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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룰때 Mar 26. 2024

폭식을 이렇게 잠재웁니다.

나의 폭식에 대해 지난 글에 이어본다. 나의 강인한 통제 욕구, 결코 충족될 수 없을 나의 이 통제 욕구가 음식을 향해 마구 폭력을 휘두르며 폭식이 반복되자 폭식 그 자체보다 근원적인 나의 통제욕구를 들여다본다. 

내가 폭력의 대상이 아닌 대화의 대상으로 음식을 삼아 이와 보다 친해지기 위한 노력을 했다면 이제는 나 자신 스스로가 제대로된 대화의 주체자가 되기 위한 노력을 해야겠다. 음식만을 향한 것이 아니라 세상을 향한 대화의 준비를 해두어야 한다. 

나의 강력한 통제의 욕구는 달리말하면 보호본능이다. 세상 앞에 나서는 나 자신을 보호해주고자 발현되는 것이 통제 욕구이다. 왜 세상 앞에서 그렇게 철갑을 두른 채 사는 것일까? 지금보다 상처 덜 받고, 지금보다 나 자신에게 훨씬 유리하고 더 편하게 사는 이상향을 꿈꾸는 탓일 것이다. 나는 언제든 내 주변의 일어나는 세상사의 방향키를 늘 그 곳을 향해 두길 바란다. 

그러나 어디 이 복잡 거대한 세상을 일개 개인이 방향키를 돌리며 자신에게 유리하게 통제한다는 것이 가당키나 한가? 이 당치도 않은 오만방자한 마음은 마치 그것이 되기라도 하는 양 통제 욕구를 맘대로 키워간다. 뜻대로 되지 않으면 말 못하고 힘없는 음식 앞에서 어깃장을 부리며 말이다.  

나의 못말리는 통제욕구는 좀 더 오래 거슬러올라가보면 전 인류의 공통 DNA에 이미 새겨져 있었다. 통제의 욕구는 생존의 욕구에 기반하는데  과거 원시시대 때 온갖 무서운 육식동물들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본능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원시시대 때의 물리적 위험에서 많이도 벗어난 세상이다. 

지금은 물리적 위협보다 심리적 안전이 더 중요한 세상이다. 자신의 심리, 마음을 너무나 애지중지한다. 그렇게 마음을 보호하려다보니 그 결과 마음이 너무나 예민해지고 통제욕구도 과도해지는 것이다. 아무것도 아닌 작은 일에도 우리의 마음은 마구 널을 뛴다. 나의 폭식을 잠재우기 위해 보다 근원적으로 내 통제 욕구 즉 나 자신을 향한 보호본능을 추스리기 위한 노력을 해보려한다.  

먼저 통제의 욕구가 좌절되면 그에 대한 보상으로 폭식을 하게되니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좌절감 자체를 느끼지 않으려 노력한다. "내 주변의 모든 일이 쉽고 편안하다"라고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상기시킨다. 통제하고 싶다는 것은 두려움이 저변에 깔려있다. 과거와 같은 힘든 일은 다시 만나고 싶지 않고 여태 만나지 못한 어려움은 겪고 싶지 않다. 내 통제권이 벗어난 세상은 그런 것들이 천지인 세상일 것 같다는 두려움, 그 두려움이 문제다. 그래서 그 두려움을 잠재운다. "내 주변의 모든 일이 쉽고 편안하다."라고... 내 통제권이 아닌 세상 그대로를 받아들여도 괜찮다, 별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다라며 말이다.

그 다음으로 몸을 혹사시켜야 한다. 애지중지 지켜온 내 내면은 약간의 스크래치에도 고통에 몸부림친다. 지나치게 예민해져있다. 내 내면에만 집중하고 있다보면 작은 스크레치도 너무나 크게 느껴진다. 외연으로 밖으로 나의 집중을 분산시켜야 한다. 너무나 속상한 일이 있어 우울해있다가도 손에서 놓친 책 모서리가 내 엄지발가락을 찍는 순간, 나의 온 신경은 엄지발가락에 쏠린다. 1초 전의 그 지옥같던 마음은 일순간 사라지고 나는 오로지 이 엄지발가락에만 몰두한다. 운동은 그런 엄지발가락이다. 

가급적 격렬하게 땀을 빼는 운동을 한다. 나에겐 줌바가 확실한 엄지발가락이다. 리듬에 맞춰 격렬하게 몸을 움직이고 리드해주는 선생님의 동작에 계속 집중하다보면 낮에 있던 회사일,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는 불안함에서 벗어나 오로지 춤을 추고 있는 지금 이 순간으로 모든 신경이 모아짐을 느낀다. 존재하지 않는 시간인 과거와 미래에서 벗어나 순수하게 오롯히 존재하는 이 시간, 지금에 생각과 마음을 붙잡아둘 수 있다. 

나의 오만방자한 통제욕구를 해소해주기 위해서 또 하나의 방법은 안하던 집정리를 해보는 것이다. 내 내면의 생각과 감정을 과도하게 소모하는 통제욕구를 작지만 생산적인 집청소에 활용해본다. 평소 청소를 잘 하지 못하는데, 집정리를 하는 순간에는 폭식같은 음식에 대한 갈망이 많이 잠재워진다. 

내 통제 욕구가 음식이 아닌 이 먼지에, 이 수납장에 발현이 된다. 음식에 대한 폭력성을 먼지와 쓸데없는 쓰레기들을 주워담으며 이 곳에다 거칠게 해소한다. 세상사는 내 맘대로 통제 못해도 내가 잘 때 쓴 침대의 이불정리는 맘대로 통제가능하다. 

그 다음으로는 "휴식"이라는 것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휴식이랍시고 복잡한 생각을 덜어낸다며 넷플릭스나 유튜브를 키는 순간 나의 휴식은 그 순간 종결이다. 알고리즘에 허덕이는 동안 나는 입으로 두들겨 패줄 음식들을 또 찾게 된다. 그래서 휴식보다는 몰입할 것을 선택하기로 한다. 마음을 가볍게해줄 책을 읽거나 요즘 공부하는 것들을 노트에 필사하거나.... 몰입하면 피곤함은 잊는다. 그러면 음식에 대한 갈망도 사라진다. 

내가 폭식에 시달릴 때 써봤던 효과적인 방법들인데, 사실 이것말고도 식이개선을 위해서는 다각도의 노력들이 필요하다. 정제된 탄수화물은 덜 먹으려하고 저녁 후 하루 12~13시간 정도는 단식 텀을 둔다.

나는 폭식을 억제해서 단순히 다이어트에만 성공하자는 것은 아니다. 내 맘과 몸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늘 새기면서 맘과 몸을 모두 소중히 다뤄주기 위한 삶의 철칙을 내 일상에서 구현하고 싶다. 과거에 과도한 다이어트의 부작용을 경험했기에 성급한 성과주의를 내 몸을 두고 부리지 않으려한다. 내 몸과 마음 앞에서는 결과보다는 과정인 습관을 길들여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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