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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학윤 Jun 08. 2020

늪과 그물

인간수업-각본 진한새 / 연출 김진민 (리뷰 같지 않은 리뷰, 리갈리)


개가 온다. 궁금하지 않아. 개가 온다니까. 평소보다 높은 목소리로 말하는 너. 흥분했을 때 그런 목소리를 내서 시끄럽다. 일을 해야 할 때. 일을 벌 때. 너는 때에 따라 달라지는 인간. 난 그런 너의 눈이 무섭다. 높은 목소리로 말할 때 휘어지는 눈매가 나를 찌를까 봐. 너를 적으로 두지 않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무섭기 때문이다. 다행히 그 무서움도 학습된다. 몇 년이 지났지. 몇 년이 지났느냐고 묻는다. 무슨 소리야. 개가 온다니까. 몇 년은 무슨 몇 년. 너는 이미 개 얘기 말고는 더 할 얘기가 없다고 보는 걸까.

여기는 조금 좁다. 두 명이 지내기에는. 그래서 안전하기도 하다. 이런 곳에서 사람이 살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어디에서도 사람을 살 수 있다. 사람은 역겨운 곳에서도 자라날 수 있다. 무럭무럭. 나는 아직도 성장하고, 너도 아직도 성장하고, 세계도 아직도 성장한다. 돈은. 돈은 성장하지 않고 자가 번식한다. 물론 갖고만 있는다고 해서 번식하지는 않고, 이 암수도 없는 종은 서로 물어뜯어야만 성장할 수 있는 기이한 특성을 가졌다. 기르고 싶어도 기를 수가 없다. 인간이 탄생시킨 이 종은 여전히 사회화가 되어있지 않고.

그러고 보면 사회화는 누굴 위한 사회화일까. 도덕성과 이타성은 누구를 위한 걸까. 너는 나갈 준비를 한다. 개를 맞이할 준비를 한다.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너. 나도 준비를 한다. 나갈 준비를 하다 하수구 구멍 사이에서 자라고 있는 곰팡이를 본다. 곰팡이 사이에서 돌아다니는 날파리 떼를 쳐다보면서 셔츠와 자켓을 걸친다. 개를 맞이 하려면 준비해야 한다. 멀끔한 인상. 깔끔한 태도. 인간이 인간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건 이토록 미약하다. 이런 모습 만으로도 인간은 인간을 믿는다. 물론 얼뜨기들. 먹힌다면 좋고, 수를 읽히고 간파당한다고 해도 나쁘지는 않다. 나와 너는 젊다. 이 정도는 애교로 봐줄 거고.

난 개의 목덜미를 문다. 너는 조련할 거고. 그럼 된다. 돈이 번식할 조건이 갖춰진 거다. 개가 가지고 있는 돈을 내 돈이 먹어치우자.






해하지 않으면 먼저 당한다. 어수룩하게 대처할 수 없다. 나는 실수를 했고, 다시는 내가 있던 곳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되었다. 기회가 있었나. 기회가 정말로 있었냐고 따져 묻고 싶으나 아무에게도 이 질문을 던질 수가 없다. 그러고 보니 너는 왜 여기에 있냐고 내가 묻는다. 너는 새삼스럽다는 표정으로 대답한다. 내가 있고 싶으니까. 돌아갈 수 없는 게 아니냐고 묻는다. 돌아갈 수 있어. 내가 아는 그 치들은 절대로 날 버릴 위인들이 못 되거든. 피라는 거, 혈육이라는 거 질기게 믿는. 구역질 나는 인간들이니까. 나는 아무렴 어떻냐고, 되뇐다. 너는 지금 나와 함께 일을 하고 있으니 그걸로 좋다.

바깥으로 나오니 해가 띄워져 있다. 잘 만들어 놓은 원반처럼 떠 있는 해가 쏟아내는 햇빛. 개울가에서 튀어 오르는 물고기. 책가방을 들고 뛰어가는 아이들. 달리는 자동차와 멈춰 있는 자동차. 쓰러져 있는 부랑자와 지나가는 행인들. 깊은 주머니를 가진 바지와 이제는 출시되지 않는 구형 휴대폰. 다시 묻는다. 사회는 누굴 위한 사회일까. 이건 치기 어린 질문일까.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나. 굴러갈 수 있나. 다들 그렇게 굴러갈 수 있나. 장난감 병정처럼. 이렇게 말하면 이 또한 치기로 치겠지. 쭉 그래 줬으면 좋겠다. 당신들이 멍청할수록 아무 일도 하지 않을수록 나는 움직여서, 지금 옆에 있는 너와 함께 움직여서 해치울 거다. 살아갈 거다.

스타렉스에 올라탄다. 최근에 대포차로 하나 구했다. 운전할 수 있어? 조수석에 올라탄 네가 장난스럽게 묻는다. 웃는다. 난 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할 수 있다고.

이 늪에서 반드시 벗어날 수 있다. 시동을 걸고, 액셀을 밟는다. 개가 있는 곳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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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수업.


https://www.netflix.com/kr/title/809906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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