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주얼머천다이저의 업무 분석 (2010, 목경숙)
2010년, 39살에 인생의 가장 중요한 일을 해냈다.
바로 '출산' 이라는 것인데 노산, 자연분만, 모유수유...등의 타이틀과 함께 생애 딱 한 번의 경험이었다.
일생 일대의 중요한 출산과 맞물려 논문 발표를 앞두고 있었다.
출산이 8월 17일, 논문 발표가 6월 14일, 마침 내 생일이라니,,,
임신 8개월이었다.
출산 후에는 논문 쓰기 힘들다는 선배들의 조언에 따라 어떻게든 이번에 패스를 해야 된다는 일념으로 모든 생활의 우선 순위가 논문이었다. 별다른 태교를 할 수도 다른 일을 할 수도 없었다. 지독히 잠이 많았던 3개월부터 책을 안고 졸다가 자다가를 반복하녀, 허리가 아파 복대를 하고 책상에 앉아있었다. 교수님의 조언대로 가장 자신있는 분야를 정해서 주제를 잡으라고 하셔서 새로운 연구를 하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르고 13년 넘게 일 해온 경력을 토대로 10년차 이상의 국내외 브랜드 팀장들의 심층 인터뷰를 취합하여 논문을 썼다.
그렇게 완성된 논문이 [비주얼머천다이저의 업무 분석]이다.
꾹 누르면 볼 수 있다.
같이 논문을 쓰게 된 동기들 중 내가 주제를 제일 빨리 잡았다. 가장 자신있는 분야였고, 자료가 많았고 인맥도 좋았다. 심층 인터뷰를 하며 주제가 더 뾰족해졌다. 마음은 빨리 써 질 것 같았는데, 몸이 무겁고 집중력이 떨어져 도무지 글이 써지지 않았다. 나는 의류학과 출신이라 학부 졸업 때도 패션쇼로 졸업했기 때문에 졸업 시험이라든가 졸업 논문에 대해서는 모른다. 오로지 디자인하고 옷을 만들고 모델에게 입혀 무대에서 패션쇼를 하는 것으로 졸업이 완료되었다. 패션쇼가 끝나면 본격적으로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취업을 알아보게 된다. 물론 진로마다 준비는 다를 수 있다.
태교에 좋다는 걸로 뭐라도 해야할 것 같았는데 내 마음의 여유가 없고 시간이 부족하여 뱃 속 아이에게 늘 미안했다. 사람들은 논문쓰며 공부하는 것이 제일 큰 태교라고 입을 모았지만 내 마음은 늘 그랬다. 내 몸에 비해 양수가 많고 아이의 활동이 점점 많아졌다. 왼쪽에서 오른쪽, 위에서 아래로 움직이는 느낌이 고스란히 느껴지고, 발로 찰 때 발끝이 배를 찔러 눈에 보일 정도로 활동이 왕성했다. 논문 발표 할 때 정신이 없을 것 같았다. 논문 발표 할 때는 좀 잤으면 좋겠다는 바램으로 기도했다. 논문을 준비하고, PPT를 만들고 서서 발표 준비를 했다. 손이며 발이 퉁퉁 부어 30분도 서 있기가 힘들었다. 시간이 흘러 발표 당일이 되었고 원피스와 힐을 신고 발표를 끝냈다. 무슨 정신으로 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마지막 한 번이라는 간절한 마음이었다. 발표하는 동안 내가 임신한게 맞나 싶을 정도로 아이는 조용했다. 너무 고마웠다. 다만 오랫만에 신은 힐 덕분에 발은 까질대로 까지고 살과 만나는 부분은 살이 베어져 피투성이였다. 긴장이 풀어지고 얼마나 시름시름 힘들었는지,,, 나름 책을 한 권 쓴 것이다.
바로 졸업 사진 촬영을 했는데 그것은 만삭 촬영이었다.
사람들이 나에게 한우물만 판다고 한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글을 쓰며 생각이 달라졌다. 내 나름의 신념과 고집이 이렇게 나를 끌고 온 것 같다. 잘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 일의 전문가가 되었고 다만 이 일 말고는 잘 모르는 사람이 되어 버린 건 아닌가 걱정이 되기도 한다.
자기 분야 외의 사람을 만나면 다른 길이 보인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예전에는 그 말이 잘 믿기지 않았다. 지루하고 재미없었던 것이 사실이었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다. 뭔가 나의 일과 조합하거나 콜라보해서 비주얼머천다이저의 업무를 확장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늘 고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