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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범인 Feb 14. 2023

자물쇠를 생각하다가

글쓰기 모임에서 2월에는 동일한 주제로 글을 쓰기로 했다. 각자가 한 가지 키워드를 제안하기로 했고 내가 멤버들에게 보낸 것은 '자물쇠'였다. 분명 그 주제를 생각할 때 내 머릿속에는 어떤 글을 써야겠다는 개요가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글을 쓰려고 노트북 앞에 앉아보니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무얼 쓸까 고민하다가 얼마 전 읽은 책 이야기를 한참 동안 썼다. 그러나 쓰던 글을 읽어 보니 이건 독후감을 빙자한 끄적거림이다 싶어서 모두 지워버리고 말았다. 그러면 몇 주 전 남산에서 본 사랑의 자물쇠에 대해서 쓰면 좋겠다 싶었다. 그래서 기억을 더듬어보니 그때 함께 갔던 딸이 자물쇠를 걸자는 걸 말렸던 기억만 났다. 내겐 그것이 큰 의미가 없는 일이었구나 싶어서 그 소재는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나는 이 외에도 여러 가지 생각들을 이어가며 쓰다 지우다를 반복하다가 한참을 머리만 쥐어뜯고는 노트북을 덮어버렸다.

마감 전날인 어젯밤, 일찍 잠이 든 나는 밤 12시쯤에 눈이 번쩍 떠졌다. 글을 써야 한다는 생각을 하다가 얼핏 잠이 들었는데 그 부담감에 얕은 잠을 자다가 깬 것 같았다. 다시 잠이 오지 않아서 무엇을 쓸까 다시 생각하며 뜬눈으로 천장만 바라보고 있었다. 자물쇠의 느낌과 상통하는,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닫은 이야기를 써볼까 하다가 '또 마음 이야기야?' 나조차도 질리는 이야기라는 생각에 이 소재는 단념했다. 그래서 내 인생에 인상 깊은 자물쇠는 뭐가 있었는지 열심히 생각해 보니 어릴 적 쓰던 자물쇠 달린 일기장, 한강 라이딩을 나갈 때 챙기던 자전거 자물쇠, 해외여행을 가며 캐리어에 걸었던 자물쇠가 생각났다. 그러나 별로 쓰고 싶은 이야기는 아니었다. '나는 왜 신박한 생각을 하지도 못하면서 잠도 자지 못하는가.'라는 도움 안 되는 자책을 하며 멀뚱멀뚱 딴생각만 했다. '저녁식사 때 맥주를 너무 많이 마셨어, 배가 꺼지지를 않네.' '내일은 아이들 학원라이딩을 많이 해야 하는데 바쁘겠다.' '저녁에는 술약속도 있는데 시간분배를 잘해서 늦지 말아야지.' 뭐 이런 의미 없는 딴생각을 이어가다 보니 시간은 흘러 흘러 결국 글 쓸 소재는커녕 아무런 아이디어도 생각해내지 못하고 새벽 5시가 되어서야 다시 까무룩 잠이 들었다.


아침에 다시 노트북 앞에 앉아 피곤해서 빨개진 눈으로 노트북만 째려보았다. 시간이 흘러 마음이 조급해지자 어젯밤 생각한 별 볼 일 없는 소재 중 하나라도 선택해서 무언가를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중학생 때 아무도 보지 못하도록 감추어두며 쓰던 자물쇠 달린 일기장 이야기를 골랐다. 소풍 며칠 전, 그 비밀스러운 일기장에 옷이 필요하다는 내용의 일기를 써서 엄마가 볼 수 있도록 펼쳐두고 자던 일을 써갔다. 그러다 문득 이게 괜찮은가 싶어서 쓴 글을 읽다 보니 참 조악하고, 유치하고, 아무런 의도도 발견할 수 없는 글이라는 생각에 오래도록 쓰던 글을 날려버렸다. 그러다 마감시간에 쫓겨 급한 마음에 내가 울적하고 힘들 때면 말을 줄이고 마음에 자물쇠를 채운 듯 혼자 고민한다는 글을 쓰게 되었다. 아...... 결국 돌고 돌아 마음이야기구나, 싶어서 또 쓰던 글을 날려버렸다. 도대체 무얼 써야 한단 말인가.


글쓰기 모임을 2년여간 참여하면서 지금처럼 글이 안 써지고 머릿속이 하얘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원래 해가 바뀌고 새해가 되면 다시 무언가 시작하고자 하는 의지가 충만하고 명랑해졌었는데 요즘은 정말 삶의 의미에 대한 고민과 자아성찰만 하고 있는 듯하다. 글을 쓸 의지가 사라진 건가 아니면 글 쓰는 능력이 고갈되어 버린 건가. 매번 똑같은 말과 단어의 반복이 지겹다. 도대체 작가들은 어떻게 글쓰기를 이어가는 걸까. 꽉 막힌 듯한 나의 마음과 머릿속은 가두고 압박하는 자물쇠가 아닌 그것을 해방시킬 열쇠가 필요하다. 나의 정신건강을 위해 자물쇠 생각은 그만해야겠다. 

이제와 생각해 보니 왜 난 글쓰기 키워드를 '열쇠'가 아닌 '자물쇠'라고 한 걸까. 자물쇠와 열쇠는 한쌍을 이루는 물건이라서 무엇을 생각해도 연결이 될 텐데 말이다. 함께 쓰는 글쓰기 키워드를 생각할 그때는 자물쇠만 머릿속에서 떠올랐었다. 내가 생각해야 하는 것이 '키워드'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도 글이 안 써져서 안 써지는 글에 대해 글을 쓰다 보니 이것이 글쓰기의 열쇠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이렇게도 글을 써서 보낼 수 있다니! 뭐라도 쓰자고 생각하니 써지는구나. 매주 이렇게 고통의 시간을 보내면서도 노트북 앞에 앉아있는 나는 열쇠를 가진 인간이구나 싶다. 포기하지 말고 매주 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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