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근대성이라는 질병
근대적 세계관은 세상에 대한 환멸, 자유주의적 개인주의의 발달, 시장경제과 자본주의의 등장이라는 세 가지 주요 특징과 함께 부상했다. 여기서 근대적이라는 것은 특정한 관점과 태도를 지닌 문화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근대성은 무엇보다도 존재 양식이며, 세계와 그 안에 있는 우리의 자리에 관해 우리가 취하는 입장이다.광고업계를 다룬 티비시리즈 <매드맨>에서 마리화나에 취한 히피가 텔레비전 광고는 인간을 부자유하게 만든다고 말하자, 드레이퍼는 그에게 취업해서 뭔가를 성취하라고 대꾸한다. 그 순간 매지의 비트족 남자친구가 고전적인 반문화적 피해망상이 서린 언급을 광고맨에게 던진다. “당신은 거짓을 제조하죠. 욕구를 창출한다고요. 저들은 몰라도 우리는 안 넘어가요.” 지겨워진 드레이퍼는 자리에서 일어나 모자를 눌러쓰고 찬물을 끼얹는 말을 날린다. “이런 소리해서 미안한데, 대단한 거짓말이나 시스템 따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세상은...무관심할 뿐이에요.” 매우 낙담한 답변이 들린다. “씨…꼭 그 말을 해야 직성이 풀리나:” 이 대화는 힙스터와 보수주의자 사이에 벌어지는 전형적인 입씨름이다. 그러나 무관심한 세상에 관한 드레이퍼의 마지막 대사는 근대적 삶의 조건의 핵심을 찌르는, 한층 깊은 존재론적 자각을 거론한다.
옛날 옛적에 인류는 세계를 ‘우주’로서 경험했다. 우주(cosmos)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한 단어로 ‘질서’나 ‘질서 있는 배치’를 가리킨다. 무엇이 됐든 그것은 가치와 목적이 있는 세상이었다. 각 구성원은 전체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알고 유기적인 조화 속에서 적절한 기능을 수행함으로써 정체성을 획득했다. 제인 오스틴의 작품들이 중요한 이유도, 세계가 좀 더 근대적인 감성으로 전환하는 순간을 담아냈기 때문이다. 오스틴의 작품들은 구시대의 사회질서가 부여하는 역할에 압박감을 느끼며 개인주의에 눈뜨는 등장인물들을 다룬다. 중요한 질서 중 하나인 유일신 종교들은 대체로 ‘포괄적 교리’를 통해 지구상 생명체, 세계의 작동 방식, 인간사회가 일정한 방식으로 구축된 이유 등을 통일된 형이상학적 체계 안에서 설명하고 정당화한다. 포괄적 종교의 임무는 지구상과 인간사회에 일어나는 모든 현상을 이해 가능한 것으로 만드는 일이다. 모든 현상에는 결국 이유가 있으며, 그 이유는 신의 의지 혹인 신의 명령이라는 관점에서 해석된다. 이것은 철학자들이 ‘목적론적 설명’-궁극의 목적이나 목표를 염두에 둔 설명-이라고 부르는 것의 한 버전이다. 우주 속에 구조적으로 탑재된 궁극의 목적∙목표∙역할에 기대는 일이 불합리하고 무의미한 것으로 들어날 때 세상에 대한 환멸이 찾아온다.
