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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칠한 팀장님 Jan 18. 2022

경단녀, 입사해서 적응하기 _3





오랜 기억을 끄집어 내듯 했던 일을 되뇌이며 계속 내 머리가 내 몸이 기억하고 있는 것들을 끄집어 낸 것 같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빨리 적응하고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적응이 되었다고 생각하니 회사생활의 루틴이 자리 잡게 되었고 특별한 프로젝트가 없는 한 그리 힘들 일은 없는 듯 여겨졌다. 회사 생활이 익숙해 질수록 육아와 집안 일에 마음이 더 쏠리기 시작했다. 주말에 더 놀아 주고 저녁에 더 신경 써 주고 어린이집에 입고 갈 옷이며 다양한 활동들에 계속 매달리게 되었다. 반찬은 절대 사먹이지 않는다는 나의 생각으로 아이가 잠자는 주말 저녁에는 새벽 3시까지 일주일치 반찬을 만들어 놓았다. 매장에서 파는 내복과 실내복이 마음에 들지 않아 좋은 퀄리티의 원단을 구입하여 내복, 수면 조끼, 실내복 정도는 전부 만들어 입혔다. 과일도 잘 챙겨 먹였다. 내 수면 시간이 하루에 4시간을 넘지 못했다. 출장갈 때, 기차나 고속버스 안에서 무조건 잠을 잤고, 숙소에서는 오히려 푹 잤다. 주말에도 문화센터, 놀이동산, 동물원 등으로 스케줄을 짜서 다녔으며 주일 스케줄도 최대한 아이 중심으로 지냈다.


계절이 두 번 쯤 바뀐 어느 월요일, 주간 회의 중에 다이어리에 회의 내용을 기록하려는데 손에 작은 경련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도저히 기록을 할 수 없었다. 손이 떨렸다. 누가 몰까봐 걱정될 정도였고 다른 사람들의 펜소리와 노트북 자판 소리가 나는 회의 시간에 혼자 손을 내리고 떨리는 오른손을 왼손이 꼭 붙집고 있었다.


매장을 나가도 한쪽 손이 떨리기 시작했고 마네킨을 자꾸 떨어뜨렸다. 밥 먹다가 숟가락을 움직이기 힘들기도 했고 테이크아웃 커피를 쏟기도 했다. 주먹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해 보아도 뭔가 내 뜻대로 되지 읺았다. 1주일을 지내고 병원을 찾았다. 어깨부터 손끝까지 물리치료를 시작했다. 점심 시간을 꼬박 이용해서 가야하는 치료라 점심을 굶고 다녔는데, 조금 나아지는듯 하더니 썩 차도가 느껴지지 않았다. 평소 생활을 들은 의사 선생님이 "집안 일이든 회사 일이든 둘 중 하나만 하셔야지, 낫기 힘들 것 같은데요." 라고 말씀하셨다. 갑자기 서러움에 복받쳐 눈물이 흐르는데, 회사에 어떻게 들어왔는지조차 생각나지 않을 정도였다. 마침 몇 개 브랜드의 리뉴얼이 진행되고 있었고 3~5년만에 하는 리뉴얼이라 정신없이 바빴다. 신경도 많이 쓰였고 야근도 많았다. 이 쯤에서 다시 정신을 가다듬어야 했다.


회사 일이 힘들어 질 때마다 '때려치고 애나 볼까?'라는 생각을 한다. 아이를 붙잡고 '엄마가 회사 안가고 헨리랑만 놀아 주면 좋겠지?' 라며 영혼없는 질문을 해댄다. 대체 뭘 확인하고 싶은 걸까? 어디로 도망가고 싶은걸까?


이번에는 몸이 힘들어지니 뭔가 서러움과 서운함이 북받혔다. 내 마음이 너무 아렸다. 덜덜 떨리는 손을 때려 보기도 하고 흔들어 보기도 했지만, 마음이 더 아팠다. 속상했다. 변화가 필요했다.


