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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른백수 MIT간다 Aug 15. 2024

섹스 앤 더 시티

백수일기 #7ㅣ야한 제목과 그렇지 않은 메시지

    최근 머리 아픈 변호사 드라마인 'Suits'를 보다가 포기하고 예전에 (한글자막으로) 재밌게 봤던 'Sex and the city'를 다시 보고 있다. 워낙 유명한 드라마라 다들 알겠지만 맨해튼에 사는 30대 여자 뉴요커 4인방의 Dating life(어쩌면 Sex life)를 에피소드별로 재밌게 보여준다. 1998년부터 2004년까지 방영했다고 하니 20년도 더 지난 작품인데 정말이지 지금 봐도 전혀 촌스럽지 않게 잘 만들었다. 오늘패션 롤모델에 대한 길거리 인터뷰를 하는 릴스를 봤는데 한 영국인이 'Carrie, till I die'라고 답했다. (섹스 앤 더시티 여주인공 이름이 Carrie)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 드라마 주인공이 아이코닉하게 남아있는 걸 보면 명작은 명작이다.



    우리나라 정서로는 다소 적나라한 제목으로 어그로를 좀 끌었을 듯한데 사실 제목에 비해서 그렇게 야한 드라마는 아니다. 매화마다 sex에 대한 대화와 장면들을 많이 보여주기는 하지만 주인공 Carrie의 시니컬한 비평이 내레이션으로 깔리면서 장면보다는 등장인물들의 정서에 포커스가 가게 하는 고도의 연출력이 돋보인다. 나도 30줄에 들어서서 그런지 몰라도 30대 여자의 싱글 라이프에 대한 Carrie의 고찰이 퍽 와닿는 대사가 많다.


    뉴요커 절친 4인방은 각각 갤러리오너, 변호사, 칼럼니스트, PR회사 대표로 살벌한 맨해튼에서 당당하게 살아남은 자신들을 'fabulous single ladies'라고 칭하면서도 번번이 실패하는 자신들의 dating life를 한탄하며 자기 X와 결혼한 20대 여자를 시샘한다. 누구보다 능력있고 본인들도 미처 다 기억하지 못할 만큼 많은 남자들을 만나고 예쁘고 스타일 좋고 인기 많은 이들이 정작 각자에게 '특별한' 사람에게는 그다지 쿨하지 못하다. 이 드라마를 보고 있자면 카페에서 옆테이블 여자들의 시시콜콜한 수다를 엿듣는 듯하지만 깊숙이 들여다보면 정신없이 몰아치는 세상에서 진짜 영원할 사랑을 찾고 싶은 여린 속내가 보인다.


Your girl is lovely, Hubbell


    적나라한 베드신을 보여줄 것만 같은 제목의 드라마가 정작 나에게 보여주는 건 적나라한 30대 싱글 커리어 우먼의 심리 상태이다. 남자에 연연하고 싶지 않으면서도 진짜 특별한 사랑이 오길 바라고, 내가 쌓아 올려온 커리어에 당당하면서도 내가 가지지 못한 매력 앞에 어딘가 주눅 드는 게 삼십대다. 어째 복잡한 법정드라마 보다 가벼운 연애 드라마라고 생각하고 시작한 섹스 앤 더 시티 정주행으로 사실상 더 깊은 삶에 대한 고찰을 하고 있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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