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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느림 Mar 16. 2021

혼자의 식탁

살은 빼야겠는데 맛있는 걸 먹고 싶어서



한때 초코츄러스 맛 과자에 꽂혀있었다. 너무 먹고 싶은데 자제력을 잃을까 봐 걱정돼서 간장 종지에 덜어 먹었던 기억이 난다. 이럴 거면 왜 덜어먹었나 싶을 만큼 몇 번 더 리필해 먹었는데, 다시 살이 찔 줄 알았더라면 그냥 화끈하게 한 봉지 털어 넣을 걸 그랬다. 옥수수맛이랑 인절미맛은 또 얼마나 맛있는지 다이어트를 한다고 군것질을 마음껏 못하던 나를 안타까워하던 친구가 다이어트를 잠시 쉬고 있던 나에게 종류별로 한 박스를 보내줘서 질리도록 먹은 적이 있다. 덕분에 이제 그 과자들은 생각나지 않을 것 같다.


"요요는 살이 빠지기 전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야. 그 전보다 훨씬 더 찌는 거지."


폭주하던 나를 지켜보던 또 다른 친구의 뼈 때리는 말이 떠올랐지만, 아직까지 요요는 남 일이라며 아랑곳하지 않았고, 방심한 사이에 내 몸은 서서히 불어갔다. 한 일 년 가까이 금주에 식단 조절을 하다가 내려놓은 지 넉 달이 넘은 상태였다. 다시 시작하기에 세상엔 맛있는 것들이 유난히도 많았다. 마치 일부러 찾아내기라도 하듯 끊임없이 다양한 군것질 거리와 야식을 집에 들였다. 그 꾸준함 덕분에 몸무게 앞자리가 바뀌고 나서야 비로소 요요는 내 것이 되었다.


일 년 동안 약 10kg을 빼 본 경험 덕분에 내 맘속의 나는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살을 뺄 수 있는 사람'이 되어 있었는데, 그 '마음'만 빼고 다른 건 다 먹다 보니 몸은 점점 무거워질 수밖에 없었다. 체중계의 숫자를 보는 순간 충격을 받고 조바심이 나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때, 누군가 바디 프로필을 제안했다.


바디 프로필을 딱 한 번 찍은 적이 있다. PT도 받지 않고 혼자 식단 조절과 운동으로 뺀 것치곤 나쁘지 않은 결과였지만, 목표치에 도달하려면 턱도 없었다. 자신감 넘치던 나의 촬영 당일 몸무게는 무려 60kg이었다. 애초에 무게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상상 속에 그리던 탄탄한 근육과 매끈한 바디라인이 아니었기에 아쉬움이 남았었다. 그럼에도 꽤 당당하게 바디 프로필을 찍었고 "비포 사진"이라 이름 붙였다. 나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용기를 얻었으리라. 기약 없는 애프터 촬영의 예고장 같았던 사진들을 다시 보며 또 한 번 다이어트에 불을 지펴보기로 마음먹었다.


다이어트는 1일부터 혹은 월요일부터 시작해야 제맛 아닌가. 정말 딱 1일부터 완벽한 식단 조절을 시작했다. 술과 빵을 끊고, 현미와 보리, 병아리콩을 넣은 밥을 짓고, 채소와 닭가슴살을 곁들인 식단. 단백질 섭취가 질리지 않도록 오리고기와 닭가슴살, 소고기를 번갈아서 먹었다. 매일같이 도시락을 싸고, 귀찮을 땐 통밀 빵이나 닭가슴살 샌드위치를 사 먹기도 하면서 무가당 요구르트 외에 유제품은 되도록 피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나고 2kg, 보름이 지나자 3kg 정도가 빠져나갔다. 고작 2-3kg인데도 몸이 조금씩 달라지는 걸 느꼈다. 어차피 먹을 거 이왕이면 맛있게 먹고 싶어 여유가 있는 날엔 신경 써서 식단을 차렸다.


파스타가 먹고 싶으면 두부면으로, 샌드위치가 먹고 싶으면 통밀빵으로, 소스는 비건 마요네즈나 유명한 타이식 칠리소스를 사용했다. 기름도 트랜스지방이랑 콜레스테롤이 없다는 코코넛 오일로 바꿨다. 기름인데 어떻게 콜레스테롤이 없는지 살짝 의문이지만 일단 믿어보기로 한다. 에어후라이어는 죽은 음식도 살려냈다. 이게 없을 땐 어떻게 살았을까 싶을 정도로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조금 번거로워도 다이어트 식단 준비에 조금은 재미가 붙었다. 가끔은 채소 씻기 귀찮아서 일부러 안 챙기기도 하고, 간편한 냉동 다이어트 도시락으로 한 끼를 대신하기도 하고, 양이 차지 않을 땐 닭가슴살이나 식사 대용 닭가슴살 만두를 간식 삼아 먹은 적도 있지만, 여전히 크로플과 호두과자 타령으로 하루를 보내면서도 '참을 인' 세 번이면 살이 빠진다는 생각으로 잘도 참아내고 있다.


내 다이어트의 비결은 '공복이 없는 다이어트'다. (비결인지는 좀 더 두고 봐야 알겠지만) 배고플 틈을 주지 않는 게 관건이다. 무언가를 계속 넣어주면서 먹을 궁리를 못 하게 하려고 한다. 한참을 공복 상태로 있다가 먹으면 폭식을 하게 되는 게 마치 장 볼 때 공복으로 가면 과소비를 하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랄까. 끼니 중간에 견과류나 곤약 젤리 같이 부담 없는 것들을 간식으로 넣어주고, 물도 2L는 마시려고 노력한다. 하루에 물 한잔 안 마실 때도 있는 나로서는 물 마시는 게 가장 힘들다. 


그럼에도 왜 다이어트를 하냐고 묻는다면, 삶의 만족도가 올라간다고 자신 있게 말해주고 싶다. 평생 진지하게 다이어트를 생각해본 적이 없다가 달리기 기록을 단축하기 위해 처음으로 제대로 식단 조절이라는 걸 했었다. 점점 살이 빠지더니 입을 수 있는 옷의 종류가 다양해지고, 옷가게에서 Free size의 옷을 눈치 없이 고를 수도 있게 됐다. 자신감도 올라가고, 주변의 시선과 나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도 달라졌다. 미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기에 후덕한 몸에 불만을 가져본 적이 딱히 없었지만, 살이 빠진 후의 내 모습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은 왜 진작 안 뺐을까 싶을 정도로 꽤나 긍정적이다.


나에게 다이어트는 목표가 아닌 좀 더 만족스러운 삶을 위한 수단이다. 결코 드라마틱한 변화를 꿈꾸는 게 아니다. 눈에 띄게 엄청난 삶의 변화가 아니더라도 점점 더 건강한 몸이 되어가는 과정 속에서 얻게 되는 자신감과 소소하고 긍정적인 변화가 그저 좋다. 그러므로 앞으로 평생 다이어트를 할 생각이다. 무리하지 않고 페이스 조절을 하면서 딱 요요가 오지 않을 만큼만, 패스트푸드 말고 슬로푸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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