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어나더라운드‘라는 영화를 보았다. 영화에서 고등학교 교사인 네 명의 친구는 평소에 혈중알코올농도 0.05%를 유지하면 적당히 활발해지고 창의적이 된다는 가설에 따라 실험을 하게 된다. 그들은 술을 마시고 일상생활을 하며 변화를 관찰한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너무도 기발하고 유쾌한 소재라 즐겁게 볼 것이라고 예상했다. 술에 대한 영화라고 하이볼을 한잔 준비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영화를 플레이했던 나는 영화의 후반으로 갈수록 반전되는 분위기에 초조해지고 불안해서 어쩔 줄 모르게 되었다. 알코올이 주는 활력과 행복감에 빠져있던 그들은 점차 술을 찾게 되는 자신을 제어하기 힘들어하고 결국 친구 중 한 명에게 비극이 일어나고 만다. 영화의 엔딩크레디트가 올라갈 때에 나는 멍해졌다. 내가 요즘 술에 대해 생각하던 답할 수 없는 모든 것들이 용해된 영화라 그런지 여운이 길었다. 영화는 달콤하고도 씁쓸했고 하늘로 날아오르는 풍선처럼 마음을 붕 뜨게 했다가 불시에 바늘에 찔려 터진 것처럼 따끔했다.
나의 술에 대한 환상은 처음 술을 마셨던 대학교 신입생 환영회 때 생겼다. 내가 기억하는 진짜 첫 번째는 고등학생 때 백일주라고 마신 소주 한 숟가락(엄마께서 저녁 식사 중 식탁에 있던 술을 숟가락에 따라서 맛만 보라고 주셨던)이었으나 이것은 마트 시식코너에서 맛보는 만두 반조각, 손톱만 한 소시지 한 조각 정도의 의미를 갖는 것이니 제외하기로 한다. 그러므로 나에게 음주다운 음주는 대학교 신입생 환영회 때가 처음이라고 할 수 있다. 술은 썼지만 목을 타고 넘어가자 달콤하게 느껴졌다. 입 안에 흐른 알코올이 미뢰에 닿아서 술이 달콤하게 느껴진 것이 아니었다. 술이 일으킨 마법과도 같은 분위기 전환 때문이었다. 함께 술을 마시자 어색했던 동기들이 친밀하게 느껴졌고 어렵고 무섭게만 느껴졌던 선배들은 다정하게 보였다.
한잔의 술을 마신 후 다음 잔이 채워졌다. 내 앞의 잔에 담긴 투명한 소주에 시선이 닿는 순간 내가 속한 공간의 색깔이 바뀌었다. 경직된 무채색의 공간은 파스텔톤의 핑크색, 하늘색, 노란색의 말랑말랑한 공들이 가득 찬 볼풀장처럼 밝아졌고 나는 솜사탕을 기다리는 아이와 같은 마음이었다. 그날의 설레고 즐거운 마음을 잊지 못해서 나는 친구들과 선후배들과 술을 즐겨 마시곤 했다. 나의 대학생활에서 술이 빠진다면 그것은 색을 입히지 않은 그림과도 같을 것이다.
술은 관계를 유연하게 만들어주고 서로의 감정에 솔직하게 해 주었다. 조금은 소심하고 약간은 내성적인 나에게 친밀감을 표현하는 적극성과 활발함을 우러나오게 하는 술의 효험은 대단한 것이었다. 그러니 내게 술은 신비의 묘약과도 같았다. 나는 친하지 않은 사람들과도 할 수 있는 ‘밥 한번 먹자' 대신 친한 사람과는 ‘술 한잔 하자.’라는 말로 마음을 전하는 인사를 했다. 기쁜 일이 있을 때에도 ‘술 한잔 하자’(같이 축하하자), 힘든 일이 있을 때에도 ‘술 한잔 하자' (내가 위로해 줄게) 아플 때에도 '술 한잔 하자' (빨리 회복해서 함께 하자)라고 하는 인사는 많은 의미를 내포한 마법의 말이었다.
