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벨소리 Mar 14. 2021

ISTJ와 ENFP의 연애시대

ISTJ: 주변이 다 눈에 들어온다 / ENFP: 상대방만 눈에 들어온다

그렇게 시작되었다. 연못 속 어린 붕어의 귀여운 하품이 잔잔한 수면에 파문을 일으키듯이 그렇게 시작되었다. 깃발을 흔드는 소슬한 바람이 운동장의 흙먼지를 일으키듯이 그렇게 시작되었다. 예수님의 짤막한 산상 설교가 인류에게 위대한 구원의 빛을 던져 주었듯이 나와 나의 ENFP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하단에서 출발하여 진해시 용원까지 운행하는 58번 버스는 녹산공단 노동자들에게는 가족의 생계를 위한 희망의 버스였다. 명지 주민들에게는 자신들의 열악한 환경과 낙동강 동쪽의 문명의 이기를 연결해 주는 씁쓸함과 동경이 교차하는 버스였다. 반면에 용원에 내려서 배를 타고 섬으로 출근해야 하는 나에게는 고통의 버스였다. 그러나 58번 버스에 나의 ENFP가 앉아 있는 것을 본 순간 고통의 버스가 꽃마차로 바뀌는 경이로운 감정을 경험했다. 사는 곳이 비슷했던 나와 나의 ENFP는 같은 지하철을 타고 40분을 이동한 후 같은 버스를 기다렸다. 낯선 버스에서도 참으로 잘 자던 그녀의 첫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그렇게 우리는 40분의 지하철, 30분의 버스, 20분의 배를 함께 타고 직장으로 출근했다. 그리고 나의 ENFP는 나의 대각선 앞자리에 자리 잡았다.


 우리 둘이 앉은자리는 파티션 때문에 얼굴의 하관은 보이지 않고 눈만 보였다. 그나마 눈이 필살기라는 말을 많이 들었던지라 나는 제대로 내가 가진 신체적인 능력을 시전했다. 고개를 들고 시선을 15도만 오른쪽으로 꺾으면 그녀의 눈이 들어왔다. 그녀도 똑 같이 나의 눈을 감상했으리라. 나는 이성 간의 감정적 교류는 눈에서 시작된다고 강하게 믿는다. 그래서 그런지 눈빛을 주고받은 지 한 달 만에 나의 ENFP와 등산을 가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원래는 젊은 선생님들 여러 명이 함께 가기로 했었는데 그들의 의도치 않은 선한 불참이 우리 둘 사이를 더욱 가깝게 만들었다.


봄이었다. 지금은 과거의 유물이 되어 버렸지만 당시만 해도 학교에 '처총회'라는 비공식적 모임이 있었다. '처녀 총각 모임'이라는 뜻인데 젊은 사람들끼리 모여서 학교 생활의 애환을 나누고자 하는 표면적인 목적도 갖고 있지만 결국은 좋은 인연을 맺어보자는 이면적인 목적도 노골화되는 모임이었다. 다시 말해서 처총회의 목적은 처총회 해산이었던 것이다. 우리 모임은 원로(?) 처총회원 한 분과 다섯 명의 젊은 회원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었다. 원로 처총회원께서 인근 야산 등산을 제안했다. 모두들 간다고 했지만 정작 그 날이 되자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제안자를 포함해서 모두들 불참을 선언했다. 그래서 나와 그녀만 가게 되었다. 운명처럼.....


찬기운이 거의 가신 응봉은 야산이라고 하기에는 무색하게도 제법 가파른 바위길을 숨기고 있었다. 그 바윗길에서 나는 신사다운 행동을 함으로써 그녀의 손을 처음으로 잡았다. 가파른 바위틈을 올라가기 힘들어하는 그녀의 손을 잡아끌었을 때 손에서는 따뜻한 땀이 배어 나왔고 그녀의 머릿결은 다대포 앞바다의 푸른 물결처럼 부드럽게 일렁거렸다. 그녀가 나에게 도움의 손을 맡긴 것이 그녀의 'E'가 작용한 것일지라도 나는 그 순간 그녀의 'N'이 작동했을 것이라고 믿고 싶었다. 이 사람과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는 본능적인 육감이 작용했다고 믿고 싶은 것이다.


감정적으로 가까워지면 상대방이 당하는 고통은 내가 당하는 고통으로 바로 치환된다. 관리자와의 관계를 중시하는 그녀는 교장선생님의 독단적인 학교 운영을 심히 불편해했다. 역사교육과 출신으로 반골 기질이 상당했던 그녀는 사사건건 교장선생님과 부딪쳤고 그런 날은 종일 얼굴이 상기되어 있었다. 그런 그녀를 안쓰럽게 바라보던 나는 자칭 정의의 사도였던 전교조 해직교사 출신 선생님과 공모하여 교장선생님의 독단적인 학교 운영에 제동을 걸기로 했다. 뜻을 모은 우리(정의의 사도 및 그를 추종하는 젊은 교사들)는 혁명 전야의 동학 농민군처럼 한밤중 사택 앞에 모여 삼겹살에 소주를 마시며 거사를 모의했다. 나는 열변을 토했다. "학교는 교장 개인의 사유물이 아니다. 학교가 민주적이어야 아이들에게 민주주의를 가르칠 수 있다. 오늘 우리의 거사는 학교 민주화를 앞당기는 힘찬 걸음이 될 것이다." 뭐, 그런 내용이었는데 다른 것은 다 기억나지 않고 그 말을 들은 그녀의 시선만 생각난다. 혁명가를 우러러보는 존경과 경외의 시선. 하지만 거사는 무참히 실패했다. 정의의 사도께서 술만 진탕 드시고 전혀 나서려고 하지 않았던 것이다. 거사는 비록 실패했지만 나는 그녀의 따뜻한 시선을 얻었다.


두 달 후 처총회 회원들끼리 영화를 보러 가기로 했다. 정보석, 이은주 주연의 '오, 수정!' 그런데 등산 때와 마찬가지 바람이 불었는지 간다고 했던 멤버들이 모두 불참하고 결국 나와 그녀만 가기로 했다. 이쯤 되면 아마 신이 무언의 계시를 내린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이 날 결국 눈과 손으로 주고받은 감정 교류가 결실을 맺었다. 영화를 본 후 그녀는 나에게 이성적 호감을 토로했고 나는 들뜬 마음에 자갈치와 영도를 오가는 배를 두 번이나 왕복하며 기쁨을 만끽했다. 그리고 그 날은 한 잠도 자지 못했다.


조그만 학교에서의 연애는 조마조마한 순간의 연속이었다. 평일에 나는 사택에서, 그녀는 기숙사에서 생활했다. 50미터 거리의 사택과 기숙사는 그녀와 나의 감정의 밀고 당김으로 채워졌다. 나의 'I'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너무나도 의식했고 그녀의 'E'는 그런 것은 개의치 않았다. 


그러던 어느 가을날, "이제 연극 고만해라."는 처총회 고문의 말씀으로 우리들의 비공식적인 연애는 드디어 막을 내렸다. 우리의 연애 사실을 들은 어느 미혼 여선생님이 교무실에서 마시고 있던 음료수 캔을 외마디 비명과 함께 바닥에 떨어뜨렸다는 그날부터 우리들은 섬이 인증하는 공식적인 커플이 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ISTJ가 ENFP를 처음 만난 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