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동생을 간병하는 이의 투정
간병을 하고 집에 돌아왔다. 집안의 불을 하나도 빠짐없이 다 켰다. 거실과 주방, 화장실, 베란다, 내방, 동생 방, 안방, 안방 화장실, 심지어 이 집에 살면서 한 번도 켜본 적 없는 장식으로 달아놓은 누런 빛깔의 조명까지 환히 다 켜놓았다. 집에 혼자 있는 것이 겁나서 그랬던 이유도 있지만 이러면 뭔가 나 말고도 이 집에 누군가 더 있는 것 같았다. 그러면 어김없이 전화벨이 울렸다.
동생이 병원에 입원한 후부터 가족들은 동생의 안부를 묻기 위해 나에게 전화를 한다. 빈말로라도 전화를 받아 괜찮다는 말 한마디면 될 테지만, 괜찮지 않은 걸 뻔히 알면서도 매일같이 물어보는 가족들이 괜히 괘씸했다.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린다. 조카를 앞에 달랑달랑 매달고 온 언니다. 같은 형제끼리인데 자신은 간병을 하지 못하는 처지라 그런지 종종 내 안부를 물으러 오기도 했고, 저녁밥을 챙겨주기도 했다.
"오늘도 또야. 진짜 그만 좀 했으면."
하루가 멀다 하고 동생의 안부를 묻는 가족들에 대한 불평을 쏟아냈다. 그때 할머니가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언니는 아무렇지 않은 듯 전화를 받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나한테 그만 전화를 하라고 대신 이야기를 했다. 걱정하는 할머니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는 했지만 그 마음에 일일이 대답하고 싶지는 않았다. 조카 녀석은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커다란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언니를 집까지 데려다 주기 위해 함께 골목을 걷고 있었다. 저 멀리 작은 키에 뽀글 머리를 한 낯익은 뒷모습이 보였다. 바로 우리 할머니였다. 가까운 동네에 살다 보니 행여나 길가다 마주칠까 집 주변을 서성인 게 분명하다. 언니는 재빠르게 먼저 다가가 "왕할머니다 왕할머니"하며 조카에게 시선이 쏠리도록 노력했다. 평소 같았으면 조카에게 정신이 팔렸겠지만 오늘의 목표물은 나였다.
동생은 어떠냐, 밥은 잘 먹느냐, 매일같이 옆에서 자느라 네 엄마가 고생이 많다 등 쉴 틈 없이 질문 아닌 질문을 쏟아냈다. 엄마는 할머니가 동생의 얼굴을 보면 눈물을 보일게 뻔하니 그 모습에 동생이 힘들어할 수 있다고 병원엔 당분간 올 수 없다고 신신당부했다. 그 때문에 동생이 어느 병원에 있는지 엄마와 나, 아빠 그리고 언니네 가족 빼고는 아무도 모른다. 나는 아직은 예전 모습이랑 똑같다고, 곧 괜찮아질 거라는 말만 하고 집으로 왔다.
이번엔 막내 이모의 전화다.
"할머니가 또 찾아갔어? 못 가게 했는데 매일같이 가려고 해. 그냥 네가 그러려니 해줘."
늦둥이인 이모는 나와도 나이 차이가 많이 나지 않아 잘 어울려 논다. 외가 중에 나를 가장 많이 생각해주는 사람이다.
"간병하는 거 힘들지 않아?"
아무도 묻지 않았던 질문을 물었다. 그때 깨달았다. 매일같이 묻는 동생의 안부가 아닌 내 걱정은 안중에도 없는 가족들에게 서운했던거구나. 동생이 아프니 당연한 거지만, 꽤나 섭섭했던 모양이다. 난 괜찮다는 말과 함께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전화를 끊었다. 할머니에게 미안한 마음을 안고 잠이 들었다.
엄마의 호출에 수업이 끝나고 언니의 가족과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엄마는 우리 모두 골수기증을 위해 유전자 검사를 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부모는 확률상 50%만 일치하고, 형제들 중에 유전자가 100% 일치할 사람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설명을 했다. 엄마는 혹시나 우리가 검사를 받지 않는다고 할까 꽤나 걱정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검사 그까짓 거 뭐 아무렇지 않았다.
제발 나랑 일치하지 말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