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입학을 하자마자 졸업을 하고 싶었다. 학교가 싫었다거나 지루했던 건 아니다. 오히려 지금까지 만나지 못한 유형의 사람들을 만나겠다는 기대감에 많이 설렜다. 기대는 현실이 되고, 지금도 대학교에서 만났던 친구들을 볼 때면 이 사람들을 만난 게 다행이라고 느낀다. 자기 자신을 한껏 밀어붙이면서 글을 쓰는 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직접 보여주던 ㅇㅇ나 박력 있는 재능으로 늘 아무렇지 않게 놀라운 글을 쓰던 ㅅㄹ나 구태의연함을 벗어던지고 어디에도 갇히지 않겠다는 듯 자유롭게 쓰던 ㄷㅇ. 입학하고 난 뒤 이들과 함께 한 스터디 덕분에 내가 얼마나 좁은 곳에서 글을 쓰고, 그러면서 얼마나 또 어설프게 자랑은 하고 싶었는지 알게 되었다. 언제까지고 이런 자극을 받아 가면서 글을 쓰고 싶다는 바람과는 별개로 학교를 졸업하고 싶다는 생각은 쉽게 떠나지 않았다.
대학교 생활에서 좋았던 일만 있었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전해도 맺어지지 않는 마음을 새삼 확인하고, 무탈하게 이어질 거라고 예상했던 관계는 생각보다 쉽게 깨졌다.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는 채 곧 복학하는 나에게 연락을 했던 곧 복학하던 그 사람과는 다신 대화를 하지 않고 싶었고, 정말로 다신 대화를 하지 않았다.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어떤 일은 오해였음이 밝혀지고, 이렇게까지 갈라져야 하는 일인가 싶다가도 같은 강의에서 마주치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고개를 돌렸다. 처음에는 그 사람과 멀어져야 했던 분명한 이유도 지금은 불분명해졌다. 처음부터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는 듯. 내가 사람을 배제할 때는 논리가 없었다. 대학을 다니지 않았다면 아마 몰랐거나 굉장히 늦게 이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나는 나에게 별 관심이 두지 않는 사람이기도 하다. 어제 먹었던 음식이 무엇이었는지 자주 깜빡했고, 내일 아침부터 중간고사를 계속해서 치르는데도 갈등 없이 두 발 뻗고 잤다. 여전히 나는 부정하는 일이 하나 있다. ㅈㅇ라는 친구는 비 오는 날 넘어진 자기를 보고도 내가 그냥 가던 길을 갔다고 하던 일…… 비 오는 날에 내가 나를 더 놔버리기는 해도 설마 그렇게까지 했을까. 영혼이 없다는 소리도 자주 들었다. 난 그 말이 싫었다. 부정하기 때문에 싫은 건 아니었다. 인정해서 그랬다. 나는 영혼 없이 누군가를 다독이는 척하거나 위하는 척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이렇게 어정쩡하고 무슨 콘셉트로 살아가는지 알 길 없는 내가 나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되고 싶은 나에 나를 싣는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변하고 싶었다. 적어도 내가 나를 속이는 일은 더는 하기 버거웠다. 학교에 가려면 나는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환승했던 나는 혼자서 등교하는 경우가 많았으므로 그때가 적기였다. 앉거나 서거나 자세는 중요하지 않은데 되도록 내 얼굴이 어느 정도 비치는 위치가 좋았다. 흐릿하게 보이는 내 얼굴을 응시하다 보면 내가 좀 풀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물에 물감 풀 듯 서서히 내가 퍼져나가다 어느새 긍정적인 에너지를 가득 머금은 나로 다시 결합하는 것 같았다. 착각인 걸 알았다. 팽팽하게 당긴 고무줄도 금방 원래 상태도 돌아가려고 하듯 사람은 갑자기 변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대로 살면 그럴 의도가 없었는데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줄 것 같았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도.
