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을 쉽게 이해하는 차원을 넘어서서 과학자가 되고자 한다면 과학자의 삶을 알아야 한다
‘슬기로운 과학자의 여정‘으로 진행되었던 이번 북토크에서 크게 깨닫게 된 사실 한 가지는, 과학을 보여주려면 과학자의 삶을 보여줘야 된다는 것이었다. 이 말은 많은 것을 함축한다. 그중 하나는 요즈음 더 흥행하고 있는 과학 커뮤니케이터들의 한계를 드러내기도 한다. 무슨 말인고 하니, 아무리 과학 커뮤니케이터들이 어려운 과학을 쉽게 풀어준다고 해도 사람들은 재미와 함께 과학을 조금 더 이해하는 정도에 머물 뿐 학부모로서 자기들의 자녀들에게 과학자를 꿈 꿔보라고 제안하지도 않고, 자녀들 역시 어려웠던 개념이나 원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받을 뿐 장래에 과학자가 되고 싶어하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물론 더 이상 사람들이 과학자를 꿈 꾸지 않는 게 과학 커뮤니케이터의 잘못은 아니다. 그들의 존재 이유는 과학의 대중화이고 그들은 그들의 이러한 목적을 충실히 달성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나 양자역학 등의 개념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된 것도 모두 이런 과학 커뮤니케이터들 덕분이다.
한국의 문제는 소위 공부 잘하는 엘리트들이 더 이상 기초과학을 공부하는 이공계에 진학하지 않고, 어렵지만 자격증 혹은 면허증만 따면 직업을 가지고 어느 정도 이상의 경제력을 보장받을 수 있는 의사나 변호사로 진학하는 비율이 예전에 비해 과도하게 치중되어 있다는 점이다. 지금은 더 이상 아이들의 장래희망란에 ‘과학자’라는 단어가 보이지 않는 시대다. 그러면서 매년 노벨상 수상 발표 시즌에 우리나라 과학자들에게 손가락질을 하는 현상을 보면 현 과학자로서 답답한 노릇이다. 근본적인 것에서부터 모순을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도 과학자가 되고 싶어하지 않는다. 언젠가부터 과학자라는 직업은 부모들도 자녀들도 가장 꺼려하는 직업군 중 하나가 되어버렸다. 현실적인 이유가 크다. 그들이 들인 시간과 노력에 비해 사회적 대우가 열악하기 짝이 없기 때문이다. 쉽게 돈을 벌려고 하는 생각이 강화된 요즈음 시대에 과학자가 되기 위해 애쓰는 건 지극히 비효율적인 일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게 보고 멀리 보면 기초과학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 나라의 근간이 되는 힘이기 때문이다. 과학자가 존재하지 않고 과학 커뮤니케이터만 존재하는 나라를 상상하고 싶진 않다. 과학의 대중화는 필요하지만, 대중화되지 않는 과학에 매진하는 과학자들의 집합이 사라지면 큰일이다.
‘슬기로운 과학자의 여정’이라는 제목을 끝까지 고집했던 이유가 있다. 너무 다양한 ‘슬기로운 XXX의 생활’이라는 문구가 진부하게 여겨질 것이기 때문에 제목을 바꾸려고도 했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그 진부함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이 제목을 고집했던 건 ‘슬기로운 의사 생활’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만들어 의사들의 삶과 과학자들의 삶을 직접 독자들이 비교하길 바랐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도 의사만을 고집하는 모든 부모들이나 자녀들이 의사들의 생활만이 아니라 과학자들의 생활도 알길 바란다. 북토크에 참여하신 여러 독자분들이 이 책 덕분에 과학자의 삶도 할 만하다고 알게 되었다고 고백하셨다. 뿐만 아니다. 과학이 재미있을 것 같다고, 다시 과거로 돌아가면 과학을 전공하고 싶어질지도 모른다는 고백도 들을 수 있었다.
과학 커뮤니케이터들을 통해서도 결코 알 수 없는 과학자들의 삶을 나는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우리나라가 다시 기초과학에 관심을 더 가지고 투자도 해서 그 어느 나라 국민보다 똑똑한 머리를 가진 우리나라 사람들이 더 많이 과학자라는 직업을 가지길 희망한다. 그런 의미에서 과학자들의 삶이 궁금하다면 그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슬기로운 과학자의 여정’을 꼭 읽어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주위에 계신 학부모들이나 자녀들에게 꼭 이 책을 권해서 과학자들의 삶이 어떤지 알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