에 이미지를 프린트 하려고 할때 프린터는 고장날 것이다. 나는 프린터가 고장나서 이미지를 가져오지 못했다는 변명, 자전거가 고장나서 수업에 늦었다는 변명, 무드 보드를 누군가가 밟아서 망가졌다는 변명 따위는 들어주지 않을거다. 그런 것은 모두 네가 미리미리 대비했으면 막을 수 있는 실수이다. 그런 모든 실수는 네 책임이다.’




나는 그저 아연했다. 아티스트답지 않게 뻣뻣하고 무서운 태도를 가진 선생님이야 종종 보았지만, 이 사람은 좀 달랐다. 이 여자는 마치 자비 없는 사령관 같았다. 어릴때 영화에서 보았던 19세기 유럽의 극악무도한 선생님 캐릭터의 통집합체 같았다. 네덜란드는 모두가 자유롭게 의견 교환을 하는 열린 사회라더니 거짓말이었나? 어엿한 성인 대학생들 모두가 국적을 불문하고 천적을 만난 새끼 오리처럼 벌벌 떨고있었다.



이것이 KABK의, 아니 미술계의 가장 무서운 선생님, 엘렌 보스 Ellen Vos 의 첫인상이었다.



여기서 잠시 용어 설명을 하고 지나간다.

*무드 보드 Mood Board. 한가지 주제나 스타일, 컨셉을 설명하기 위해서 이미지들, 짧은 텍스트, 메테리얼 같은 것들을 한데 모아 놓은 보드. 비주얼 디자이너들이 본인 작업의 설명을 직관적으로 전달 할 때 유용하다.

*더미 Dummy. 아티스트나 디자이너의 스케치북 같은 것. 본인의 프로젝트에 관련된 모든 아티스틱 프로세스를 KABK에서는 이 더미라는 스케치북에 다 기록하게 만들었다.)







Visual developement, Darwin's Evolution, image by Min van der Plus, 2013.




엘렌의 수업은 공포의 근원이었다. 그 이유를 설명하자면 엘렌 수업 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KABK의 시스템에 대해 우선 설명해야 한다.


KABK는 24시간 열려있는 한국의 미대와 많이 다르다

학교 문은 오전 8시에 열리고 오후 10시에 닫힌다.

모든 워크샵(작업실)들은 오전 8시 30분-9시에 문을 열고 오후 8시에 문을 닫는다.

대부분의 워크샵은 철저하게 예약제로 운영되거나 워크샵 매니저의 지도 하에 써야 한다.

토요일은 학교 문만 열리지 워크샵들은 모두 잠겨있다.

일요일은 학교가 열리지 않는다.



이런 시간 제한이 사람을 얼마나 절박하게 만드는지는 겪어 본 사람만 안다.



비주얼 디벨롭먼트의 과제를 제 시간에 끝내기 위해서는 컴퓨터 워크샵이 열려있는 금요일 오후 7시 이전에 무드 보드 만들기를 끝내고, 두 장의 연관 이미지 만들기도 끝내고, 사진을 찍고 출력해야 한다. 만약 그 시간 전까지 과제들을 마감하지 못해 출력을 못했다면, 최후의 수단으로 월요일 오전 8시 30분에 미친듯이 컴퓨터 워크샵에 돌진할 수 밖에 없다.


물론 과제를 미리 다 해놓고 금요일까지 우아하게 모든 출력을 끝내놓으면 되지 않냐고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하지만 이상과 현실은 다르다.


일주일, 즉 5일동안 내가 들어야 하는 수업은 1학년 때 13개였는데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공강 시간은 아예 없었다. 또한 그 모든 수업에서 과제가 나왔다.

미대 수업이라는 것은 어떤 나라든지 대략 비슷하게 시간과 체력 싸움이다. 나 역시 한국에서 미대를 다니며 엄청난 과제량과 과제전, 전시의 압박에 시달렸다. 때문에 나는 내 경험상 네덜란드에서의 적응이 빠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완전 오판이었다. 이건 나만 그렇게 생각한게 아니다. 한국에서 교환 학생으로 KABK에 온 학생들 역시 '이 학교의 스케줄은 어나더 레벨이다' 라고 혀를 내둘렀다.



