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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oh Dec 09. 2023

꺾이지 않는 마음이 없더라도 우리는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 후기

1.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배경이 되는 시합은 전국대회 2차전인 산왕고와 북산고의 시합(산왕전)이다. 이 시합에서 영화의 주인공 송태섭이 소속된 북산고는 작년 대회에서 우승했던 산왕고를 꺾고 3차전에 진출하게 된다. 그러나 경기에 풀타임으로 출전하여 북산고의 승리에 이바지하고 이후 미국으로 유학까지 가게 되는 송태섭은, 아이러니하게도 산왕고와의 시합이 있기 몇 달 전 농구를 그만두려 했다.


그가 농구를 그만두려 했던 이유는 산왕전에서 '비장의 3점 슛'으로 팀을 승리로 이끈 정대만과의 갈등이다. 무릎 부상으로 인해 농구를 할 수 없게 되었던 정대만은 북산고 농구부의 차기 주장 후보로 거론되는 송태섭을 옥상으로 불러내어 폭행한다. 이후 송태섭은 더 이상 농구를 하지 않겠다는 듯 농구화를 박스에 던져 넣는다.


그러나 사건이 송태섭으로 하여금 농구를 그만둘까 고민하게 유일한 이유는 아니다. 송태섭이 농구를 그만두려 했던 복합적인 계기들은 가 오토바이를 타며 과거를 복기하는 회상 장면에서 요약적으로 제시된다. 얼마 전 있었던 폭행 사건부터 초등학교 시절 형의 유품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있었던 어머니와의 갈등, 그보다 더 이전에 있었던 형의 죽음까지. 삶의 힘겨운 구간들을 떠올리며 아슬아슬하게 차선을 넘나드는 송태섭의 모습, 그와 동시에 병렬적으로 제시되는 일련의 과거는 우리에게 그가 과거를 하나하나 거슬러 가며 신의 삶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짚어보고 있음을, 그에게 이 모든 일들은 그가 농구를 그만둘 이유가 된다는 것을 전한다.


하지만 일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송태섭의 곡예 운전이 사고로 마무리되며 그는 또다시 어머니와의 갈등을 는다.




2. 그리운 형의 말을 되새기며 앞으로 나아가다


렇게 막막한 상황 속, 병원에서 퇴원한 송태섭은 흐린 쉼표를 찍고 넘어간 고민을 안은 채 오랜만에 고향으로 향한다. 리고 잠시 고향을 둘러보던 그는 쏟아지는 비를 헤치고 다다른 바닷가 동굴, 형과의 아지트에서 형의 유품을 발견하곤 목멘 소리로 "형이 살아있었더라면"이라 말다. 그도 그럴 것이 송태섭에게 형은 농구에서도 어머니와의 관계서도 서투른 자신과 달리 이 모든 것에 언제나 여유로운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어릴 적 송준섭(송태섭의 형)은 농구로 "특별"하다는 소리를 들었으나 송태섭은 그의 형이 특별하단 말을 들은 것과 비슷한 나이에 "형만 한 동생은 없"는 평가를 받는다. 또한 송준섭은 아버지의 죽음으로 힘들어하는 어머니에게 먼저 다가가 "제가 이 집의 주장이 될게요"라고 위로할 줄 알았으나 송태섭은 오토바이 사고를 내어 어머니를 걱정시키기나 한다. 그보다 더 어릴 적 송준섭의 유품을 치우려던 어머니를 막아서다 어머니를 화나게 하기도 했다. 그렇기에 송태섭은  달리 무서운 게 많고 머뭇대며 도망치기 바쁜 듯한 자신이 한심하다. 동시에 무서운 게 없어 보이고 한없이 어른스럽던 형이 너무나도 그립고, 너무나도 보고 싶어 눈물이 난다.


그러나 송태섭은 곧 과거 형과 1대 1 시합을 하던 당시, 송준섭이 넘어 에게 자신도 경기를 할 때마다 심장이 두근두근거린다고 말해주었던 것을 떠올린다. 무서워도 태연한 척하는 거라고, 그러니 무섭더라도 상대를 압박하여 뚫어내라고 말한 것을 떠올린다. 그리고 마침내 그를 상대로 레이업 슛을 성공시킨 송태섭을 안아주며 그 느낌을 잊지 말라고 했던 것을 떠올린다. 그래서 송태섭은 "무서워도 있는 힘껏 센 척한다"는 형의 말과, 형의 말대로 뚫어내었던 기억을 되새기며 모래밭을 딛고 일어선다. "산왕에게 이긴다"는 형의 목표를 떠올리며 다시 농구를 시작한다. 그리고 얼마 후 정말로 산왕고로부터 승리를 쟁취해 낸다. 그런 송태섭의 손목에는 아지트에서 발견한 형의 빨간 손목 보호대가 함께 하고 있다.


