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자아 흔적 리스트
1.
‘너는 왜 계속 죄를 지어?’
‘네가 이래도 달라질 것 같아?’
‘이게 고쳐질 것 같아?’
‘이러면서 네가 무슨 하나님의 자녀야?’
‘그러면서 어떻게 그분을 사랑한다고 고백해?’
실수, 죄, 옛 자아의 흔적들이 사람의 발목을 붙잡아 넘어뜨릴 때. 사단은 꼭 이 행위를 꼬투리 잡아, 사람에게 ‘자격과 정체성’을 운운한다. 시끄럽기 짝이 없는 이 소리가 진짜처럼 들리면 사람은 흔들리곤 한다. 그럴 때마다 그냥 무시하면 좋으련만 구구절절 변명을 늘어놓을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사단은 콧방귀를 뀌며 더 신나서 떠든다.
예수의 보혈로 구원받은 이들은 모두 각자만의 종이를 갖고 있는데 거기엔 이렇게 쓰여있다.
<옛 자아 흔적 리스트>
그리고 우리는 이 종이를 들고 두 삶의 순례를 하고 있다. 걷고 걸어 어디까지 가냐고? 종착지가 있다. 그곳에 도달하면, ‘하늘나라 새 가족 환영'팀이 나와 긴 길을 끝낸 순례자들을 맞이한다. 하나같이 기쁜 표정으로 그들에게 웰컴 드링크를 건네며.
“완주하셨군요! 축하합니다. 생명수예요. 이 물을 마시면 그동안 쌓인 모든 피로가 사라질 거예요. 환영합니다. 저희가 얼마나 기다렸는지 몰라요! 드디어 천국에 오셨어요.”
순례자들이 목을 축이면 ‘종이 소각 부서'팀이 재빠르게 그걸 걷는다. <옛 자아 흔적 리스트>가 적힌 종이 말이다. 그리고 어디론가 걸어간다. 소각장, ‘성령의 불’이 활활 타오르고 있는 곳으로. 팀원들은 걷은 종이 무더기를 그곳에 던져버린다. 종이도, 순례의 길에서 사람을 힘들게 하던 그 옛 자아의 흔적들도 그제야 사라진다. 천국의 소각장에서.
2.
순례자 아름은 그곳을 상상하며 오늘도 자신의 길을 걸어가고 있다. 물론 그녀도 예외 없이 그 종이를 들고. 나는 잠시 함께 길을 걸으며 그녀와 잠시 대화를 나누었다. 그녀의 <옛 자아 흔적 리스트>를 힐끔 쳐다봤는데 뭐가 많이 적혀있었다. 그녀는 ‘어차피 다른 사람들도 잔뜩 쓰여있을 테니’ 자신의 옛 자아 흔적 몇 개는 독자들에게 소개해도 괜찮다고 말했다.
- 괜히 잘난 척하기
- 모르면서 아는 척하기
- 나와 다른 누군가를 질투하기
- 갈등을 회피하기
- 지나간 일을 곱씹으면서 후회하기
- ……
이 목록엔 이미 쉽게 지워진 흔적도 있고(할렐루야), 평생 연습해야 지워질 흔적도 있다. 실은 사단도 그 리스트를 갖고 있는데 이 지긋지긋한 것들은 그중에서도 잘 안 지워지는 목록을 빌미 삼아 사람을 건든다. 아주 교묘하게 건드는 바람에 순례자들은 걸음을 멈출 때가 많다.
3.
순례자 아름의 지난 화요일도 그랬단다. 그날은 그녀가 다른 순례자와 ‘화요 저녁 예배’라는 오아시스에 가기로 한 날이었다. 그곳에 가서 며칠 간의 피로를 씻으려고 했는데 그날도 어김없이 사단은 종이를 쥐고 펄럭이며 그녀를 거스르게 했단다. 아름은 예배에 가면 마음만 불편할 것 같아서 가지 말까 고민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골로새서 3장이 그녀를 도와주었다고.
아름, 흔들리지 마.
이미 너는 옛 자아를 버렸어.
그거 이미 십자가에 못 박았던 거 기억 안 나?
넌 이미 새로운 삶으로 건너왔어.
그녀가 예배에 도착한 후에도 사단 놈(이라고 말했다.)들은 그들이 제일 싫어하는 행동을 그녀가 하지 못하도록 방해했다고 했다. 그게 뭐냐고 물으니 “아휴, 그거 있잖아요 그놈들이 질색하는 거. 하나님 찬양하는 거.”라고 말했다.
‘너 오늘 옛 자아 리스트에 그 뭐냐 3번 했던데. 그런데 예배드리려고?’
‘네가 하나님을 찬양한다고?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려고? 네가?’
여간 귀찮은 녀석들이 아니다. 그런데 아름은 우리 성령님이 더 끈질기시다고 혀를 내둘렀다. “말도 마요. 성령님이 더 끈질기셨어.” 성령님이 자신을 끊임없이 도와주셨다고.
넌 이미 새사람이야.
네가 입고 있는 옷을 봐봐. 빛이야. 하얗잖아.
새것이야. 무시해버려.
그 단호함에 정신을 똑똑히 차린 그녀는 골로새서 3장을 떠올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보란 듯이 찬양했다고 한다. 그리고 통쾌한 표정을 지으며 역시 시끄러운 그놈들의 소리를 제압하는 방법은 말씀의 검을 들고 무시하는 것이었다고, 찬양이 최고라고 재잘거렸다. 사단 그 우스운 놈들은 이럴 때면 아무 힘도 못 쓰고 사라져 버린다고 덧붙이면서. 아름은 그날 집에 가는 길이 너무 상쾌했다고 말하며 싱그럽게 웃었다.
우리는 몇 마디 더 나누고 굿바이를 했다. 다음에 만나면 골로새서 4장에 쓰여있는 ‘정신을 차리고 기도하는 것’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기로 약속하며.
저 멀리 그녀의 노랫소리가 들린다. 다시 걸으니 좀 땀이 나나 보다. 종이를 부채 삼으며 흥얼거리는 걸 보니. 저 멀리 들리는 멜로디가 참 아름답다. 경쾌하게 걷는 저 순례자의 이마 위로 성령의 바람이 분다.
시작됐네
우리 주님의 능력이
나의 삶을 다스리고
새롭게 하네
자유하네
죄와 사망으로부터
나의 삶은 변하고 난 충만하네
은혜로다 주의 은혜
한량없는 주의 은혜
은혜로다 주의 은혜
변함없는 신실하신 주의 은혜
/
(...) Since you have taken off your old self with its practices
And have put on the new self, which is being renewed in knowledge
In the image of its Creator.
옛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
골로새서 3장 9-10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