앞서 밝혔다시피 학교 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시간은 제한적이다. 그리고 학교엔 나만 있는게 아니다. 전교생이 제한 시간 안에 본인들의 과제를 끝내기 위해 워크샵을 사용한다. 모든 곳은 붐비고, 내가 시설을 사용하고 싶다고 해서 그냥 쓸 수 있는게 아니었다.



운 나쁘게 (그리고 매우 자주) 금요일 저녁때 과제를 끝내지 못했다면, 월요일 아침이 마지노선이다. 그런 날은 새벽부터 긴장 상태다. 행운의 여신에게 ‘제발 엘렌이 9시 정각에 수업을 시작하길’ 기도하며 이미지를 출력해야 하지만 그게 항상 뜻대로 되진 않는다. 학교 컴퓨터실을 전교생이 쓰는데, 프린터는 흑백 프린터 하나, 컬러 프린터 하나가 다였다. 만약 멍청한 누군가가 어마어마한 크기의 이미지 파일을 줄이지도 않고 출력하는 순간 뒷사람은 20분 넘게 대기해야 한다. 20분 대기 한 후 프린터가 오류 신호를 보낸다면 워크샵 매니저가 고쳐주기까지 기다려야 한다. 이런 일이 어이없게도 매우 자주 일어난다는 것을, 학생들은 한 달 정도 엘렌 수업에서 말 그대로 ‘미친듯이’ 깨진 후 깨닫게된다.



엘렌은 말로 사람을 Slay 한다는 게 어떤건지 세계에서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다.


매주 만들어가는 무드 보드를 그녀 앞에서 발표해야 하는데, 2주에 한번씩은 엘렌의 크리틱을 듣고 우는 학생이 꼭 나왔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2년동안 엘렌의 수업을 들으면서 다섯 번 이상 울었던 거 같다. 가끔씩 엘렌의 크리틱에 반문하거나, ‘나는 예술가인데 왜 이렇게 자유롭지 못하냐’며 반항하거나, 지각하거나, 과제 제출이 늦는 학생들이 종종 있었다. 엘렌은 예외 없이 그들 모두를 ‘언어로 썰어버렸다’. 그녀는 절대 욕설을 쓰지 않았다. 다만 엘렌의 얼음같은 목소리와 레이저 안광, 그야말로 ‘드래곤 레이디 애티튜드’ 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카리스마가 우리 모두를 그녀의 지배 하에 놓았다.


Picture from collective assessment, photo by Min van der Plus, 2015.



우리가 통념상 알고있는 무드 보드는 말 그대로 ‘무드’를 전달하기 위한 수단이었지만, 엘렌에게 그것은 디자이너의 아티스틱 스킬 뿐 만 아니라 정신 상태마저 통째로 보여주는 창문같은 것이었다. 그렇기에 그녀의 크리틱은 무자비했다. 한 마디 한 마디가 송곳처럼 날카로웠다. 그리고 놀랍도록 정확했다.


내가 무드 보드에 포함한 모든 이미지와 텍스트만이 크리틱 대상이 아니었다. 그 요소들을 배열하는 방식 또한 엘렌에겐 평가의 대상이었다. 똑같은 이미지도 어떤 카테고리 아래에 어떤 방식으로 보드 안에 배치하는지, 텍스트의 폰트는 어떤걸 썼고 어떤 크기로 출력했는지. 보드의 마진과 이미지의 배열 방식이 ‘왜 이런 식인지’, 사람들이 사소하게 생각할 모든 것이 엘렌의 독수리같이 번뜩이는 눈에는 평가 대상이었다.


엘렌의 독설은 나도 몇번식 울게 만들었지만, 한번도 엘렌의 평가에 이견을 가진 적은 없다. 내가 ‘애매하다’라고 생각하며 넣은 이미지나 텍스트를 엘렌은 족집게처럼 쏙쏙 집어냈다. 그리고 나의 ‘애매한 판단’을 무자비하게 비판하고 도륙했다. 엘렌의 앞에서 나는 덜덜 떨면서 가끔씩 내가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잊어버리곤 했는데, 그럴때마다 엘렌은 ‘네가 애매하게 알고 있기 때문에 설명이 되지 않는 것이다’ 라고 혼을 냈다. 그리고 사실 그 말이 맞았다. 내가 확실히 설명 할 수 있는 인과관계의 보드 이미지들은 내가 아무리 덜덜 떨든 말든 설명은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나는 점점 엘렌의 수업과, 비주얼 디벨롭먼트 선생님으로서의 실력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녀는 매우 공평한 폭군이었다.