그리하여 팀원들과 한 데 엉켜 승리를 축하하던 송태섭이 하늘을 올려다보는 장면은 관객들의 마음을 톡 건드린다. 두려움에 구역질이 나지만 형이 하던 것처럼 있는 힘껏 태연한 척 경기에 임하고, 마침내 형이 미처 이루지 못했던 꿈을 이뤄낸 송태섭이 꼭 형을 향해 나 이겼어, 라며 말을 거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3. 빨간 손목 보호대로부터의 독립, 두려움을 이겨내는 자신만의 방법


그러나 송태섭의 여정을  그가 형이 걷고자 했던 길을 대신 걸은 것으로 볼 수 없을 것 같. 영화 내에서 송태섭이 뚫어낸 것은 '형처럼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아니라 '나는 겁쟁이'라는 생각과 이로부터 기인한 자신에 대한 실망이었기 때문이다.


이전까지 송태섭은 형을 기억하는 주변인들의 배려 없는 말("형만 한 동생은 없군요."), 자꾸만 형의 비디오를 보는 어머니 그리고 형처럼 어머니를 위로하기는커녕 어머니를 힘들게 하기만 하 자신 등 여러 가지 요인으로 인해 자신은 결코 형처럼 될 수 없다고, 자신은 형보다 못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그는 형과 자신의 이름이 나란히 적힌 생일 케이크 초콜릿 장식을 반으로 똑 잘라낸 후 자신의 이름을 부숴버리기도 하고, 어머니께 보내는 편지에 "대신 살아있어서 죄송하다"라 적었다가 편지를 구겨버리기도 한다.  어머니를 위로하지 못 자신을 두고 "난 늘 도망치기만 했는데"라 표현하기도 한다.


하지만 산왕전에서 자신을 도망치기만 하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송태섭은 드리블만으로는   형과 정대만의 말에도 불구하고 "드리블이야말로 키 작은 선수의 살 "이라고 말하며 드리블만으로 산왕의 수비를 뚫어낸다. 긴장될 때마다 구역질을 하던 그는 이한나가 알려준 대로 손바닥을 바라보며 경기 때의 긴장을 해소한다. 형처럼 어머니께 직접 다가가 위로하는 대신, 편지를 써서 형을 그리워하는 어머니를 위로하고 농구를 계속하게 해 주어 감사하다는 을 전한다. 그리고 어머니 앞에서 센 척하는 대신 '무서웠다'라고 솔직하게 털어놓기도 해 본다.


이렇여전히 두려운 게 많은 송태섭은 두려움을 이겨내는 자신만의 방으로 막막함을 하나씩 "뚫어"낸다. 그리고 런 방법을 배운 송태섭은 경기가 끝난 그에게 버팀목과 같았던 형의 빨간 손목 보호대를 어머니께 전하며 그가 비로소 자신과 화해했음을, 형과 함께 걸어온 길을 이제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걸어 나갈 것임을 알린다.


마침내 엔딩이다.




4. 꺾이지 않는 마음이 없더라도 우리는


살다 보면 어려운 일, 막막한 일, 풀어내지 못할 것 같은 일을 마주하게 된다. 우리가 '꺾이지 않는 마음'과 부러지지 않는 의지를 가진 이라면 좋겠지만, 우리가 그렇게 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현실 앞에서 이 모든 건 결국 가정에 그칠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삶에 닥친 고난을 무서워하고 이로부터 도망치고자 하는 충동을 겪는다. 때로는 두려움에 못 이겨 정말로 달아나기도 한다. 우리의 마음은 종종 터무니없이 쉽게 꺾이곤 한다.


그러나 이런 우리이기에 꺾이지 않는 마음을 예찬하는 대신 갈등하고 망설이는 인물이 두려움을 이겨내는 자신만의 방법을 발굴하여 실천한 걸 그려낸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인상적인 것이다. 송태섭의 여정을 눈으로 따라가며 우리는 꺾이지 않는 마음이 없어도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다는 메시지를 읽어내기 때문이다.


의지만으로는 어려움과 막막함을 이겨내기 어렵다. 의지는 시련을 버텨내는 힘이지 시련을 극복하는 방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는 압박을 극복하는 구체적인 '어떻게'를 찾아 익히는 것만으로 시련 앞에서 더 의연해지고 강해질 수 있다. 형을 향한 그리움과 슬픔을 바닷가 동굴이란 애도의 공간에서 소리 내어 풀어내는 송태섭처럼, 형을 그리워하는 어머니에게 모진 말을 하는 대신 감사의 말을 담아 편지로 보내는 송태섭처럼, 막막한 경기 진행 속에서 형이 알려준 대로 태연한 척 구는 송태섭처럼, 돌파할 구석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가장 자신 있는 드리블로 당당히 수비를 뚫어내는 송태섭처럼, 어머니의 앞에서 떨리는 손은 숨기되 말로"무서웠고요"라며 자신의 심정을 솔직히 털어놓아보는 송태섭처럼, 미국에 가서도 긴장이 올라와 구역질이 나올 때마다 이한나가 알려준 대로 손바닥을 보며 긴장을 가라앉히고 태연하게 코트에 나서는 송태섭처럼 우리도 우리만의 방법을 찾는다면, 꺾이지 않는 마음이 없더라도 우리는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무언가 두렵더라도 자신을 미워하거나 주눅 들 필요 없다, 두려움을 이겨낼 방법은 많으니까.


송태섭이 계속해서 농구를 해나갔으면 좋겠다. 아마 잘 해낼 것이라 생각한다.






231209, 23년도에 작성한 두 편의 글을 합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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