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갛고 하얀 깃발
워킹홀리데이를 가겠다고 선언했을 때, 주위에선 어느 나라로 떠나는지를 제일 궁금해했다. 이미 워킹홀리데이로 잘 알려진 호주, 캐나다, 일본, 영국 등의 나라라고 짐짓 예상해서 그랬는지 내가 "덴마크"라고 대답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한결같이 똑같았다. "아니 왜 덴마크야? 덴마크도 워킹홀리데이가 돼?"
그랬다. 덴마크도 워킹홀리데이가 가능한 나라였다. 나도 대학 친구가 귀띔해주기 전까진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어느 날 직장생활에 너무 지쳐있던 내게 대학 친구인 문군이 덴마크행을 추천해준 터였는데, 큰 고민 없이 덴마크를 선택한 것은, 먼저 다녀온 그 친구가 진심으로 행복했음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덴마크를 택한 이유에 대해 내게 뭔가 감동적인 답변을 바란 몇몇 사람들에겐, "세계에서 제일 행복한 나라라고 하잖아요." 또는 "북유럽의 예술과 낭만을 몸소 체험하고 싶어요."라고 무척 교과서적인 궤변을 늘어놓기도 했었다.
어쨌든, 나는 그렇게 덴마크를 선택하게 되었다. 이 결정과 관련해 어이없는 일화가 하나 있는데, 한국을 떠나기 이틀 전 가족들과 당일로 남이섬 여행을 갔을 때였다. 섬의 숲길 이리 저리를 둘러보다 각양각색의 국기들이 걸려있는 곳을 지나치게 되었는데, 여행에 동행한 친척 언니가 웬 빨간 바탕에 흰색 줄이 십자로 그어져 있는 국기를 보더니, 저거 덴마크 국기가 아니냐고 물어왔다. 왠지 이상하게 생소해서 아닌 것 같다고 했는데, 알고 보니 그게 덴마크 국기였다. 참내.
이런 내가 왜 하필 덴마크로 떠났냐고? 지금의 나보다 조금은 더 행복해지고 싶으니까. 그리고 그러기로 마음을 먹었으니까. 어설프게 늘어놓았던 억설이 살짝 창피하긴 하지만, 행복해지고 싶은 마음은 참으로 진심이었던 그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