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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 in Lowland Jun 02. 2020

열시가 되면 문을 닫는 대학교

네덜란드 사회의 '워라밸'에 대해.



어렸을 때 문지기 술래 놀이를 나는 그렇게 좋아했다.


동 동 동대문을 열어라

남 남 남대문을 열어라

열두시가 되면은

문을 닫는다


노래가 끝나는 즉시 술래들이 냉큼 내리는 팔, 그리고 거기 걸리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뛰며 느끼는 스릴과 서스펜스.


KABK에 다니면서 나는 이 노래를 속으로 많이 읊었다. 대신 가사를 바꾸었다.

열두시 대신 열시로.

왜냐하면 말 그대로 학교 문이 열 시에 닫혔기 때문이다.






Model resting in between drawing lesson, drawing by Min van der Plus, 2017.




대학교가 밤에 문을 닫는다는 것은, 학생들이 건물 안을 출입할 수 없다는 것은 한국에선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미술 대학을 다니는 학생들에게 밤 새서 작업하는 ‘야작’ 타임이 없다는 것은 특히 더 상상하기 힘들다.


 미대를 다닌 모든 사람들은 공감할 것이다. 미술이나 디자인 작업엔, 형태가 있는 무언가를 만드는 것엔 절대적으로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하다. 생각만으로 작업이 완성되지 않기 때문이다. 물감이 마르는 시간, 볼트를 풀고 조이는 시간, 실리콘이 마르는 시간, 실을 직기 바늘 구멍에 하나 하나 꿰는 시간, 가마에서 도자기가 구워지는 시간, 용접을 할 때 철이 식기를 기다리는 시간. 작업은 ‘작업 한다’ 라고 뚝딱 끝나는 것이 아니다. 사전에 재료를 준비하는 것 조차 시간이 필요하다. 작업이 끝나고 뒷정리를 하는 것 또한 작업의 일부분이다. 머릿속에서 작업 시간을 계산할때는 최소 두 세시간 정도를 추가해야 현실성이 있다.


시간 부족에 항상 쫓기는 미대 학생들에게, 야작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마법의 행군이었다. 특히 과제전을 일주일 앞두면 미대의 모든 학생들이 학교에서 살다시피 했다. 과 마다 과제전 일정이 달라서 학생의 탈을 쓴 불쌍한 좀비들이 출몰하는 타이밍은 각각 달랐다. 이틀동안 거짓말 안하고 정말 단 1분도 안자고 작업을 하다가 과제전 오픈 직전에 과 사무실 앞 돌계단에서 기절하듯 잠들어 교수님이 나를 깨운 적도 있다.


그러나 괴로운 기억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 미대의 야작에 야식이 빠질 수 없다. 치킨, 피자, 족발, 혹은 석조장 돌판에 구운 삼겹살, 가끔은 맥주나 소주까지. 미대 사람들의 우정은 대체로 야작을 기반으로 피어나는 꽃이다.








네덜란드의 다른 대학교를 다녀본 적이 없어서 비교할 수는 없으나, M이 말하길 아마 대부분의 네덜란드 학교들은 밤에 문을 닫을거라 한다.


KABK는 주중에 오전 여덟시에 문을 열고 오후 열시에 문을 닫았다. 토요일에는 오전 열시부터 오후 다섯시까지, 그리고 일요일엔 아예 문을 닫았다. 주중에는 열시에 문을 닫는다고 하지만, 그건 정말 ‘정문’이 닫히는 마지막의 마지막이고, 이미 여덟시에서 여덟시 반 사이에 학교 내 대부분의 워크샵(작업장)들이 문을 닫는다.