가장 강력했던 포괄적 종교인 기독교의 힘을 꺾은 강자는 과학이었다.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설에서 다윈의 자연선택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과학적 발견은 사물의 총체적 구성 속에 위치한 ‘자기 자리’에 대한 인류의 생각을 결정적으로 뒤흔들어 놓았다. 과학적 사고방식의 핵심요소는 두 가지다. 첫째는 일반법칙과 일반원리 추구에 매진하는 것이고, 둘째는 과학의 진보란 개방적이며 궁극적으로 비결정적이라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다. 세상을 초자연적 연속극으로 이해하는 수준에서 처음 벗어난 사람으로 보통 기원전 620-546년경에 살았던 그리스 철학자 탈레스를 든다. ‘모든 것은 물’이라는 만물의 법칙 자체는 대단치 않지만, ‘이성에 근거한 일반 이론’이라는 개념 혁신을 일으켰다는 점에서 탈레스에게 ‘최초의 진정한 철학자’ 타이틀이 주어진 것은 온당하다. 현상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특정 사건이 어떤 식으로 특정 결과를 초래하는지 보여주는 일정한 공식이 필요하며, 그것은 과거의 사건을 설명하는 동시에 미래의 사건을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사건을 이해하기 위한 어떤 일반원리가 필요하다. 일단 ‘이성에 근거한 일반이론’ 개념을 수용하면 우리는 막강한 인지 도구로 무장하게 된다. 세계는 예측 가능한 일반법칙에 따라 작동한다는 관념이 우리에게 논리∙과학∙기술을 주고, 도덕윤리 영역에서는 공정성과 평등원리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탈레스는 물이 만물의 근원이라는 주장을 통해 기존의 자의적이고 기이한 막장드라마식 사건 풀이에서 벗어나는 운명적인 첫걸음을 내디딘 동시에, 현상의 이해와 미래의 예측을 돕는 일반원리로 세상을 설명하는 첫시도를 해냈다.
가차 없이 전진하는 과학의 속성을 온전히 인식할 때만이 세상에 대한 환멸이 일어난다는 것을 보여준 사람은 바로 19세기 말에 활동한 독일 사회학자 막스 베버다. 그는 과학의 발견은 그 속성상 더 나은 발견으로 개선되고 대체될 운명이라고 주장했다. 우리는 최종적으로 진실에 도달했다고 절대로 말할 수 없다. 더 폭 넓고 더 깊이 있는 법칙에 근거한 설명이 나올 가능성이 언제나 열려 있기 때문이다. 베버에게 과학에 대한 매진은 헤아릴 수 없는 신비한 힘이 작용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계산으로 파악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그건 세상에 대한 환멸이 일어난다는 뜻이다. 신비한 힘의 존재를 믿었던 야만인처럼 혼령을 조정하거나 그들에게 애원하는 마법에 의지할 필요가 없다. 기술과 계산이 그 일을 대행한다. 이제 세상은 그저 에너지와 운동하는 물질로 이루어진, 인간사와 인간고뇌에 무심한 곳일 뿐이다. 세계가 더 이상 의미나 가치의 원천이 아니게 된 점은 철학적으로 중요한 문제다. 세계에 대한 어떠한 서술도 당위에 대한 유효한 결론을 주지 못하게 됐다. 이를테면 어떤 집단이 현재 노예라 해서 노예제도가 자연스럽고 정당하다 주장할 수 없다. 사실과 당위의 차이, 그리고 전자로 부터 후자를 도출하는 논리의 부당성에 데이비드 흄이 주목한 사실은 유명하다. 환멸이 불러온 가장 결정적인 효과는 개인과 집단이 계급과 위계질서 내에서 제자리를 지키도록 강제한 옛 체제를 해체했다는 점이다. 체제가 붕괴되어 제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어졌으니 어떤 의미에서는 해방이었다. 스스로 자기만의 길을 찾을 자유가 주어진 것이다. 이리하여 세상에 대한 환멸은 근대의 두 번째 주요 특징인 정치적으로 유의미한 단위로서의 개인의 등장으로 이어진다.
근대의 탄생에 관한 문헌을 보면 정치적 개인주의가 16세기에 일어난 종교적 개인주의의 귀결이라는 주장이 반복된다. 여기서 결정적인 사건은 테니슨이 “성직자가 지배하던 시대가 끝나고 개인의 자유라는 새 시대의 출현을 알리는 징조”라고 선언하며 시작된 종교개혁이다. 교회의 권위가 개인의 신앙을 매개하는 구교와 달리, 신교는 각 개인의 성경 해석에도 권위를 부여했다. 신교도가 신과 맺는 관계는 타인이 매개하지 않는 개인적인 것이며, 독실한 신앙은 선행이나 죄의 고백보다는 의지의 순수함에서 나온다. 마르틴 루터의 말처럼 “인간은 행위가 아니라 오로지 믿음으로만 구원받을 수 있다”. 신교는 성직자라는 별도 계급의 필요성을 부정함으로써 종교를 개인과 하나님 사이의 사적인 문제로 바꿔놓았다. 그리고 믿음을 통한 구원을 강조함으로써 자기 양심의 점검을 중시하는 내면 지향적 태도를 불러왔다.
