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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웅 Nov 19. 2024

인간만 변하면 된다

이정모 저, '찬란한 멸종'을 읽고

인간만 변하면 된다


이정모 저, '찬란한 멸종'을 읽고


다는 읽어보지 못했지만 (읽어볼 수도 없겠지만) 이 책의 저자 이정모처럼 과학 책을 맛깔나게 쓰는 작가가 한국에 또 있을까. 적어도 내가 알기론 없다. 독보적인 존재라는 말이다. 그의 저서를 여러 권 읽었지만 돈이 아깝거나 도움이 되지 않다거나 시간 낭비라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 보지 못했다. 그의 글은 첫째, 재밌다. 유쾌하다. 둘째, 유익하다, 공부가 된다. 셋째, 쏙쏙 들어온다. 이러니 남녀노소 누구나 교양 수준의 과학지식을 습득하는 데 있어서 이정모의 책을 선택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나름 생물학 박사학위 소유자인 나조차도 이 세 가지 장점을 누리며 몰입해서 읽을 수밖에 없는데 말이다. 그러므로 이 책의 타깃 독자가 청소년에 국한되는 것처럼 말하는 것은 어폐가 있다. 한글을 읽을 줄 아는 모든 사람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찬란한 멸종'은 제목부터 호기심이 인다. 그러나 책을 열고 프롤로그를 조금만 읽다 보면 금방 이유를 알 수 있다. 그 부분을 발췌해 본다. 다음과 같다. 


| 새로운 생명이 등장하려면 누군가 그 자리를 비켜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멸종이라고 합니다. 흔히 멸종이라고 하면 부정적인 이미지를 떠올리지만, 새로운 생명 탄생의 찬란한 시작이기도 합니다. 책 제목을 '찬란한 멸종'이라고 지은 이유입니다. |


그렇다. 멸종은 그것이 가진 어감만큼 그렇게 무섭거나 대단한 것도 아닌 셈이다. 생명의 탄생은 경이로워하면서 멸종은 그렇게 여기지 않는다는 건 모순일 수 있다는 말이다. 멸종이 없으면 새로운 생명의 탄생은 이뤄지지 않을 테니까. 


이 책의 매력은 멸종의 의미를 정확하게 짚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부제에서도 밝히듯 이 책은 '거꾸로 읽는 유쾌한 지구의 역사'이다. 말 그대로 지구의 역사를 거꾸로 되돌아가면서 점점 더 과거를 기술하며 우리에게 여러 생명의 탄생과 그것이 가능했던 여러 차례의 멸종을 설명해 주는 책이다. 이 책만이 가진 독특한 장점이라고 한다면 무엇보다 역사를 거꾸로 훑으며 우리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존재가 사람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책은 미래 인간이 멸종한 이후 시점부터 시작하는데, 첫 화자는 인공지능이다. 그것으로 시작으로 여러 생명체가 직접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그 당시 역사를 조명한다. 먼 과거에는 사람이라는 종이 탄생하지도 않았을 때인데 어떻게 사람이 화자가 될 수 있냐고 따지는 분은 설마 없겠지? 아무튼 이 부분에서도 이정모는 정말 영리하다. 방금 전 바보 같은 질문조차도 나오지 없도록 그 당시 현존했던 생명체의 입을 빌려 지구의 역사를 들려주도록 이 책을 구성했으니 말이다. 나는 감탄하면서 즐겁게 읽었다.


기후 위기로 인간은 멸종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문제는 지구 역사상 있었던 여러 멸종의 원인도 기후변화였지만, 지금 인간이 맞이하고 있는 기후변화는 천재지변이 아니라는 점이다. 현재 우리가 맞닥뜨린 기후변화는 모두 인간 활동의 결과이다. 즉 인간만 변하면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는 말이다. 이 책 역시 다른 생명체의 목소리로 인간의 탐욕과 어리석음을 명징하게 지적한다. 그러나 희망도 놓지 않는다. 적어도 지구 기온의 상승이라도 막을 수는 있다고, 그것은 기술 문제가 아니라 우리들의 의지에 달린 것이라고 하면서 말이다. 나 역시 저자의 말에 동감한다. 인간은 다시 대멸종을 초래하는 주범일 수도 있지만, 그것을 충분히 막을 수 있는 능력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다 읽고 내게 남은 메시지 하나를 고르라면 나는 "인간만 변하면 된다."를 꼽겠다. 그렇다. 인간만 변하면 된다. 안타깝게도, 혹은 다행스럽게도 우리 인간은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조차 알고 있다. 알고도 변하지 않기를 선택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탐욕이라 설명할 수 있는 그 무엇 때문일 것이다. 나는 바란다. 편리함이 아닌 불편함을 재고하고 기꺼이 선택할 수 있기를, 자본주의와 과학시대라는 멈추지 않는 기차의 동력에 브레이크를 인간 스스로 걸 수 있기를 말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인간도 언젠간 멸종을 면하지 못하겠지만, 적어도 자멸은 면할 수 있지 않겠는가. 아니, 자멸만이 아니다. 인간만이 아니라 타 생명체도 죽이는 결과를 초래할 테니까 살인자라는 타이틀까지 거머 줘야 할 테니까. 


#다산북스 

#김영웅의책과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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