엘렌은 결코 칭찬에 인색하지 않았다. 잘한 것은 잘했다고 순순히 인정하고 엄지 손가락을 척 들어올렸고, 본인이 실수한 것이 있다면 즉각 사과하는 쾌녀였다. 지난 주에 지적한 무드 보드의 단점들이 제대로 보완 되었을때 엘렌은 활짝 미소를 지었다. 무드 보드의 프로세스가 사진으로 기록되었기에 나 역시 내 사고가 어떤 방식으로 변화하는지 직접 볼 수가 있었다. 엘렌의 크리틱과 내 스스로의 크리틱이 조화를 이루면서 수업에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수업 시간 직전은 여전히 긴장 상태였지만, 항상 잡아먹히던 1학년 초반과는 다르게 점점 더 그 긴장감에는 기대감이 섞이기 시작했다.





엘렌은 내가 네덜란드에서 본 선생님들 중 가장 ‘인종적으로 공평한’ 선생님이기도 했다. 그녀는 유럽인 특유의 ‘오리엔트는 이러려니’ 라는 잣대로 아시안 학생들을 판단하지 않았다. 학교 안에서 마이크로 스케일의 인종차별을 아시안 학생들은 최소 한번씩은 겪는다. 하지만 엘렌만큼은 예외였다. 그녀는 나에게 ‘아시안으로서의 정체성’ 이라던지, ‘문화적 차이’ 라던지, ‘아시안이라 그런 이미지를 선택했냐’ 라는 질문 따위는 결코 던지지 않았다. 그런 질문을 하는 순간 한 인간이 ‘타자화’된다는 것, ‘나’ 라는 개인이 아니라 ‘아시안’으로서 폭력적으로 카테고라이징 된다는 것을 엘렌은 알고있었던 것 같다.


외국인 학생의 생활 적응도에 대해서 걱정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동시에 외국인 학생의 학업 성취에 대해 특별 대접을 해주지도 않았다. 모든 학생이 그녀에게는 그냥 ‘학생’ 이었다. 유럽에서 그것이 얼마나 드문 일인지 알기에 나는 엘렌에게 경의를 표한다. 엘렌의 정의로움은 그녀의 잔혹한 수업도 용납하게 만들었다.






엘렌의 수업은 2년간만 들었다. 그러나 그 뒤로도 엘렌을 교실이나 복도에서 마주칠때마다, 그녀는 하이힐 소리를 또각또각 내면서 활기차게 나에게 인사를 했다. 수업 밖에서 만나는 엘렌은 언제나 상냥했다. 내가 번아웃으로 휴학을 결정했을때 나를 찾아와 ‘휴학 후에 다시 돌아오지 않으면 내가 한국으로 쫒아가겠다’ 라고 나를 꼭 안아주던 유일한 선생님이기도 했다.


엘렌 보스. 그녀 덕분에 나는 디자이너로서의 태도를 배웠다. 무드 보드가 단순히 미팅의 보조 도구가 아닌, 디자이너로서의 정체성을 표현하는데 얼마나 중요한지를 배웠다. 이미지의 완성도를 자비 없이 판단하는 송곳같은 태도를 배웠고, 디자이너로서 ‘기존의 틀에서 벗어난 본인만의 문법’을 키우지만 동시에 본인만의 세계에 빠져있는게 아니라 어떻게 타인과 소통해야 하는지를 배웠다. 내가 완벽하게 이것을 지금 해내고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아직도 엘렌의 가르침을 반 정도도 실행하지 못한다. 하지만 엘렌의 모든 크리틱은 지금도 내 마음 한구석 이정표로 남아있다.



The one and only,

세상 유일 무이한, 엘렌 보스.

학교를 떠난 지금도 가끔씩 그녀의 아낌없는 독설과 미소가 그리워진다.

 

매거진의 이전글 건방진 드로잉 열등생의 고백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