종교개혁이 낳은 종교적 개인주의는 중앙집권국가의 등장이라는 중요한 발전이 있었기에 작동할 수 있었다. 근대국가의 부상과 개인의 등장의 긴밀한 관계는 충분히 인식되지 않을 때가 있다. 그 둘은 사실상 동전의 양면이다. 중앙집권국가가 권력을 강화하기 시작하던 16세기 정치의 중심에 개인이 놓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국가라는 개념은 보통 정치학 개론서에서 “영토에 행사하는 독점적 권력” 또는 특정한 지리적 영역에 행사하는 “최고의 입법∙행정∙사법권”으로 정의되는 주권 개념이다. 옥스퍼드 대학 정치학자 래리 시든톱의 말처럼 근대국가는 ‘법 앞에 평등’이라는 약속이 내포된 트로이 목마인 것이다.
국가라는 개념 자체가 주권자, 즉 최고 입법권력에 누구나 평등하게 예속된다는 의미를 수반한다. 국가를 논할 때는 거기 소속된 백성들의 동등한 지위를 상정하게 된다. … 일단 주권행위체나 주권국가가 생기면 전통적 관례는 죽권자가 허가하지 않는 한 법률의 지위를 상실한다.
이리하여 국가의 등장은 이미 시작된 환멸의 과정을 정치적으로 촉진했다. 환멸이 전통 사회신분제도를 고정된 것으로 정당화하던 형이상학적 기초를 깨뜨렸다면, 국가는 수세기에 걸쳐 덧칠한 페인트처럼 겹겹이 쌓인 다층적 정치권력을 뚫고 군주와 개별 백성 사이에 중개자 없는 직접적인 관계를 확립했다. 다른 통치 형태와는 대조적으로 국가는 단연코 개인들의 집합체였다. 상인, 아내, 남작, 성직자 같은 사회적 역할은 부차적일 뿐 이제 누구나 일차적으로 ‘개인’으로 인식됐다. 일차적/부차적 사회 역할의 구별과, 법률/관습의 구별은 주권국가라는 전형적인 근대제도의 산물이다. 그리고 일단 이것이 확립된 후에는 더욱 발전된 형식으로 진화하여 법률의 영역인 공적 영역과 개인의 양심, 신앙, 선택, 목적 추구의 영역인 사적 영역이라는 자유주의적 개념 구분이 가능해진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제한적 국가’라는 개념을 통해 주권은 무제한이라는 관념을 수정할 필요가 생긴다.
서구 개인주의의 특징으로 간주되는 일련의 미덕은 종교적 관용에서 시작되었으며, 끊임없는 대륙의 종교분열, 경제적 피폐와 도덕적 피로감에 지친 유럽은 어쩔 수 없이 이를 받아들였다. 개인의 권리에 대한 자유주의적 신념도 비슷한 과정을 통해, 즉 점차 막강해지는 중앙집권적 국가권력이 국민에게 야기하는 참상이 널리 공유되면서 부상했다. 17세기 철학자 로크는 국가권력을 나누어, 시민이 분립된 권력을 서로 견제시키는 방식으로 항소할 권리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것이 입헌주의 혹은 제한국가 개념의 시작이다. 국가 통치는 법률에 따라 이루어지고, 모든 국민은 법앞에 평등하며, 타당한 법률의 범위에 따라 이루어지고, 모든 국민은 법앞에 평등하며, 타당한 법률의 범위는 명시적으로 보장되는 개인의 권리와 자유에 의해 제한된다는 것이 입헌주의의 핵심 원리다. 입헌 국가는 개인의 자율성 존중과 이성, 선택, 책임의 자유로운 행사를 최우선에 두는 국가다. 개인의 자율성 존중은 자연적 위계질서와 주어진 사회적 역할을 거부하면서 생겨난 결과다. 국민이 소속 국가 내에서 공식적인 평등권을 보유하고 더 이상 서로에 대해 자연적이고 강제적인 의무를 지지 않을 때, 무엇을 숭배하고 어떤 일을 즐기며 누구를 어떻게 사랑하느냐와 같은 수많은 결정은 개인적인 선택의 문제가 된다. 이런 종류의 자유는 개인의 결정이 실질적으로 얼마나 존중되고 보호되느냐에 의존한다. 적어도 자유사회라면 개인의 양심 보장과 사적 목표의 추구를 보호할 최소한의 여지를 반드시 확보해두어야 한다. 권리란 공동선을 앞세운 국가의 결정에 대항해 개인의 사적 행동 영역을 보존할 수 있는 비장의 카드인 것이다.