술은 분위기를 따뜻하게 해주는 난로와 같기도 하지만 최근에 내가 마시는 술은 나 혼자 즐기는 놀이와도 같은 것이었다. 누군가를 만나는 게 쉽지 않았던 지난 2-3년 동안 나는 혼자 마시는 술을 즐겼다. 홀짝홀짝 한 잔씩, 두 잔씩 맥주나 와인을 마셨는데 이것은 생활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피로회복제 같았다. 물론 이때에도 내게 술친구가 있었는데 나의 술친구는 드라마와 책이었다. 내 인생드라마라고 하는 '나의 아저씨' 속의 등장인물들이 술을 마실 때 나도 술잔을 기울이고 '도시술꾼여자들'의 세 친구가 술독에 빠져 울고 웃을 때 나도 그 자리에 함께 했다. 책을 읽을 때는 주인공들과 나의 정신은 어떤 구별도 없이 하나가 된 듯했다. 누군가와 어울려 놀던 때와 다르게 나는 정신으로 활동하고 그것을 즐기는 특별한 존재가 된 것 같았다.
술의 이런 효과는 글을 쓸 때 더 강력하게 작용했는데 나의 감각기관들을 최대로 기능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평소라면 하지 못할 표현이나 단어 사용은 물론 의식의 저편에 있던 오래된 기억들을 꺼내게 되었다. 알코올중독된 작가들이 그렇게 많다던데 그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섬세해지고 예리해지는 것 같았다. 이를 통해 나에 대해서 더 잘 알게 되었고 나를 더 많이 이해하고 싶어졌다.
그러다 어느 날 깨달았다. 술은 나의 감정을 넓고 깊게 보게 만들지만 나의 생각과 감정을 제어하는 기능을 마비시킨다는 것을 말이다. 자꾸 혼자만의 세계를 찾던 나는 나의 세계가 아득할 만큼 너무 넓어서 그곳에 속한 나는 너무 사소해 보인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방향을 바꿔 깊이 들어가다 보니 나의 바닥이 적나라하게 보이기도 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다. 그러자 갑자기 나에 대한 자신감이 없어졌다. 어느 날부터인가 술을 마셔도 즐겁지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자 무언가 잘못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술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던 나는 술을 낙관적인 시선으로만 바라보았던 것 같다. 당연히 좋지 않은 것이지만 나처럼 조금씩 즐기는 사람에게는 육체에만 영향을 미치지 정신에 끼치는 영향은 미미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그러나 나이가 들며 영혼을 돌보는 것이 자신을 지키는 하나의 방법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나는 술이 좋든 나쁘든 나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경계해야 함을 절절하게 느끼게 되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술이 미치는 좋은 영향력이 나를 술과 떼어놓을 수 없게 했으니 나는 의지가 약한 나를 탓하며 지냈다.
‘어나더라운드’를 보고 난 후 생각이 많아진 나는 영화의 장면들을 자꾸 떠올렸다. 그리고 곱씹을수록 계속 생각나는 장면이 있었다. 영화 속 주인공인 마르틴이 처음 술을 마시게 되던 날 눈물을 보이던 장면이다.
"하는 것도 별로 없고 사람도 자주 안 만나. 아내와의 사이도 소원해졌어."
그날 술을 마시고 친구들과 웃고 떠들며 자신을 속마음을 털어놓는 마르틴. 현실이 바뀌지 않았지만 술은 현실을 바라보는 눈과 마음을 바꾸게 해 주었다.
이렇게 술이 나의 마음을 불안정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삶의 긴장감을 풀고 유연하게 사고하게 한다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세상의 단단함을 부드럽게 대하게 해 주고 소음을 음악으로 느끼게 하기도 한다. 한 가지의 선택지밖에 없을 거라고 믿었던 나에게 삶의 다른 면을 발견하게 해 주고 활력을 불어넣어 주기도 한다.
하아, 나는 술이 내게 주는 영향력을 경계하자는 글을 쓰고 싶었지만 결국 또 술의 내게 미치는 좋은 점을 찾아내고 있다. 나는 술이 세상의 온갖 나쁜 것을 준다고 해도 술이 만들어주는 즐겁고 행복한 것들을 포기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향락의 기쁨과 삶을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위험함을 둘 다 가진 술을 어떻게 즐겨야 할까. 술에 관대했던 예전의 나처럼 계속 예찬할 수도 없고 (술에 대하여 쓴 지난 글들을 보니 모조리 술에 대한 찬양 일색이다.) 그렇다고 위험하다며 술을 멀리 하기도 힘든, 참 어려운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