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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쓰북 Jul 20. 2022

​5. 이건 내가 원래 할 일인데 칭찬을 받아도 될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배려와 정성을 담았다

회사에서 처음 맡았던 업무는 PC에서 각자 활용하는 업무 시스템을 위해 서버나 DB 접속에 필요한 SW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일이었다.

회사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용하는 프로그램이고, 또 개인의 PC에 설치해서 쓰다 보니 다양한 문의를 받았다. 

프로그램 로그인 계정이 잠겼다는 문의부터 시작해서 설치가 되지 않는다는 전화도 많이 받았고, 그를 처리하다 보면 하루가 정신없이 지나갈 때도 많았다.

잠깐 휴식하러 다녀왔다가 쪽지와 개인 대화창으로 쌓여있는 메신저를 보면 한숨이 나올 때도 있었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그렇기에 항상 무난한 문의만 있는 게 아니다.

때로는 나에게 본인의 답답함을 풀며 짜증을 내는 사람들도 있었다. 같은 회사 사람인데도 '이런 게 갑질인가?' 싶을 정도로 무례하게 말하는 경우도 봤다.

주변에 비슷한 업무를 하는 선배들이 전화를 받으며 시크하고 건조한 톤으로 받는 이유가 체감이 됐다.

그때 우연히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받는 문의는 하루에도 수십 건 이상이 되지만, 그 사람은 나에게 처음 문의를 하는 거라고.

이미 유명한 블랙리스트가 아닌 경우가 아니고서야 내가 굳이 억지로 냉정하게 할 필요도 없지 않을까.

(사람이 안 바뀐다는 말이 맞는 게, 나에게 블랙리스트로 기억된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도 블랙리스트로 기억되는 일이 태반이었다.)


그래서 나에게 연락이 오는 건에 관해서는 빠르게 처리해주고자 노력했다.

만약 빠르게 처리할 수 없는 경우는 사정을 설명하며 양해를 구했다. 적어도 연락이 온 건에 관해 이유 없는 무응답으로 답하지 않으려고 했다.

문의 내용에 글로 답하고 처리하는 게 효율적이었지만, 더 빠른 방법이라고 판단이 되면 내성적임에도 불구하고 전화를 걸었다.

자리가 멀지 않은 곳에 있다면 기꺼이 찾아가서 문의 상황을 확인하고 처리하기도 했다.


평일의 일과 시간뿐만 아니라 저녁이나 주말에 문의를 받는 일도 심심치 않게 있었다.

몸담고 있는 회사가 IT 회사라 직원들이 어쩔 수 없이 평일 저녁이나 주말에 일을 해야 하는 경우가 있었고, 그를 위해 내가 담당하는 프로그램을 써야 하다 보니 그랬다.

처음에는 그게 무척 짜증이 났다. 나의 휴식시간을 방해받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반대로 생각하니 그 사람들 입장에서도 힘든 일이라고 느꼈다. 그들도 그렇게 하기 싫었겠지만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인데, 그러면서 나에게 부탁하는 것도 스트레스이지 않을까.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일이니 괜히 볼멘소리를 하기보다는 오히려 반대로 하기로 했다.

평소 일과시간보다 더욱 따뜻하게 응대하고, 현실적으로 가능한 상황에서 빠르게 문의받은 내용을 확인해줬다.


그리고 업무에 익숙해지다 보니 누군가 A를 문의했을 때 자연스럽게 B와 C로 연결되는 부분을 미리 설명할 줄 알게 되었다.

나중에 궁금하면 또 문의할 거라는 생각으로 넘어갈 수 있었지만, 그러기 전에 먼저 이야기해줬다. 


그러자 점차 "감사합니다"라고 왔던 메신저 답변이 신기하게 점차 구체적으로 변했다.

"빠르게 처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은 "친절하게 대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등으로 변해가는 내용을 보고 있으면, 끝이 없는 문의 업무로 지친 마음을 달랠 수 있었다.

당연히 내가 할 일을 했을 뿐이다. 그렇지만 내가 마음을 쓰고 있는 부분을 사람들이 알아주고 있다는 게 당시 일에서 느꼈던 유일한 보람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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