홉스에서 로크로 이어지는 사상의 발전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개인적 자유체계의 주요 요소 하나는 경제적 개인주의, 즉 시장경제다. 비평가들 용어로는 자본주의다. 국제 시장경제의 등장은 근대의 발전 단계에서 세 번째에 해당하며, 이 단계는 가장 심한 변화와 함께 가장 많은 논쟁과 사회 분열을 촉발한다. 18세기 말과 자본주의라는 말을 연결시켜 생각하면 디킨스의 작품(올리버트위스트)세계처럼, 불결한 도시, 연기를 토하는 공장, 다 떨어진 옷을 걸친 중노동에 지친 6세 아동을 구타하는 실크 모자를 쓴 악독 지주 등이 먼저 떠오른다.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지만, 자칫 자본주의가 새 경제적 개인주의를 유도한 강력한 사상이었음은 잊은 채 물질권력만 강조하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특히 물질적 관계(와 계급투쟁)에만 초점을 두다 보면 개인의 자유, 사적 영역의 등장 그리고 생산 및 소비 윤리에 대해 근본적으로 새로운 접근법을 낳은 계약의 중요성이 가려진다. 로크의 자유주의가 경제적 측면에 가져온 가장 중요한 결과는 사익을 추구하는 개인들이 공공선에 기여할 수 있다는 발상이다. 이 ‘도덕의 민영화’로 인해 욕심, 욕망, 야심, 허영처럼 겉으로 보기에 죄악인 것도 사회에 유익한 결과를 낳는 한 도덕적으로 칭송받을 만한 것으로 간주됐다.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개인이 각자 자기 이익을 추구하면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의도하지 않았던 목적의 성취를 촉진”하게 되며, 그 목적이란 바로 공공의 이익이라고 주장했다. “우리가 저녁식사를 할 수 있는 것은 푸줏간 주인이나 제빵사의 선의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자기 이익을 추구했기 때문”이라는 게 스미스의 말이다.
이것은 공공질서의 중요성과 개인의 선의, 공공정신을 미덕으로 보는 그리스도교나 대중의 일반적 도덕감정에 위배된다. 그러나 동기보다 결과가 도덕적으로 더 중요하다는 발상은 로크의 경제적 개인주의로부터 그리 어렵지 않게 도출된다. 사회 전체에 이롭다면 사람들의 행동 방식이 무슨 상관이겠는가. 사익 추구로 사회에 긍정적인 결과를 낼 수 있다면 무슨 불만이 있을 수 있겠는가. 이 새로운 도덕을 잘 지탱하는 논리가 공리주의였다. 철학자 겸 사회개혁가 제러미 밴담은 이를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으로 요약했다. 공리주의식 행복 추구-쾌락주의-가 도덕적으로 용인되는 목표로서 궁극의 타당성을 획득하는 계기는, 여가와 소비가 귀족 계급의 전유물이길 멈춘 18세기 후반에 시작된 1차 소비자 대혁명이다. 소비주의는 중간계급에 스며들었고 용인됐다. 물건을 구매하는 행위, 심지어 상품이 주는 정신적 위안을 믿는 일이 미덕으로 간주됐다. 1770-80년대에 소비가 극적으로 촉진된 요인이 정확히 무엇이었는지는 사회학 문헌에서 상당한 논쟁거리로 다뤄지고 있으나, 대중에게 생긴 패션 감각이 하나의 중요한 변화였다는 점에는 누구나 동의한다.
