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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딧불 Nov 10. 2023

잘해야 본전치기

브런치 도전기

미련한 사람이죠, 잘해야 본전 치는 장사를 하는 건. 세상에 그런 사람이 있을까요?


네, 여기 있습니다. 바로 접니다.     


저는 논술 강사입니다. 제가 사는 집에서 초2부터 고등학교 2학년까지 논술과 영어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수능 직후 영어 과외를 시작으로 대학에 다니면서 직장을 다니면서도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계속했으니 꽤나 오래된 강사입니다.      


공부방이라고 하죠. 집으로 아이들이 와서 수업을 하는 형태요. 그런데 공부방이라고 불리는 건 자존심이 상하더라고요. 왠지 제 실력을 절하하는 느낌이 드는 것도 같고요. 물론 일타강사는 아니지만 매 수업 피를 토하듯 최선을 다하니 세상이 ‘공부방’을 보는 시선으로 저를 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던 적도 있습니다. 여튼, 저의 공부방을 뭐라고 하는 사람도 없고 그렇게 말하는 사람도 없는데 저 혼자 괜한 자격지심 부리고 있는 그런 강사 사람입니다.     


이런 걸 합니다


한 가지 고백을 하려고요.

아이들에게 논술을 가르치는 업으로 살고 있는 저는 사실 글쓰기가 그리 즐겁지 않습니다. 글에 관해 설명하고 가르칠 수 있지만, 정작 저는 ‘쓰는 사람’은 아닙니다. 그리고 사실 ‘쓰는 것’보다 ‘제대로 읽기’가 더 중요하다고 가르치고 있는 강사이기도 하고요. 이렇게 하면 조금은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지만, 보시다시피 아닙니다.     



어쨌든, 그런 저에게 쓸 수 있는 계기와 써야만 하는 명분을 주는 작은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수업을 마치고 피로를 풀기 위해 인스타를 열고 피드를 올리며 세상 구경을 하고 있었습니다. 조곤조곤 날리는 멘트가 재미있어 자주 방문하는 이은경 선생님 인스타를 구경하던 중 한 피드에서 손가락을 멈춰버렸습니다. “나랑 브런치 할래”라며 선생님이 손을 너울너울 흔들고 계시더군요. 분명 저는 그렇게 느꼈어요. 어여쁜 선생님이 방긋방긋 웃으시며 함께 하자고 절 부르고 계셨습니다. 순간적으로 ‘나도 브런치에 내 글을 써보고 싶다. 그런데, 내가 브런치에 글을 쓸 정도로 필력이 괜찮나?’하는 마음이 들었고 ‘에이, 저런 건 키보드에 손을 올리자마자 열 페이지 정도는 숨도 안 쉬고 쓰는 사람들을 위한 거지’라고 생각하며 울렁거렸던 마음을 진정시키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다음날 수업 준비를 하며 정신없는 와중에도 어제 그 ‘브런치’ 생각이 나더라고요. ‘운명인가?’란 생각이 듦과 동시에 ‘수업 준비도 바쁘고, 수업도 해야 하고, 시간표도 수정해야 하고 우리 애들도 봐야 하고. 할 일이 산더미인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온종일 번뇌와 갈등으로 가득 찬 마음은 쉽게 결정되지 않고 결국 남의 편에게 묻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나 브런치 해볼까 하는데”

“해봐”

“브런치가 뭔지는 알아?”

“몰라”

“모르면서 하라고 해?


남편은 브런치는 모르지만, 물어본 건 이미 마음먹은 거와 다름없고 힘들어도 그냥 하면 된다며 결정을 내려주었습니다. 역시 밀어붙이는 데는 따라올 장사가 없다고 궁시렁거렸지만, 브런치에 떨어져도 그때 말리지 않은 남편 탓을 하면 된다고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하지만, 또 다른 강력한 문제가 남아있게 되는데……그건 바로 논술 강사의 ‘글쓰기’였던 것입니다. 저는 남편 기관 이전으로 서울에서 지방의 아주 작은 혁신도시로 이사와 살고 있습니다. 한 다리 건너면 다 아는 그야말로 마이크로 지역사회. 브런치에 합격하게 되고 소문이라도 나면 사람들이 내 글을 볼 테고 ‘논술 강사가 고작 이 정도 수준이야?’라며 비웃음을 살까 무섭고 내 일이 공격받을까 두려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 그냥 하지 말자. 걱정해야 할 것도 많고 일 보태는 것도 싫고, 안 하면 그만이니 그냥 하지 말자. 잘해야 본전 치는 장사 안 하면 그만이지, 뭐.      


그렇게 마음먹고 깔끔하게 마음 정리를 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마음이 자꾸 스멀스멀 그쪽으로 향하더라고요. 안될 이유를 생각해 봤습니다. 사람들이 내 글을 볼까 봐 싫고, 품평할까 싫고, 일하기도 힘들어 죽겠는데 글까지 써야 하니 싫고, 싫고 싫고. 싫은 이유가 열 가지도 넘는데. 그런데 하고 싶더라고요. 무슨 자신감인지 ‘풋’하고 웃음이 나왔습니다. ‘그래, 하고 싶은데 그냥 하자. 죽기야 하겠어?’라는 생각이 들며 결국 브런치에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동기들의 첫 글들은 실로 대단했습니다. 단톡방에서 오가는 그녀들의 말솜씨는 화려했고요. 오가는 글들에 논술 선생은 명함도 못 내밀었습니다. 바짝 쪼그라든 자존심은 회복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급하게 써 내려간 글이 브런치에 잘 보여져 ‘불합격’ 메일만 받지 않길 바랐습니다. 틈나는 대로 메일을 새로고침하고 확인하며 마음졸이다 받은 ‘합격’ . 본전 장사는 한 것입니다.     


누군가 인생은 도전과 선택의 연속이라고 말했습니다. 공부만 할 때는 그 말의 의미를 잘 모르겠더라고요. 인생을 이만큼 살아오며 저 말만큼 인생을 기가 막히게 표현하는 말도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 브런치를 향한 저의 도전은 성공이었습니다. 이제 다시 시작되는 또 다른 도전은 망설이지 않고 성큼성큼 걸어가려고요. 도전해서 미끄러지거나 실패하면 더 좋습니다. 브런치에 소재로 쓸 수 있으니까요. 전 다시 저로 열심히 살아가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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