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맞는 속도에서 느끼는 즐거움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정도로 미친 듯이 달려본 적이 있다. 마라톤 대회에 나가리라곤 상상도 해본 적 없던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땀에 젖은 사람들 틈에서 청계천을 따라 달리고 있었다. 요령도 훈련도 없이 무턱대고 친구를 따라 참가한 첫 마라톤은 나이 서른을 바라보던 나의 첫 무모한 도전이었다.
무언가가 되어있을 줄 알았던 서른이 되었을 때, 나는 수식어를 단정 지을 만한 누군가가 아니었다. 흔히들 말하는 행복을 찾아다녔고, 꽤 오래 다닌 회사를 그만 둘 때도, 한국어를 가르치겠다며 갑자기 몽골로 봉사활동을 떠날 때도, 뜬금없이 글을 쓰겠노라 다짐했을 때도 나는 꽤나 패기가 있었다. 하지만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 서슴없이 발을 내디뎠던 젊은 날의 열정과 패기는 세월과 함께 자연스레 나이 들어갔다. 그럼에도 딱 하나 놓지 않았던 건 “돈을 좇지 않는 삶”. 어쩌면 이젠 좇지 못하는 삶이 되었는지도 모르지만.
몽골에 살면서 첫 공모전에 도전했을 때, 작법도 플롯도 엉망진창이던 대본을 쓰면서, 며칠 동안 소파에서 쪽잠을 자고, 밥 먹을 시간도 잊어가며 첫 작품을 탈고했던 새벽녘의 나는 벅찬 감동을 끌어안았었다. 한 작품을 끝냈다는 뿌듯함과 포기가 누구보다 빠름에도 포기하지 않았다는 기특함. 복잡 미묘한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 눈물 나게 행복했던 그 기분을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그리곤 결심했다. 앞으로 내 남은 모든 삶은 글을 쓰겠노라고.
한국으로 돌아온 나는 회사에 취직하는 대신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아는 외국계 기업이었지만, 최저시급이라 회사원 시절 봉급의 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럼에도 5시간만 근무하면 글을 쓰거나 작법 수업을 들을 수 있는 여유가 있다는 생각에 고민 없이 경력단절을 택했다. 같이 일하지 않겠냐는 제안도 몇 번 받았지만, 그때마다 하고 싶은 게 있다며 거절했다.
명함이 없는 삶을 선택한 후, 부모님의 걱정이 시작됐다. 불안정한 수입과 불투명한 미래. 그리고 결혼. 그동안 나의 선택을 믿고 지지해주시던 어머니께서 결국 한 말씀하셨다.
“남들은 두 번도 갔다 오는 걸 넌 왜 한 번도 못 가니?”
물론 돌싱을 만나라던가, 이혼을 해도 좋다던가 하는 의미는 아니었기에 오죽 답답하셨으면 그러실까 싶어 나도 한마디 했다.
“두 번 갈 바엔 그냥 비혼 할래.”
사실 당시엔 마음에도 없는 소리였지만, 그 이후로 결혼에 대한 언급은 더 이상 하지 않으셨다. 안 그래도 집안 곳곳에 있는 돌싱과 이혼이란 단어에 비혼까지 보탤 필요는 없을 테니까.
글을 쓰기 위해선 무엇보다 체력이 뒷받침되어야 했다. 운동을 좋아하지만 먹을 것을 더 좋아해서 몸이 많이 무거웠던 나는 꾸준히 아주 조금씩 체중을 줄여나갔다. 그리고 체력증진에 좋다는 달리기를 시작했다. 당시 러닝 크루가 유행하기 전이라 인터넷 카페에서 정보를 얻고, 혼자 대회에 참가하곤 했는데, 서울과 지방 곳곳에서 매주 주말마다 마라톤 대회가 열린다는 사실이 다른 세상인 양 놀라웠다. 누군가는 늦잠에 빠져 있는 주말 아침, 어느 누군가는 대한민국 여기저기를 달리고 있었다.
단순히 뛰기만 하면 되는 줄 알았던 달리기는 꽤나 많은 지식과 훈련을 필요로 했다. 그냥 뛰어도 잘 달리는 타고난 사람들이 부러웠지만, 나에게 맞는 방식을 찾아 조금씩 실력을 늘려나갔다. 다른 이들의 기록은 나의 승부욕을 자극했고, 점점 빨라지고 싶은 욕구가 샘솟았다. 나를 훈련시켜줄 누군가 혹은 어딘가를 찾아다니며 자문을 구하고, 기록을 목표로 친구들과 내기도 하면서 스스로의 등을 떠밀었다. 무리해서 훈련을 강행하다 결국 부상으로 계획했던 모든 대회를 포기해야 했을 때, 더 이상 한 발짝도 내딛을 수 없는 상태가 되어서야 깨달았다. “컨디션 관리도 실력”이라는 것을.
달리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지 벌써 3년 차다. 함께 달리는 친구들이 생겼고, 꾸준히 달린 덕분에 조금 빨라졌다. 1km를 7분 30초에 달려도 허덕이던 나는 이제 1km 평균 5분대 페이스를 유지한다. 1kg을 줄이면 기록 1분을 단축할 수 있다는 말에 시작한 다이어트로 최대 몸무게를 찍었던 5년 전에 비해 약 20kg이 줄었다. 달리기를 좋아하는 전국의 많은 이들과 친구가 되고, 술로 가득했던 주말은 땀으로 채운다. 산 정상을 찍고 출근할 수 있을 정도로 체력이 좋아지면서, 땀을 내서 활력을 찾는 방법도 터득했다. 그렇게 달리기는 나의 생활패턴을 바꿔놓았다.
이제 무작정 빠른 것을 추구하진 않는다. 각자 자신에게 맞는 달리기가 있다. 전속력으로 달려 목표를 채웠을 때의 쾌감이 있고, 천천히라도 끝까지 해냈을 때의 보람이 있다. 나보다 결승점에 먼저 도착한 사람들을 보며 부러워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그건 그들의 페이스가 나보다 조금 빠를 뿐이다. 오버페이스는 부상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그럼 또 한참을 쉬어야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나는 다소 느리더라도 내 페이스에 맞춰 달리는 중이다. 달리기를 오래 즐길 수 있는 속도, 딱 즐기기 좋은 속도로 삶을 살아가는 중이다. 결승점에 먼저 도달한 누군가를 보며 조급해하지 않고, 시간의 흐름에 초조해하지 않으려 애쓴다. 다른 사람과의 비교나 경쟁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고, 누군가 나에게 좋은 자극이 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몸이 무거워 1분도 달려본 적이 없던 내가 지금은 그렇게 10km를, 42.195km를 쉬지 않고 달린다. 달리기는 내가 노력한 만큼의 정직한 보상을 가져다주었다. 그를 통해 나를 조절하는 방법과, 나에게 맞는 삶의 방식을 배웠다. 앞으로도 딱 즐길 수 있는 만큼 달리고 싶다. 나답게 즐길 수 있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 언젠가 나의 결승점에 도달해 있을 나를 상상하면서, 나는 여전히 나의 가능성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