소비자혁명이 있으려면 생산에서도 혁명이 일어나야 했다. 소비와 생산은 동일한 경제 행위의 양면이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소비는 곧 다른 사람의 생산이다. 산업혁명의 정확한 시기들 두고 역사가들 사이에 논란이 있지만 대체로 1760년대 영국 섬유산업 분야에서 일어난 몇 가지 기계 혁신과 함께 시작되었다고 본다. 산업혁명은 경제의 거의 모든 면에 영향을 미쳤지만 핵심을 두가지로 추리면, 첫째, 인간이 수행하던 숙련기술노동을 기계가 대신하고, 둘째, 인간이나 동물이 행하던 비숙련노동이 증기력 같은 무생물 노동력으로 대체됐다는 점을 들 수 있다. 18세기 산업 발전이 혁명적인 이유는 강력한 전염성이었다. 란데스는 이렇게 적고 있다. “혁신은 전염된다. 주어진 기술에 내재된 원리들은 수많은 형태를 띨 수 있고 수많은 사용자를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산업혁명은 중산층 가정의 철저하게 사적인 소비욕구에 의해 촉진됐다. 경제 개발과 소비를 통해 개인의 행복과 자기 만족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영국의 소비자와 상인들은 세계 어디에도 전례가 없는 강력한 효과를 일으켰다. 이것을 가장 잘 이해한 사람이 카를 마르크스였다. [공산당 선언]은 중세의 ‘나태함’과 대조되는 왕성한 동력을 내면에서 끌어내 활성화시킨 근대국가의 정복자 부르주아 계급을 상세하고 진지하게 묘사한다. 부르주아 계급은 기술의 잠재력을 사적 경쟁의 힘과 엮어 세계를 재구축했다. 부르주아 계급은 일단 우위를 점하면 “모든 봉건적∙가부장적∙목가적 관계를 파괴했다”. 부르주아 계급은 좋은 삶에 대한 새 비전, 그리고 인간이 무언가 할 수 있거나 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위한 사회적∙정치적 공간을 열었다.
알고보니 자본주의는 모든 것을 녹이는 용해제 였다. 서로 다른 사회를 분리하던 문화 장벽도, 같은 사회구성원들 간의 유대관계도 해체해버렸다. 가족관계나 봉건적∙종교적 유대, 기사도나 명예 같은 행동 수칙 대신 냉혹한 금전적 이해관계만 남고, 나머지는 “이기적 타산이라는 얼음물에” 익사해버렸다. 그러는 동안 각 지역만의 독특한 것들이 국제시장의 가차없는 얼음물에” 익사해버렸다.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분석과 비교했을 때, 20세기 말 세계화 비판자들의 비평은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자본주의는 공적∙사적 영역에서 쉼 없이 발생하는 격동과 변화를 견뎌내는 인간의 거의 무제한적인 능력을 착취한다. 자본주의 사회는 인간이 안주하지 않고 혁신과 업그레이드를 위해 부단히 움직이도록 엄청난 압력을 행사한다. 어디로든 기꺼이 이동하고, 무엇이든 기꺼이 해내야 하며, “스스로 능동적으로 변화하지 못하는 사람은 시장의 지배자들이 강요하는 극적인 변화의 수동적 희생자가 된다’ 이렇듯 근대성은 과학 발전이 초래한 세계에 대한 환멸, 정치적 개인주의와 자유의 부상, 기술 주도의 창조적 파괴를 부르는 자본주의가 서로 뒤얽힌 산물이다.
끊임없는 생산혁명, 모든 사회조건의 연속된 동요, 영구한 불확실성과 불안은 부르주아의 시대와 이전 시대를 구분짓는 특징이다. 모든 고정된 관계는 숭앙받던 옛 편견이나 견해와 함께 일소되고, 새로 형성된 모든 것은 굳어지기도 전에 벌써 한물간다. 견고한 것은 모두 흔적 없이 사라지고, 신성한 것은 전부 세속화되며, 인간은 마침내 자기 삶의 실재 조건과 인간관계를 냉정히 직시해야 할 처지에 놓인다.
