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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웅 Nov 09. 2024

즉흥과 낭만

편리함에 저항하기

즉흥과 낭만


한 달 전 가족과 제주 여행을 떠났을 때였다. 우린 한라산 영실코스를 새벽부터 올랐기에 지상에 내려오니 고작 오전 11시경이었다. 점심을 어디서 먹을지 행복한 고민을 하던 중 우도나 가볼까 하는 즉흥적인 마음에 우린 곧장 차를 돌려 성산항으로 향했다. 적당히 즉흥적인 선택과 과감한 실천은 여행의 맛을 더해주는 게 분명하다. 참고로 나는 T이지만 요럴 땐 극 F가 된다.


주차할 곳을 찾으러 가는 길에 우리 눈앞에 새로 단장한 회센터가 떡 하니 보이는 것이었다. 여기서 먹으란 말인가, 하는 운명적인 끌림을 느끼면서도 혹시 비싸진 않을까 하는 우려를 놓을 수 없어 일단 들어가 둘러보려고 했다. 이층으로 올라가니 오마카세 느낌의 잘 꾸며놓은 식당 종업원이 우리에게 대뜸 말을 건네는 것이었다. 호객행위이겠거니 하며 반쯤은 귀를 닫고 넘기려 했는데,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수협에서 운영한다는 그 한 마디가 괜히 비쌀 거라는 우리의 우려를 잠재워주는 것이었다. 우린 메뉴판을 당당히 들고 가격을 훑어봤다. 합리적인 것 같았다. 안심이 되었다.


즉흥적인 선택과 실천은 자칫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지만 의외로 대부분은 예기치 못한 즐거움을 안겨준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순간들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모든 게 계획대로 움직이는 여행치고 기억에 남은 적은 없었다. 여행에서라도 즉흥과 우연이 주는 기쁨을 만끽하지 못하면 어쩌란 말인가.


뜻밖의 푸짐하고 맛있는 점심을 해결하고 우린 우도로 넘어가는 배에 올라탔다. 15분 정도 걸렸던 것 같다. 사람들이 우르르 내리면서 하는 말을 들었다. 에어컨이 빵빵하게 나오는 이층 실내에서 자기는 누워서 왔다며 삼층 바깥 땡볕에 서 있던 사람들을 조롱하는 것이었다. 순간 기가 막혔다. 여기까지 와서, 게다가 고작 15분 배 타는 동안 누구보다 편하고 안락하게 왔다는 사실을 우월감으로 여기는 듯한 그 사람이 부럽기는커녕 불쌍하게 느껴졌다. 아마도 그 사람은 갈매기들이 바람을 가르며 사람들이 주는 새우깡을 잡아채는 모습도, 바람에 흩날리는 바람에 옷가지와 머리카락을 부여잡아야 하는 모습도, 그러면서 서로 낄낄대며 즐거워하는 순간들을 모를 것이기 때문이다. 에어컨 바람을 쐬며 누워서 가는 사람들에게서 어찌 낭만을 찾을 수 있겠는가.


우도를 한 바퀴 돌기 위해 사람들은 탈 것을 찾았다. 가장 긴 줄이 놀랍게도 Ray를 빌리는 곳이었다. 현장에 왔으면 현장을 오감으로 체험해야 한다고 믿는 나로서는 제주도 아니고 우도까지 와서 자동차 실내 에어컨 바람이 쐬며 앉아 있겠다는 사람들의 마음을 좀처럼 이해할 수 없었다. 과연 그 사람들은 먼 훗날 우도 여행을 기억할 때 무엇이 떠오를까? 누구보다 시원하게 그 시간을 보냈다는 사실이 과연 행복으로 연결될까? 아니라는 데에 나는 오백 원 건다. 기억에 남지 않는 여행은 시간낭비 돈낭비일 뿐이다.


낭만의 현대판 반대말은 편리함이다. 여행까지 와서 편리함만 추구하는 건 여행의 본질과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처사라 생각한다. 적당히 불편해야 한다. 자발적으로 불편함을 택해야 한다. 기억에 남는 행복은 그 선택에 크게 좌우될 거라고 나는 믿는다. 즉흥과 우연과 낭만은 편리함이 아닌 불편함이 전제될 때 비로소 가능해지지 않나 싶다. 특히 여행지에서는 더욱더.


#오블완_티스토리챌린지_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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