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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범 May 19. 2020

골절 일기, '쯧쯧쯧'

나는 느리고 사람들은 빠르다

46일째 다리 깁스를 하고 있다. 학창 시절 다리 깁스했던 경험을 떠올리며 “대충 4주 정도면 풀겠지”라고 생각했지만 회복 기간은 자꾸만 늘어갔다. 4주째 병원을 갔더니 이제 부러진 발뼈가 겨우 절반 붙었단다.

“그 나이에 그 정도 속도가 정상이다”는 의사 말에 뼈도 나이를 먹는다는 말을 실감했다. 마음만은 젊은 아직도 팔팔한 40대 중반, 요즘 정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결과적으로 ‘쓰쓰쓰(적게 쓰고 아껴 쓰고 맞춰 쓰는 김재범식 다이어트)’가 ‘쯧쯧쯧’이 돼 버렸다. 오는 23일 병원을 다시 간다. 그날이 완쾌 예정일이 될지 아닐지. 이게 대체 뭐라고 두근거리는 마음이 절반이고 포기하는 마음이 절반이다. 하지만 언젠가 골절된 뼈는 붙을 것이고, 언젠간 두 다리로 힘차게 운동할 날이 오지 않겠나. 


46일차 골절 일기 ‘쯧쯧쯧’을 적어 내려간다. 


다리가 불편하니 모든 게 곤욕스럽다. 집 앞 편의점 가는 것도 노동이다. 결혼 생활 14년 동안 내 담당이던 ‘쓰레기 버리기’는 아내 몫이 됐다. ‘쓰레기 버리기’가 뭐 대단한 일이겠냐 만은 ‘쓰레기 버리기’를 필두로 그 동안 나와 나눠 하던 집안일과 육아를 혼자서 도맡더니 드디어 40일을 넘기면서 아내의 어깨와 팔이 고장났다. 밤마다 딸내미가 팔을 주무르고 아내는 “아이고” “으~” 등 기묘한 신음소리로 집안을 메운다. 그때마다 하필이면 발을 다친 내가 죄인이 된 것 같다. 


운동 기구들이 아무 손길도 닿지 않은 채 덩그러니 놓여 있는 것도 안쓰럽다. 요놈들을 하나하나 쳐다보며 대화 중이다. “너희도 심심하지?” “너희도 가만히 있으니 살 찌는 것 같지?”


얼마 전엔 야심 차게 장만했던 ‘서서 타는 자전거’를 처분했다. 부러진 뼈가 붙어도 당분간은 발등에 힘이 가해지면 좋지 않을 것 같아 중고거래 어플을 통해 좋은 집에 입양 보냈다. 작고 다부진 체격의 50대 아저씨가 서서 타는 자전거의 새 친구가 됐다. “가서 잘 살아라~”. 잘 키운 자식을 출가시키는 부모 마음이 이럴까. 


대신 집에서 유산소 운동할 기구는 필요해 ‘앉아서 타는 자전거’를 재구매했다. 서서 타는 자전거를 4만원에 팔고 앉아서 타는 자전거를 5만원에 샀으니 1만원에 구매한 셈이다. 빨리 깁스를 풀고 이 녀석과 놀고 싶어 근질근질하다.  


운동도 못하는데 움직임마저 적으니 체중이 100kg을 돌파할지도 모른단 불안이 엄습했다. 식이요법으로 체중감량을 해보자며 다이어트 도시락을 구매해 먹었는데 처음 산 도시락은 대실패였다. 새 모이만큼 담겨있는, 세 숟가락이면 밥이 없어지는 마법의 도시락이었다. 주문한 것을 다 먹은 후엔 좀 더 비싸지만 내용이 더 실해 보이는 다른 브랜드 도시락으로 주문했다. 처음엔 그것도 양이 적어 배가 고프더니 어느덧 적응이 돼 한 끼 식사를 대신하게 됐다. 


체중이 89kg까지 내려갔다. 운동도 안 하는데 먹는 것을 줄이는 것만으로 3kg이 빠진 셈이다. 하지만 이 수치는 지방이 아닌 근육이 빠진 수치라 바람직하지 않다.


그것마저 다 먹은 후엔 홈쇼핑에서 도가니탕을 주문해 먹기 시작했다. 골절 부상 이후 홍화씨, 칼슘 보조제, 마그네슘 보조제를 열심히 먹는데 도가니탕을 먹으며 골진이 더 많이 나와 뼈가 잘 붙을까 싶었다. 각기 다른 브랜드 제품을 두 세트씩 주문하고 하루 두 끼를 도가니탕으로 먹고 있다.  