KABK의 칼 같은 오프닝/클로징 타임은 나 뿐만이 아닌 대부분의 인터내셔널 학생들에게 종종 불만의 대상이었다. 앞서 밝혔던 ‘물리적인 작업 시간’이 필요한데, 학교가 열려있는 시간 안에 하루에 해야할 작업을 끝내는 것이 힘들기 때문이었다. KABK는 심지어 약에 취한 미대 뺀질이들조차 학교 오픈 시간에 비교적 빠릿빠릿하게 움직이는 신기한 곳이다. 학생들이 나른해지는 것은 오후 여섯시 이후 부터다. 오전부터 이른 오후 시간까지 생각에 잠기거나 작업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하릴없이 시간을 죽이는' 학생을 본 적이 없다. 학교 문이 열려 있는 시간이 제한되어 있다는 것은, 결국 학생들이 (반 강제적으로) 최선을 다해 효율적인 작업 스케줄을 수행하도록 만든 것이다.


밤 아홉시 반 부터 빌딩 시큐리티들이 학교 안을 돌며 학생들에게 경고한다. 지금 당장 나갈 준비를 하라고. 금강역사 뺨치게 생긴 그들에게 곧 나갈거라고 대답하며 작업물을 정리한다. 바리바리 싸들고 정문 밖으로 나가 집으로 향한다. 그리고 다음 날 다시 그 작업물들을 집에서 학교로 낑낑대며 옮긴다. KABK의 추억 중 50% 정도는 주로 뭔가 무거운 것을 옮기는 일이다. ‘헤비 리프팅의 추억은 방울방울’ 이다. 진심으로.



그러나 KABK의 정책에 불만을 품으면서도, 나는 밤에 학교 문을 닫는것이 ‘인도적으로는 옳다’고 생각했다. 워라밸, 워크 라이프 밸런스 적 측면으로는 더할나위 없는 제도다.


일단 밤을 새서 학교를 지켜야 하는 시큐리티나 워크샵 매니저가 필요가 없다. 나이트 시프팅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직군이 아니라면 밤을 새는 것은 지양하는 것이 좋다. 뇌가 노폐물을 처리하고 휴식을 취할 틈을 주려면 사람은 잠을 자야 한다.


게다가 워크샵의 각종 기구들 - 전기톱, 용접기, 드릴, 레이저 커팅 머신, 메탈 커터, 자수 기계 등등-을 수면이 부족한 상태에서 사용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일이다. 한국 미대에 다닐때 선배들이 ‘제대로 조이지 않은 그라인더 날이 튕겨 나가서 얼굴에 박힌 사고’나 ‘드릴에 머리카락이 엉겨 머리 가죽이 뜯어진 사고’ 같은 무시무시한 야작 괴담들을 말해주곤 했다. 실제로 저정도까지 사고는 본 적이 없지만, 야작을 하면서 크고 작은 사고가 일어났던 것은 사실이다. 특히 학교가 누구에게나 열려있다 보니 수상한 외부인들과 관련된 사고가 일어나기도 했다.


동시에 내가 생각한 것은 효율성이었다.


야작을 할 때 나는 백프로 생산적이었나?

야작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해야 할 일을 미루지는 않았을까?

밤을 새서 무언가를 한다는 행위가 주는 만족감이 야작의 비효율성보다 더 큰 것은 아니었을까?


한국에선 어릴때부터 밤을 샌다는 것이 낯선 일이 아니었다. 예고나 미대에 가기 위해 밤 12시까지 화실에서 그림을 그리고, 시험 전 날 밤새 공부를 했다. 아직도 야근을 하는 회사원들이 ‘애사심이 있다’고 칭찬을 받거나, 밤 열한시 열두시까지 학원에서 공부하는 나서 집에서 또 새벽 두시까지 공부하는 고등학생을 ‘성실하다’고 치켜새우는 사회. 밤을 새서 무언가를 하는 것이 어찌보면 문화적으로 권장된다고도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한국인들은 밤을 새는 것에 익숙해져있다. 마치 옛 선비들이 등잔불을 키고 밤새 사서삼경을 외우던 것을 우러러보듯이.




