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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서기 Mar 17. 2024

삶은 전지 된 고목을 닮았다

분재를 통해 느끼는 삶의 가치


새 가족을 만나다


며칠 전 언니한테서 20년 넘키운 동백나무 분재를 물로 다.


전체 길이가 1미터를 훌쩍 뛰어넘는 대형 분재



20여 년 전에 부산에서 직접 공수해 왔다는데 환경이 베란다 때문이었는언니집에 온 이후로 단 한 번도 꽃을 피운 적이 없다 말을 들었다.

게다가 형부는 화초를 아예 좋아하지 않다 보니 꽃도 못 피고 공간만 차지하는 동백을 퇴물 취급하기 일쑤였다.


우여곡절 끝에 동백이 우리 공방 새 가족이 되었다.


마침 내가 운영하는 공방이 볕이 잘 드는 1층에 위치한 덕분 엄청난 선물을 받은 것이다.

동백은 잎만 무성한 채 위로 길게 뻗어 있었만 잘 만 다듬으면 훌륭한 작품이 되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전지를 하던 중 문득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유실수 열매를 맺지 못하고, 꽃나무 꽃우지 못한 채 잎만 무성하다면 과연 나무로써의 가치가 있다 할 수 있까.

튼튼한 나무로 자라기 위해서는 편안하고 안락한 공간보다는 다소 거친 환경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무 목대가 얼마나 굵직했던세월의 무게 한눈에 껴졌다.





뿌리에 마구 엉겨 붙은 돌덩이 같은 흙을 떨어내고 흐르는 물에 씻내자 오랫동안 꽁꽁 싸여 있던 뿌리들이 마치 기지개 켜듯이 속살을 드러내었다.

오랫동안 분갈이를 거의 하지 않았던 탓에 벌레도 많았다.


수십 년을 좁은 공간에서 참고 견뎌내 온 세월이 실로 대단했다.




가지를 절반이나 전지하고나니 키가 확 줄었다.

 


완성된 동백나무 분재


◇ 꽃집이예요?


캘리그라피 공방을 운영하면서 공방 앞에 크고 작은 화분을 내놓았더니 꽃집으로 알고 가격을 물어보는 손님들도 꽤 된다.


근래 들어 어깨너머로 습득한 얄팍한 지식으로 하나 둘 모양을 잡아가는 취미도 생겼는데, 와이어로 가지를 휘감고 비틀다가 부러뜨리는 일도 다반사다.


모양 없이 위로만 꽂꽂하게 자란 분재는 전지를 하거나 가지가 굵어지기 전에 와이어로 수형을 잡아준다.

전지후에 주는 상처도포제는 세균의 침투를 막아줌은 물론 상처가 잘 아물도록 돕는 역할을 하는데, 나무도 상처를 받는다는 사실이 사람과 참 많이도 닮았다.


비록 전지를 하고 뿌리가 잘려나가는 고통은 있지만, 예쁜 꽃을 피우고 멋진 수형으로 성장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거쳐야 하는 관문이다.


전지 된 동백을 보는 내내, 내 모습이 투영이 되었다.


오랫동안 마치 심적으로 히키코모리와 같은 자신을 느끼며 한계와 절망감을 넘나들지만 신은 내가 주저앉는 것을 원하지 않으신 듯, 강의를 통해 분주하게 만드셨다.


수년간 진행해오고 있는 캘리그라피 강의는 나를 살아 숨 쉬게 만드는 원동력으로, 강의를 통해 수강생들과 고민을 토로하며 때때로 힐링을 얻곤 한다.


펜 캘리그라피 작품



나눠주고 공유하는 과정을 통해 서로의 연약함과 비밀로 치부했던 아픔들을 나눔으로써 혼자가 아닌 함께 가는 인생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심이 감사하다.


마음이라는 좁은 공간에서 자유롭게 활보하기 위해 더 바쁘게 움직여 보리라 결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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