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와 쓰기 사이 9회 모임
2001년과 2002년 교회 반주를 했다. 반주 법을 제대로 배운 적 없는 나에게 성경 멘토 언니는 반주 법을 알려주었고 반주자 자리를 물려주었다. 신앙심이 싹트지 않았을 때 음악 좋아하는 줄 알고 나에게 일 하나는 맡긴 것 같았다. 교회에서 하나라도 하고 있는 게 있으면 매주 출석을 할 테니까.
아침 7시에 교회 예배당에 갔다. 그 당시 진주교대 인근에 거주하면서 경상대 근처 교회까지 다녔으니 버스 타려면 더 일찍 나와야 했다. 7시부터 10시까지 세 시간 성가대 반주를 연습했다. 10시부터 이어지는 성가대 연습, 11시부터 예배까지 오전 내내 반주자로 살았다. 오후엔 다음 주일 성가대 연습이 이어졌고 어설픈 반주자였던 나는 틈틈이 교대 피아노실에 들렀다.
반주를 하다 보니 싱어들이 부러웠다. 나도 잘 부를 수 있는 노래지만 반주하면서 흥얼거리다 보면 피아노 건반을 잘못 짚을 때도 있었다. 못내 아쉬웠는데 싱어 자리가 생겼다. 한 번 싱어로 마이크를 잡았는데 그 이후로 싱어도 반주도 하기 어려웠다. 대학 4학년이니 다 내려놓기로 했다. 싱어 위치도 그냥 하는 게 아니었다. 주음은 잘 부를 수 있었지만 때론 화음도 넣어야 했고, 손동작도 필요했다. 나는 뻣뻣했으며 노래 부를 때 감정을 밖으로 비치는 게 어색한 사람이었다. 굳이 이유를 찾는다면 모태신앙도 아니었고 초중고 시절 교회 생활을 해본 적 없어서 교회음악 접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반주의 기회는 첫째 임신 중에도, 둘째 낳은 후에도 생겼다. 작은 교회에서는 나의 반주가 유용했다. 점점 사람들이 채워지고 반주를 그만두었을 때 싱어 자리는 탐이 났다. 2년 하고 나니 다시 나의 모션이 어색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시선은 어디로 둬야 하는지, 가사는 왜 그리 외워지지 않는지, 간단한 리듬에 맞춰 몸으로도 박자를 맞춰야 하는데 뻣뻣한 내 모습에 다른 사람도 어색해 하지 않을까 눈치가 보였다.
그렇게 8년이 흐른 후, 셋째를 키우면서 또 기회가 찾아왔다. 싱어 자리다. 3년간 예배 시작할 때 앞에 섰다. 예전과 달랐다. 대형 스크린이 있었고, 싱어가 볼 수 있는 작은 TV도 반대쪽에 있었다. 예배드리러 온 사람들은 앞에 서있는 사람보다는 스크린을 보았다. 가사를 볼 수 있는 화면이 내 앞에 있었다. 음정만 정확하게 잡아주자는 마음으로 노래를 했다.
매년 12월이 되면 내년에도 싱어를 할 수 있을까 고민을 하게 된다. 나 말고도 하고 싶은 사람 있을 텐데 욕심부리는 건 아닌가 생각도 해보았고, 노래 부르는 것 좋아하고 힘이 나는 가사도 있으니 더 하고 싶다는 두 가지 생각이 있었다. 한 가지라도 역할을 해야 꾸준히 출석하지 않겠는가 하는 결론에 찬양팀 신청서를 냈다.
노래엔 공백이 가득했다. 꾸준히 해오면 프로급이라도 되었을까. 음악을 전공하지 못한 게 못내 아쉬워서 기웃거리는 건 아닌가 싶다. 지금 내가 참여하고 있고 앞으로도 함께 할 찬양팀에서 필요한 자세는 무엇일까 생각해 보면 노래 실력은 아니었다. 성실함과 꾸준함이었다.
매주 함께 하기로 해놓고 이 두 가지가 없다면 마이크 잡는 사람 수가 부족할 터다. 리더는 멘트도 해야 하고 곡 전반 흐름도 이끌어 가야 한다. 악기별 반주자들과 싱어들은 리더의 지휘에 따라 시작과 끝을 알기 때문이다.
노래 부르는 일에 공백이 생겼던 이유는 내 실력을 내가 평가하려는 모습 때문이었다. 평가하려는 모습 대신 성실함과 꾸준함이 우선이라는 점을 작가 생활하면서 배운다. 언제까지 싱어 역할을 할지 알 수 없지만 2025년에도 싱어로서 일요일 11시, 마이크 잡고 서 있을 생각이다.
<읽기와 쓰기 사이> 월 1회 아침 7시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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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antbaekja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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