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우리 가족의 만우절
2017년 만우절, 엄마는 내 동생이 백혈병에 걸렸다고 말했다.
3월의 마지막날, 그 당시 만났던 애인과 데이트를 하고 집에 가는 길이었다. 대학원에 입학한 나는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애인에게 이것저것 묻느라 바빠 밥을 먹었는데도 허기가 졌다. 집에 가서 뭘 먹을까 고민을 하고 있는 찰나에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의 목소리는 보통 때와 다름 없었지만 약간의 다급함이 느껴졌다. 군복무를 하고 있던 동생이 맹장 때문에 병원에 있어서 아빠와 함께 동생이 있는 군병원으로 가는 길이라고 했다. 건강하던 놈이 느닷없이 맹장인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지만, 많이 심각한거냐 물었다. 요즘 세상에 맹장이야 뭐 수술하면 된다고, 걱정하지 말라던 엄마. 내가 그녀를 모르는 것도 아니고 말만 그렇지 속으로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아프니 오죽 걱정일까 싶었다. 삼남매, 특히나 딸 딸 아들인 경우 아들이 귀한 집들이 많다. 아무도 아니라고 말하지만 우리 집도 그 중에 하나이다. 난 그중의 둘째딸, 언제나 관심을 받고 싶어 안달인 자식이다.
엄마와 전화를 끊고 나니 언니에게 전화가 왔다. 동생이 아프다고.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가족에게 비밀은 없다. 같은 동네에 살고 있는 언니. 조카를 데리고 집으로 찾아왔다. 결혼을 하고 아기가 생긴 후로는 부쩍 얼굴을 자주 보는 것 같다. 우리 가족의 첫 아기라 그런지 더 애틋하고 얼굴 한번 더 보고 싶어서 다들 아기가 오는 날만을 기다린다. 언니와 나는 동생 이야기를 하며, 혹시나 군대에서 스트레스 받는거 아닌가 추측이 난무하는 이야기를 했다.
언니와 조카를 집에 데려다주고 아무도 없는 빈집에 들어갔다. 이 시간 쯤이면 거실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을 아빠도, 그 옆에 앉아서 왔냐고 물어볼 엄마도 없었다.
다음날 언니네 가족과 동생이 있는 병원으로 향했다. 우중충한 날씨라 그런지 축축쳐지는 기분이었다. 만우절을 기념해 미리 외워둔 농담을 언니에게 던졌다. 그녀는 억지로 웃는 듯한 특유의 웃음소리로 나의 농담을 받아쳤다. 우리가 도착한 병원은 군병원이 아닌 분당에 있는 서울대병원이었다. 군부대는 간단한 진료만 가능한가보다라는 생각을 하며 병원으로 들어갔다. 동생은 여전히 수술 중이었고,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동생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동생의 수술을 집도한 의사 선생님은 일단 맹장수술은 끝났다, 라고 말했다. 또 뭐가 있나? 라고 생각했지만 누구도 더 캐묻지는 않았다. 의사의 말에 엄마는 감사하다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동생이 자리잡은 병실은 꽤나 높은 층이었고 3명의 환자가 더 있었다. 그들의 병명은 알 수 없어도 그들이 꽤나 중환자란건 지레짐작할 수 있었다. 한꺼번에 많은 사람이 병실에 있으면 안된다기에 보호자인 엄마를 제외하고 카페로 갔다. 아빠는 조카의 재롱에 미소지었지만 뭔가 이상했다. 나는 무심결에 언니를 쳐다보았고 눈이 마주친 그녀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꽤나 오랜 시간 병원에 있었던지라 인사를 하고 집에 가기 위해 동생이 있는 병실로 향했다. 동생 옆에 있어야 할 엄마는 없었다. 동생은 엄마가 휴게실에서 울고 있을 거라 말했다. 맹장이 이리도 심각한 병이었나, 생각했다. 동생의 말처럼 병실 중간에 위치한 휴게실 구석에 엄마가 앉아 있었다. 우리가 오는 것을 보고는 눈물을 닦아냈지만, 얼마나 울었는지 눈두덩이가 빨갛다. 엄마는 한참을 망설였다. 그리고 그녀가 털어놓은 이야기는 동생의 백혈병 진단이었다. 아무리 만우절이라지만 병원에서 도가 넘은 장난이었다. 우린 모두 그렇게 생각했다. 아무도 웃지 않았고, 아무도 맞받아치지 않았다. 아빠는 조카를 안아들고선 멀찌감치 떨어져 있었다.
집으로 가는 차안은 고요했다. 돌도 안지난 조카까지 눈치를 챘는지 보채지도 않았다. 집앞에 도착해 조심히 들어가라는 언니의 말에 대답도 하지 않은채 집으로 향했다. 불빛 하나 없었다. 현관 앞 자동 센서등도 말썽인지라 잠깐 켜졌다 꺼져버렸다. 방으로 들어가 작은 스탠드등 하나 켜놓고 가만히 누워있었다. 그리곤 엉엉 소리내어 크게 울었다.
그렇게 나는 한동안 불꺼진 집에 혼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