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간만에 재미있는 책을 발견했다. 책 제목은 ‘시간은 왜 흘러가는가’. 앨런 버딕이 썼다. 아직 초반부밖에 안 읽었지만 간단히 소개를 하면 시간에 관한 이 사람의 집요한 탐구에 관한 책이다. 에세이 느낌의 글이지만 과학 저널리스트가 쓴 책이라 탄탄한 역사적, 과학적 정보를 기반으로 한다. 시간의 본질에 대해 역사적 관점에서, 다른 사람의 의견에 방해받지 않고 생각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보석과도 같은 책이 될 수도 있다.
1초라는 것이 사회에서 이미 충분히 받아들여진 세상에서 태어난 나는 예전에 과학을 배울 때 1초에 대한 집요하고도 정확한 규정이 마음에 와닿지 않아 힘들었다. 물론 단위의 통일은 원활한 소통과 생활의 여러 문제를 원만히 해결하기 위해 필수적이지만 역시 삶의 문제와 맞닿아 있지 않으면 공감도 안 될뿐더러 배우기도 힘들다. 그렇지 않습니까. 물론 과학 연구에 있어 단위의 중요성은 배움의 깊이가 깊어질수록 절감하게 된다고는 하는데 음, 더 이상 이공계에 몸 담고 있지 않은 사람에게는 과학에서 쓰는 정확한 규정은 어디까지나 이해는 되지만 공감하기엔 벅찬 문제다.
이 1초와 관련해서 책에서 흥미로운 관점을 제시해 주어 소개해본다. 지구의 자전운동을 기준으로 하루라는 시간을 단순히 쪼개서 나온, 관념일 뿐이었던 ‘1초’가 세슘 원자의 특성으로부터 원자초(atomic second)가 등장하며 사회에 녹아들었다는 이야기 속에서, 저자는 우리가 하향식 세계시 체계(하루를 쪼개면 1초가 나온다)와는 또 다르게 상향식 세계시 체계(1초가 모여 하루가 된다)를 받아들이게 되었다고 말한다. 과연, 1초를 예전부터 탐탁지 않게 여겨온 나 같은 사람은 이런 이야기와 관점이라도 읽을 수 있어 마음의 위안이 되었다고나 할까.
시간은 그저 흘러가는 것이다. 실제로 일상생활에서 1초를 어떻게 일일이 의식하며 살아갈까. 불가능하다. 직업적인 이유나 다른 특별한 이유에서가 아닌, 일상에서 혹시 그런 사람이 계신다면 꼭 알려주시길. 진심으로 알아보고 싶어지는 관찰 대상이 될 것 같다. 그러나 1초야 그렇다고 쳐도 1분이나 1 시간 같은 좀 더 큰 단위는 필요하다. 또한 시간이 얼마나 흘러갔는지 알려주는 존재는 누구에게나 소중하다.
어느 정도의 기준은 필요한 법이라고 항상 생각하는데, 그래서 거의 동물처럼 시간을 흘려보내는 사람인 나도(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자는 쾌적한 생활을 보내고 있다) 시간을 알려주는 귀중한 존재를 끼고 살아간다. 그 존재는 바로 손목시계다. 손목시계가 불편해질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다. 시간 관리를 원체 설렁설렁하는 스타일이라(물론 비즈니스에서의 시간 약속은 꼭 지킨다) 잃어버리면 안 사서 다시 차게 될 때까지 대략 2년이 걸리기는 하지만(누군가 선물해 줄 때까지 기다린다) 아무튼 지금은 차고 있다.
생각해 보면 손목시계는 대단하다. 예전에는 우리 모두 시계탑을 보며 만나고 헤어지고 그렇게 살아갔는데 현대에는 시간 관리 매니저가 모두의 손목에서, 친절히 곁을 지키고 있는 것이 아닌가. 계속 앉아서 작업을 해야 하는 일러스트레이터로서 그림 그리기에 빠져있다 보면 누가 다가와서 ’이미 새벽 3시를 넘겼으니 빨리 일어나!‘ 라든가 ’빨리 일어나서 스쿼트 10개 하라고!‘ 하고 말해주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생각한다. 하체뿐 아니라 온몸이 부실해지는 요즘 글을 쓰며 정시 알람 기능의 유용함을 새삼 느껴본다.
방금 전 11시 알람이 울렸다. 점멸하는 디지털 숫자가 떠 있는 손목시계를 들여다본다. 1초라는 개념은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지만 시간을 보는 행위 자체는 좀 매력적인 것 같다. 책을 계속 읽다 보니 사람들이 왜 시계를 화려하고 비싸게 만들었는지 알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고. 비싼 시계에는 관심이 없어서 나는 늙어도 카시오 f-91w 같은 레트로하고 질기면서 실용적인 것만 쓸 것 같은데. 시계나 시간에 그렇게 집착하지 않더라도 시계탑이라든지 손목시계 같은 존재들이 어느 정도는 필요할 것 같은 기분이다. 아무튼 아리송한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