프랜차이즈 식당에서 사 먹는 도가니탕은 15000원이 넘어가는데 홈쇼핑으로 주문해 집에서 먹으니 한 그릇에 6000원 내외 꼴이라 가성비가 그만이다. 



처음엔 맛있게 먹었다. 그런데 도가니탕을 먹는 날이 하루 이틀을 지나 일주일을 넘어가자 온 입안이 누린내로 뒤덮이는 기분이 든다. 깁스를 풀기만 하면 적어도 1년 동안은 도가니탕 쳐다도 안 보련다. 


사실 중요한 얘기는 지금부터다. 깁스를 하고 지팡이에 의존해 절뚝이며 느리게 걷다 보니 주변을 스쳐 지나가는 모든 게 그 어느 때보다 선명하게 보인다. 이전에는 볼 수 없던 풍경들이 보인다. 며칠 전 일이다. 정확하게는 5월 14일 오후 8시 40분 쯤이다.


활동량이 줄어 답답해하는 아들을 데리고 밤 놀이터에 갔다. 선선한 날씨 밤 시간 놀이터는 동네 사람들의 사랑방이다. 누구는 운동을 하고 누구는 앉아서 수다를 떨고 누구는 신나게 그네를 탄다. 신이 난 아들 녀석은 사람 많은 그 공간이 좋아서 알 수 없는 외계어를 터트리며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난리다. 나는 그런 아들 녀석을 케어하기 위해 지팡이를 짚고 절뚝거리며 따라다녔다. 


그러다 내 앞에 온 녀석을 꼭 끌어안고 있는데 누군가 못 볼 것을 본 듯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며 지나가는 게 아닌가. 


놀이터를 빙빙 돌며 운동을 하던 내 또래 아줌마 3명 중 한 명이다. 딸내미 학교 친구 엄마들이란다. 아내는 얼굴만 알지 친분은 없다고 하는데 그 중 한 명이 아들을 껴안는 내게 혐오라고 밖엔 느껴지지 않는 눈빛을 쏘아대며 지나갔다. 


순간 화가 치밀었다. 익숙한, 아는 눈빛이었다. 발달장애인 아들의 이해 못 할 행동과 그 이해 못 할 행동을 할 때마다 쳐다보던 사람들의 눈빛. 그 눈빛과 같은 눈빛을 방금 내가 받았다. 


“내가 뭐 잘못했어? 왜 그렇게 쳐다봐!”


내가 소리를 지르기 시작하자 질겁한 아내가 뛰어와 말린다. 딸을 생각하란다. 딸 학교 엄마들이니 나보고 참으란다. 딸의 사회생활을 위해 참아야 한다라고... 그럴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화가 가시지 않았던 건 그 눈빛이 아주 익숙한 혐오의 눈빛이었기 때문이다. 


아주 어릴 적 일이다. 동네 목욕탕을 갔는데 한 쪽 팔이 절단된 아저씨가 내가 먼저 들어와 있는 온탕에 들어왔다. 어린 마음에 물이 오염될 것만 같아 얼른 나왔던 기억이 난다. 그때 내 눈빛이 그랬을 것이다. 


어두운 놀이터에서 발을 절뚝이며 걷는 나는 아마도 지체장애인으로 보였을 것이다. 지체장애인 아빠가 발달장애인 아들을 껴안는 모습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 눈빛은, 혐오나 경멸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 그 눈빛은 아들이 일상에서 받고 사는 눈빛이었다. 그래서 내게도 익숙했다. 그 눈빛을 직접 받게 되자 나는 그만 감정이 폭발해버렸던 것이고. 


“이런 것이겠구나. 아들의 인생은”


물론 내 착각이었을 수도 있다. 단지 내 얼굴이 마음에 안 들어 그렇게 쳐다봤을 수도 있다. 차라리 그렇기를 바란다.


다리를 다친 내 걸음은 느리기만 하다. 목발에 의존하다 지팡이로 바꿨는데 한 발 한 발 힘차게 내 딛어도 속도가 나지 않는다. 나는 느린데 사람들은 빠르게 걷는다. 빠르게 걷는 사람들 사이에서 느린 나는 종종 앞을 가로막는 방해물 취급을 받는다. 


다리에 깁스를 하면서 이전엔 못 보던 풍경을 보고 있다. 장애인 아들을 키우면서도 지나쳤던 또 다른 풍경을 체감하고 있다. 


다리를 다쳐서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하지만 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고 있으니 이 시간이 아깝지만은 않다. 모든 게 느린 아들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기회다. 이 시간이 지나고 깁스를 풀게 됐을 때 남는 게 씁쓸함만이 아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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