그러나 사람들은 근대의 열매(모든 물품, 모든 자유)를 맛보는 법을 배우기가 무섭게 씁슬한 부분을 불평하기 시작했다. 이익을 재면서도 불가피한 손해를 따졌다. 손해는 확실했다. 우선 개인은 구체제의 붕괴, 기존 위계질서의 파괴, 구태의 타파로 인해 태생적으로 부여받던 사회적 신분을 잃었다. 인류는 사물의 대질서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상실했다. 세계는 더 이상 질서정연한 우주가 아니라 혼란스러운 세상, 그저 물질이 운동하는 차갑고 무심한 공간이었다. 하지만, 근대의 문제점은 위계질서를 무너뜨린데 있지 않고, 모든 사회관계를 해체시키고 모든 후광에서 신비를 앗아 갔다는 데 있다. 고정된 사회관계라는 구시대의 불의는 지위에 연연하고 남과의 비교에 집착하는 소비주의로 대체됐고, 한때 본질적 의미와 가치가 자리하던 곳에는 이제 시장 교환이라는 허무주의만 남았다. 비판자들은 근대의 이런 모든 문제점과 반대론을 아울러 간편히 ‘소외’(alienation)라는 용어로 표현한다. 근대사회에서 우리 모두는 자연으로 부터 그리고 서로에게서 소외된 상태다. 그건 어쩌면 우리 모두가 궁극적으로 자기로부터 소외되어서일지 모른다. 심리적 소외는 직장, 결혼생활, 생활환경 등에 대한 태도, 감정, 느낌에 관한 거이며 불만, 분개, 비애, 우울 등의 증상이 전형적이다. 이에 반해 사회적 소외는 우리가 불행하냐 억울하냐 하는 문제보다는 우리가 발붙인 사회∙정치∙경제의 구조 및 제도와 관련된다. 사회적 소외는 사람들의 행동과 그들이 처한 환경이 요구하는 규범이 서로 불일치하는 데서 비롯된다.
어떤 종류의 소외든 꼭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있다. 내가 소외감을 느꼈다고 해서 반드시 무슨 조치를 취해야 할 문제 상황은 아니라는 점이다. 심리적∙사회적 소외는 둘 다 일정 상황에 대한 묘사일 뿐이다. 전자는 개인의 상황을 묘사하고, 후자는 개인∙집단∙제도 간의 관계를 설명한다. 다시 노동의 세계를 생각해보자. 파티션으로 가득한 현대적 사무실을 채운 고만고만한 일벌 같은 모습의 사원들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분을 간신히 삭히며 일하는 모습은 현대 소외현상의 은유로 되풀이해 사용된다. 관료조직의 익명성과 노동의 기계적 속성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요소와 전면 배치되는 양 보인다. 그런 환경에서 소외감을 느끼지 않는다면 멍청한게 분명하다고 우리는 생각한다. 하지만 그래서 뭐 어떻다는 건가? 노동이 만족감과 성취감을 준다는 보장은 아무 데도 없다. 그러니까 일을 일이라 부르는 것이고, 고되니까 고용주가 당신에게 일한 대가를 지급하는 것이다.
소외이론은 소외를 질병처럼 보고 사실과 당위의 간극을 메우려고 시도한다. 소외이론은 상태를 묘사할 뿐 아니라 그 상태를 비정상적이고 부자연스러운 것으로 간주한다. 그 속에는 암묵적인 당위적 판단과 회복되어야 할 자연스럽고 소외 없는 상태에 대한 선호가 담겨 있다. 의학에서 무엇이 정상적이고 자연스러운 건강인지를 설명하듯, 소외이론은 무엇이 정상적인 인간의 삶을 구성하는지 설명하고자 한다. 그래서 특정 지역과 문화, 특정 시점의 개인의 욕구에 따라 바뀌지 않는 인간 속성 및 자기 성취 이론이 필요하다. 우리 근대인들이 느끼는 소외감이 정말로 일종의 질병이라면, 불화에 종지부를 찍고 잃어버린 일치와 조화를 되찾는 것이 무얼 의미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소외이론이 쓸모 있으려면 거기에 상응하는 진정성 이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것이 낭만주의가 남긴 짐이다. 낭만주의는 근대세계가 야기한 소외를 초월하고 완화하고 인생에서 옳고 가치 있는 것들을 복구하고자 했다. 그 핵심 인물이 철학자 장 자크 루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