항상 스티로폴 박스 가득 반찬을 보내주시는 엄마에게 반찬을 좀 더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엄마는 당장 도우미를 부르라고 하셨고, 늘 괜찮다고 하다가 이번에는 일주일에 한 번 도우미 서비스를 신청했다. 아이옷 만드는 것을 너무 좋아했지만 조금 줄였다. 집 앞 요가학원에서 주 2회 요가를 시작했다. 한의원에서 몇 가지 검사를 하고 약을 2재 지어 먹으면 안되는 음식을 멀리하며 정성껏 먹었다. 이 정도만으로도 뭔가 생활이 정리되는 것 같았다. 손떨림은 곧 나았다. 넘 신기했다. 머릿속도 정리가 되어가는 느낌이었다. 조금 내려 놓았더니 살 것 같았다. 내 마음도 조금 더 너그러워졌다.






회사 업무가 늘고 인원이 줄었다. 계속되는 야근과 주말 근무, 보고 자료들로 바쁜 날이 계속 되었지만 몸이 좋아졌기 때문에 그럭저럭 잘 버틸만했다. 수면 시간도 6시간 정도 유지하게 되었다.


업무는 항상 기록했다.

데일리 페이지의 위에서부터 중요도 순으로 적어 내려갔고, 개인 일은 가장 아래줄에서부터 적어 올라갔다. 디테일하게 사우나 가기, 세제 구입, 손톱깎는 것까지 적었다. 하기 싫은 일부터 먼저 했다. 아니 해치웠다. 끝낸 일에는 줄을 그어 확실히 표시했다.


가령 2시 A와 미팅, 3시 B와 미팅이 있는데 A와 미팅이 2시 45분에 끝나서 중간에 15분 정도 비어도 화장실을 다녀오거나 커피를 마시지 않았고, 뭔가 15분 안에 끝낼 일을 하고 밑줄을 그었다. 퇴근 전에 다음 날 할 일을 미리 적어 두고 미팅의 경우는 시간을 다시 확인하고 , 내가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해서 미팅이 길어질 일은 만들지 않았다. 누구나 이렇게 일을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 나의 생활을 비교해 본다면, 그 때는 좀 더 치열했던 것 같다. 그래야 육아도 집안 일도 할 수 있으니까. 본캐와 부캐가 있는 사람, 투잡하는 사람처럼 양 손에 2개의 일을 들고 뛰는 사람이었다. 그 때는 그랬다. 자기계발이라는 것은 이상한 나라의 과자이름인가, 이런 생활 속에 육아 블로그를 적는 사람들은 외계인일까? 그 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외근과 출장, 새벽 작업과 야간 작업이 포진해 있는 내 업무의 특성 상 시간 관리는 최우선 순위였다.

아이가 수족구라도 걸렸을 땐, 부산에서 엄마가 우리 집에 일주일 씩, 열흘 씩 오셔서 도와 줬으며, '무엇을 위해 이렇게 사는가?'따위의 고민을 할 여유가 내 머릿속에는 먼지 만큼도 없었다. 무조건 적고 줄 굿고, 적고 줄긋고, 넘기고,,,의 반복이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다.


때때로 이런 생각을 하곤 한다.

"결혼 늦게 하기 완전 잘 했어. 이렇게까지 내가 하고 싶은 거 못하고 살게 될 줄 몰랐는데, 싱글 때 많이 해봐서 천만 다행이다.. 뭐냐면, 여행, 어학연수, 콘서트, 브런치, 신발장이 꽉 차서 싱크대 수납장까지 꽉 채운 내 구두들, 옷장 미어 터지도록 샀던 쇼핑, 맛사지, 네일, 밤새도록 친구랑 수다떨기, 휴일 전날이면 새벽까지 보는 미드...38살에 결혼한 건 신의 한수였다. 더 빨리 했으면 후회했을 듯,,,"

그 때는 인생의 외로움과 낭만에 빠져 살았는데,,, 

씹어 먹을 추억이 있어서 지금의 나를 견디게 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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