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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연일 Feb 10. 2023

기계생명체의 따스한 위로

MMCA 현대차 시리즈 2022: 최우람 [작은 방주]


이럴 수가. 1층에서 내려다 보이는 광경부터 흥미롭다.

<원탁> & <검은 새>

 작년 SNS에서 <원탁>이 움직이는 동영상을 보고 충격받은 나는, 시간이 될 때 이 전시회에 꼭 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었다. 지푸라기 인간들은 실제로 보니 성인 남성 정도 되는 크기였다. 무릎과 목의 부들거리는 떨림에서 무거운 것을 온몸으로 떠받치고 있는 그 힘겨움이 전해진다.


 ‘머리’가 되려고 애쓰는 어른들을 보다가 지난 12월 퇴사했다. 그래서인지 이 원탁은 오히려 공평하게 보이기도 했다. 현실에서는 조직에서 몇몇의 사람들만이 아주 오랜 시간 감당하기 어려운 무게를 짊어지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서. 그런 사람들은 몸과 마음이 부러져 땅에 쓰러지고, 그제야 이 원탁을 짊어지지 않게 된다. 나도 그런 사람 중 한 명이다.


<하나>

 무한 경쟁의 시대를 사는 것도 억울한데, 인류는 몇 년 동안 전 세계적으로 역병에 휩쓸리고 말았다. <하나>는 국화꽃이다. 꽃잎은 타이벡으로 제작되었다. 타이벡은 코로나 검사와 진료 현장에서 의료진들이 착용한 방호복의 재질이다.


 내 키보다 더 커 보이는 이 거대한 꽃은 알 수 없는 소리와 함께 아주 서서히 피고 진다. 피어날 때는 중심부에서 따스한 빛이 뿜어져 나오고, 꽃의 축 자체도 앞으로 튀어나온다. 질 때는 반대로 축 자체가 뒤로 빠지며 빛이 소멸한다. 흰 꽃이 검은색으로 변한 것 같은 착각마저 들게 한다. 소리와 빛, 깊이가 주는 입체감이 더해져 정면에서 보고 있으면 이 커다란 꽃이 나와 함께 호흡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냥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된다.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고. 피고 또 지고….
‘기계생명체’에게서 진짜 ‘생명’을 느끼다니!


<샤크라 램프>, 사진에는 하나만 있지만 날개 방향과 색이 반전된 하나가 더 있는, 쌍으로 이루어진 작품이다.

 이러한 생명력은 전시관 끝쪽에 배치된 <샤크라 램프>에서도 느낄 수 있다. 사실, 패딩 보관 때문에 화장실 옆 물품보관소에 갔던 나는 이 작품을 가장 먼저 보았다. 그 후 <하나>를 연이어 보게 되어서 최우람 작가의 ‘기계생명체’에 더 압도되고 말았다.


 겹겹의 금속 층에서 여러 개의 축이 돌아가는데도, 서로 부딪히지 않는 날개가 신기하다. 움직임은 매우 부드럽다. 샤크라 램프는 날개가 닫히면 완벽한 원판모양이 된다. 중심부의 꽃봉오리가 빛을 뿜으며 피어나면 다시 날개 모양의 꽃잎들이 펼쳐지는데, 꼭 살아 숨 쉬는 요정의 요람 같다. 가운데 꽃봉오리에서 요정이 태어날 것만 같은! 그러다 가만히 서서 계속 바라보면, 각자의 자리에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부지런히 생명을 발산하는 그 움직임이, 사람의 장기 같기도, 우주 같기도 하다.


<작은 방주>, <등대>, <두 선장>, <제임스 웹>, <무한 공간>, <닻>, <천사>, <출구>

 메인 작품인 <작은 방주>는 참 혼란스러운 배다. 작은 방주는 육지의 등대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등대>를 싣고 운항한다. 선장은 심지어 두 명인 데다 각기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뱃머리 <천사>는 일반적인 모양과 다르게 아래로 축 처져 있고 방주에 붙어 있지도 않다. <닻>도 방주에 붙어 있기는 커녕, 사슬이 끊긴 채로 한쪽 벽에 박혀있어 제대로 정박된 것인지 알 수 없다. 이중 거울로 된 <무한 공간>과 방주 뒤 영상으로 보이는 <출구>는 끝이 없는 혼돈의 공간이다.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으로 <두 선장>은 어떤 미래를 꿈꾸는 것일까? 웅장하고 부드럽게 움직이는 이 작은 방주의 여정에는 끝이 있을까? 자연스럽게 현인류의 미래를 상상하게 된다.


 그리고 지극히 개인적인 나의 방주를 생각한다. 초등학생 때 전민희 작가의 판타지 소설 <룬의 아이들: 윈터러>를 읽다가 마음에 드는 시구가 있었다. ‘나는 내 운명의 주인, 내 영혼의 선장.’ 영문학과에 와서 그게 윌리엄 어니스트 헨리의 시구였다는 걸 알았다. 그때는 어릴 때 받았던 감동과는 또 다른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신을 믿는다. 내 방주의 키는 나만 잡고 있는 게 아니라 그분께서도 잡고 계신다고 믿는다. 인격적인 분이라 내 의견을 존중하실 것이다. 그래서 때로는 내가 엉뚱한 방향으로 가기도 하겠지만, 언제든지 도움을 청한다면 도와주실 분임을 안다. 큰 바다 한가운데서 폭풍이 몰아친다고 해도, 해적에게 습격당할지라도 나는 두렵지 않다. 브런치에 마지막으로 글을 썼던 2021년 6월부터 다시 글을 쓰고 있는 현재 2023년 1월까지의 어떤 인도하심을 떠올려본다. 첫 회사에서 많이 일했고 많이 배웠다. 어려운 순간들을 함께 해주었던 동료들에게 정말 감사하다. 그러나 내가 믿는 신께는 더욱더 감사하다. 또다시 백수가 되었지만 두렵진 않다. 오히려 나아갈 미래가 기대된다.


 이것이 현대 미술이 가진 마력일까? 최우람 작가는 <작은 방주>를 보고 이렇게 느끼는 사람도 있다는 걸 알런지! 상상하니 웃음이 나온다.


<빨강>

 <작은 방주> 이후 배치된 전시 말미의 여러 작품들을 통해 작가는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주려는 것 같다. 온통 붉은 방에 피어난 붉고 거대한 꽃, <빨강>은 방으로 들어가기 전부터 엄청난 위압감을 준다. <하나>와는 다르게 시든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같이 온 친구는 하나보다 빨강에 더 감탄했다. 강한 생명력을 뿜어내는 이 꽃처럼, 팬데믹을 극복하고 인류는 늘 그랬듯이 또 답을 찾을 수 있을까. 전쟁과 차별과 환경 파괴가 난무하는 이 지구별에서 말이다. 적어도 답을 찾고자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다면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거라고…. 그렇게 믿을 수밖에 없다.


 현재 내 영혼이 죽어있다고 느끼는 사람들 혹은 삶의 방향을 잃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이 전시를 추천한다. 아름다운 ‘기계생명체’들을 통해서 살아있음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아직 숨을 쉬고, 생각하는 존재라는 걸. 





전시 정보


전시명: MMCA 현대차 시리즈 2022: 최우람 [작은 방주]

기간: 2022-09-09 ~ 2023-02-26

장소: 국립현대미술관

TIP:

- 물품보관소는 무료다. 패딩 보관을 추천한다.

- <원탁>, <작은 방주>는 구동 및 공연 시간이 정해져 있다. 홈페이지에서 확인이 필요하다. (https://www.mmca.go.kr/exhibitions/exhibitionsDetail.do?exhFlag=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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