한국의 교육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남편 M과 볼때 그가 이상하다는 듯이 ‘왜 학생들이 학교에서 잠을 자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피곤해서 그렇다고 하자, 그럼 전날 밤 왜 잠을 자지 않았냐고 또 되물었다. 아마 학원이 늦게 끝나서 그럴것이다 라고 말해자, ‘학원에서 밤 늦게까지 공부하는 것이 효율적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M은 미간을 구겼다. 인간이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제한적이고, 그 제한적인 시간 안에 최대한 집중해서 하루 일과를 끝내는 것이 맞지 않냐고.


물론 몇 분 안에 한국의 교육 시스템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M의 순진한 질문은 사실 나도 품고있는 의문이었다.


네덜란드 사회는 낮과 밤의 구별이 한국에 비해 철저하다. 낮은 일을 하는 시간이고, 밤은 휴식을 취하는 시간이다. 대부분의 상점은 오후 8시에서 10시 사이에 문을 닫고, 펍이나 카페들은 밤 12시 경에는 대부분 문을 닫는다. 클럽이나 나이트샵(밤에 열려있는 구멍가게)은 물론 새벽 내내 열려있지만, 한국의 불야성과 비교하자면 네덜란드의 밤거리는 대체적으로 매우 고요하다.

회사 문화 역시 다르지 않다. 직종에 따라 당연히 편차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대부분 칼같이 여섯시 정도에 일이 끝난다. 한국에서 몇년 전부터 유행한 말인 ‘워크 라이프 밸런스’가 여기서는 흔한 생활상이다.


물론 이것을 단순히 ‘한국인들은 일벌레고 비인간적으로 사람을 굴리는데 익숙해서 그래’ 라고 축약하는 것은 공평하지 않다. 과거의 한국은 네덜란드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기반 시설과 재원을 가진 채 20세기로 넘어왔다. 국제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원이 부족한 한국에선 사람의 노력으로 부족분을 충당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사람을 갈아만든’ 사회는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룩한 대신 ‘노력에 대한 집단 트라우마’를 끌어안게 되었다.나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인도적인 효율성을 먼저 고려하는 네덜란드 사회가, 그 역사가 부럽다. 여유가 배어있는 사회가 된 그 기반이 반드시 ‘네덜란드라는 국가가 더 잘나서’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한, 네덜란드인들 역시 그들의 사회를 과거보다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해왔다고도 생각한다. 네덜란드의 복지관은 저거 얻은 복권 당첨금 같은 것이 아니다. 그리고 어느 사회에나 명암이 있듯이, 효율적으로 공사를 구분하고 인간의 복지를 우선하는 사회이지만 그 혜택이 반드시 모든 사회 구성원들에게 돌아가는 것도 아니다. 타 유럽 국가와 비교하면 공적 일처리가 굉장히 빠른 편이지만 한국과 비교할 바는 절대, 절대 아닌 것 역시 ‘인도적인’ 사회의 단점이라면 단점이다.





학교 문이 열 시에 닫힌다는 것.

그로 인해 누군가는 불편하지만,  또한 누군가는 불필요한 밤샘을 하지 않는다는 것.

효율적으로 일을 끝내고 휴식을 취하는 것을 권장하지만, 동시에 누군가에겐 그 휴식조차 사치인 것.

KABK에서의 생활은 마치 네덜란드 사회의 장단점이 미니어쳐처럼 축약된 것 같았다.



어쨌든 나이 서른이 넘어 이제는 밤을 샐래야 샐 수도 없는 몸이 되어버린 나는 밤에는 자고 낮에는 일하는 네덜란드 직장인의 바이오리듬에 익숙해졌다. 남편 M의 말대로 ‘쉬어야 인풋도 아웃풋도 제대로 나온다’는 사실을 실감하며 살고 있다. 하지만 열시에 매정하게 문이 닫히는 KABK를 생각하면 여전히 ‘그래도 그건 좀 너무해’라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내 부정할 수 없는 한국인으로서의 각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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