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8년 11월
전화가 끊이지 않고 계속 울린다. 수업 중엔 어떤 전화도 받지 않는 게 원칙이다. 무음으로 설정되어 소리가 들리지 않는 데도 들뜬 마음에 전화기에 눈길이 간다. 연달아 베스트셀러다. 느낌으로 알고 있다. 저 전화 중의 몇 통은 출판사에서 이 기쁜 소식을 전하려 애써 연락하고 있다는 사실을. 내가 전생에 나라를 구했을까 아니면 반백 년 내 인생 동안 쓰지 못했던 운을 한 방에 다 쓴 것일까. 어안이 벙벙한 채 수업하며 한켠으로 생각을 짜내고 있지만. 모르겠다. 한 번도 어렵다는 베스트셀러를 두 번 연달아 성공한 작가라니. 내가?!
첫 번째 내 책이 베스트셀러에 진입했을 때는 밥도 먹지 못했고 잠도 자지 못했다.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불렀고 잠을 자지 못해도 피곤함을 알 수 없었다. 물속으로 잠수하는 느낌 혹은 몸이 공중에 두둥실 떠 있다면 이런 느낌일까. 몸과 정신이 분리되어 있었다. 믿을 수 없는 상황. 어제의 나와 다른 게 없는데 분명 엄청나게 달라져 있었다. 사람들이 건네는 축하의 말들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의 첫 책은 ‘욕심을 버리고 솔직하게만 쓰자’가 목표였다. 곡절 없는 인생은 없겠지만, 최대한 담담하게 내 인생의 흔들리는 순간들을 그려내고 싶었다. 나는 그동안 켜켜이 내 마음에 담아왔던 것들을 훌러덩 뒤집어 독자들에게 털어놓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나의 솔직함이 사람들의 눈과 마음을 머무르게 했을까.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다시 또 도전해 볼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아무튼 다시는 없을 것만 같은 내 인생 최고의 순간이었다. 그런데 연이어 그 순간이 다시 올 줄이야. 여보, 아들, 딸. 엄마 지금 살아있는 거 맞지?
브런치 강의를 처음 들었던 5년 전, 은경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쓰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어요, 여러분’. 책에서 읽거나 타인에게 들은 말이 나에게로 와 꽃을 피우려면 행동해 보기 전에는 알기 어려울 때가 많다. 머릿속으로는 그럴듯한 나 자신이 그려지지만, 가장 어려운 건 무거운 몸을 일으키고 해 보는 그 최종의 ‘행위’. 직접 실천해 보는 마지막까지 가려면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하지만. ‘못 먹어도 고’라는 심정으로 한 나의 도전은 쓰기 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었다.
5년을 앞만 보며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는 글을 꾸역꾸역 생산했다. 어느 날은 힘들어서, 어느 날은 지긋지긋해서, 어느 날은 아무도 돌아보지 않음에도 쓰고 있는 나 자신이 처량해서 쓰는 걸 때려치우고 싶었다. 안 쓰면 그만일 텐데 쓰기 전으로 돌아가지지 않아 다음날, 또 그다음 날도 수업을 마치면 어김없이 내 자리에 앉아 쓰고 있는 나였다.
그 흐렸던 날들에 대한 보상이다. 고집스럽게 버티던 나의 날들에 대한 햇볕 쨍한 보답이다.
그 보답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이 있어서 지금 더 행복하다.
청소년기를 열심히 보낸 덕분에 우등생 소리는 들었지만 막상 사회에 나와서는 재미없는 일을 하고 있는 불쌍한 남편에게 한 마디 쿨하게 던졌다.
이 말과 동시에 남편의 눈이 소만큼 커진 걸 보면서도 그만 다니라는 말은 하지 못했다. 아무리 내가 책 팔아 돈을 많이 벌어도 집에서 빈둥대고 살림하는 남편을 품기란 어려울 거 같다. 그릇이 작다. 수능을 목전에 둔 아들과, 이제 고등학교에 입학한 우리 막내도 이 기쁨을 함께 누려야 하니 큰아이 수능시험 후에 소원하던 미국을 함께 가기로 했다. 아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내가 미국에 있었을 때 있었던 곳들을 가보고 싶어 했다. 드디어 충전(charge the money) 완료.
긴 여정이 될 것 같아 여행을 끝내고 돌아와서의 후속작 계획도 빠르게 마쳤다. 이번 책은 내가 그렇게 바라던 ‘청소년 소설’을 쓸 예정이다. 아이들과 함께해 온 하루하루를 곱씹으며 마음속에 촛불 하나를 켜준 것 같은 글을 써서 그들에게 바치고 싶다. 누군가에게라도 온기를 나눠 줄 수 있다면 꼭 베스트셀러가 아니어도 좋다.
사진출처 | Unsplash의Christoph Nolte
사진출처 | Unsplash의Maarten van den Heuvel
이 글은 5년 후의 나를 상상하며 쓴 글입니다. 황당한 이야기지만 가볍게 읽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