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시에 직원 회의가 있었다. 마무리가 필요한 시점이라 예산 잡는 법, 부서별 협의 내용에 대한 안내를 받았다. 회의 마지막에 "몇 명이 자기 실적 평가서를 안 내셨는데 내고 퇴근하십시오."라는 말을 들었다. 나다. 몇 명이 아니고 단 한 명인 것 같다. 내 컴퓨터를 보니 단 한 명인 나에게 서류 내라는 메시지가 와 있었다.
자기 실적 평가서 엔 '정량'과 '정성'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정량'은 지표에 의해 점수만 넣으면 되고 '정성'은 말로 써야 한다.
지난 금요일에 '정량' 한 장은 미리 작성했었다. 부장이었기에 100점 만점에 93점 나왔다. 연수 기록 60시간 이상 듣기 위해 일주일 전 급히 10시간짜리를 추가 이수했다. 여름에 창원 가서 3일간 집합 연수 받은 것도 연수시간 맞추는 데 도움 되었다. 점수 딸 수 있는 건 다 넣었다. 후회 없다.
'정성'평가 작업을 퇴근 전까지 해야 한다. 목표와 결과 중심으로 넣는다. 적다 보니 올해 한 일이 많다. 학급 운영은 다 비슷할 거고 학생들 독서교육, 글쓰기 지도한 걸 넣으니 몇 줄 더 쓸 수 있었다. 독서교육은 유튜브를 활용한 작가와의 만남이 있고, 100만 원 예산 따와서 1인 1책 사준 부분도 있었다. 글쓰기 지도는 오늘 예산으로 주문한 학급 시집이 실적이다. 전문성 개발 부분에는 독서 및 글쓰기 자율연수로 기록했는데 교육대학원 아동문학교육 석사과정 수료가 의미 있었다. 그리고 사서교사 대상 자격연수 강사 중학교 교사 대상 글쓰기 강의, 초등학교 교사 대상 컨설팅 지원한 것, 독서교육지원단 활동까지 쓸 내용이 많았다.
정성, 정량, 연수 실적 3장을 담당자에게 내러 갔다.
"실적이 많아서 정리하는 데 시간 걸렸어요."
"그런데 종이가 가벼운데요?"
"함축해서 적었어요."
짧은 대화를 나누고 나왔는데 피식 웃음이 났다. 과거 경력이 낮았을 땐, 제출물을 깜박했을 때 나를 탓했다. 꼼꼼하지 못하다는 둥, 진작할 걸 같은 감정 때문에 인상 쓰는 일 많았다. 만 21년 근무하고 있는 지금, 깜박할 수도 있지 하는 마음이 들었다. 오늘까진데, 퇴근 전에 내면 되지 하는 느긋한 마음이 생겼다. 경력이 쌓였다는 뜻이겠지. 재촉하는 연락이 오더라도 그건 비난하는 말이 아니다. 나를 챙겨주는 마음이다.
이젠 완벽주의도 벗었다. 나 중심적으로 소설을 쓰거나 땅굴 파는 생각도 줄었다. 업무가 몰려오고 시간이 부족하더라도 마음만큼은 지킬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것 같다.
12월이 되니 다시 3월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점에 한숨이 나올 때도 있다. 그래도 일은 해야 한다. 나에겐 독서와 글쓰기라는 무기가 있기에 누구를 만나도 소통할 수 있다. 나와 나 사이에 서도 마찬가지다. 작년 12월부터 올해 3월까지, 학년말과 학기 초에 뭘 챙겼는지 되돌아본다. 마음은 느긋하게 일은 놓치지 않도록 애써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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