겉으로는 세상 혼자 살 수 있다고, 언제든 혼자 떠나서 혼자 돌아올 수 있는 방랑객처럼 군 적이 많으나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은 나를 싫어하지 않았으면 했다. 그러려면 들키지 말아야 할 것 같았다. 나는 아무런 이유 없이 모르는 사람을 두들겨 패고 싶었고, 모르는 사람에게 두들겨 맞고 싶었고, 뭐가 답답한지도 모른 채로 원인을 바깥으로 돌려대고, 다른 사람을 위로하면서 나의 시시한 무탈함에 몰래 안심하기도 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는 나를 속이고, 이런 사실을 들킨 게 민망하고 분해서 사실을 알아챈 사람을 밀어냈다. 무례하다고, 네가 뭘 아느냐고.
이런 과정이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였나. 이 정도 스트레스는 다들 짊어지고 사는 거 아닌가. 대학교에서 만났던 이들 중 자신의 힘듦을 풀어내는 데 주저하지 않는 사람들도 꽤 많았다. 대개 이런 패턴으로 ‘내가 힘들다고 속으로 곱씹는다 → 남들도 이 만큼 힘들거나 이보다 더 힘들다고 말한다 → 가만히 듣다 보니 내 힘듦은 별 게 아니었다’ 신기하게도 이런 패턴을 반복하면서 내가 지금까지 겪었다고 믿었던 어려움과 고난 그리고 감정의 솟구침이 한껏 잠잠해졌다. 정말 수상하고 싶었던 그러나 티는 내지 않았던 교내 문학상에서 끝내 내 이름이 어떻게도 올라가지 않았을 때도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 이런 식으로 넘어갔다.
꼬리에 꼬리를 물기만 하고 명확한 답이 나오지 않아서 학교를 졸업하고 싶었다. 답도 없는 질문을 내게 던지는 걸 좋아하면서도 장기적으로 보자면 이렇게 사는 건 손해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다. 학교를 떠나서 글은 쓰지 않고 행복한 독자로 남아 생활비를 쓰고, 적금도 들고, 주식도 하고 남은 돈으로 책을 사고 영화를 보면서 나도 저런 작품을 쓸 수 있었을 거라는 적당한 후회도 곁들이면서 이상하리만치 고요한 밤을 보내고 난 뒤 다시 활기차게 아침을 시작하는 게 내가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숱하게 고민했다.
그런데 고민만 하다가 졸업까지 해버렸다. 올해 2월. 공식적인 졸업식은 없었지만, 고맙게도 나의 졸업을 직접 찾아와서 나보다 더 축하해준 ㅈㅇ, ㅇㄹ, ㅈㅇ, ㅅㅇ, ㅅㅎ 덕분에 나는 대학교에서 내가 뭘 얻어 가는지 배워가는지 즐기고 가는지, 내가 어떤 때 행복한지…… 확실하게는 몰라도 어렴풋이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결국 이 사람들을 만나러 대학교에 왔구나. 사람을 만나러. 사람 때문에. 이 글의 제목은 졸업장에 적힌 총장의 거창한 축사보다 더 졸업장에 적혀 있어야 할 문장 같았다.
‘선배, 이제 마지막 졸업이네요’에서 포인트는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선배’라는 말이다. 두 번째는 이번 졸업이 ‘마지막’이라는 말. 세 번째는 내가 ‘이제’야 졸업을 한다는 것이다.
내가 되고 싶었던 ‘선배’처럼 나도 후배들에게 그렇게 행동을 했는지 의심스러웠다. 재작년부터 만났던 후배들에게 빚진 게 많다. 뭔가 아는 척 떠들어댔지만, 그게 그들을 착각하게 만들고 혼란스럽게 만들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안절부절못했다. 그렇다고 지금까지 내가 했던 말을 모두 잊어라, 하고 말하기에도 너무 오버였다.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대학교 4년. 길다면 길고, 짧다고는 하기 힘든 학교생활은 이제 ‘마지막’이다. 내 인생에 학교가 없다는 건 놀라웠다. 레벨업이 눈에 선명하게 보이는 세계에서 이제 않는 세계로 건너가는 캐릭터처럼 이제 졸업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내가 힘껏 뛰쳐나가야 했다. 대학교 수강 사이트에 들어가서 마음을 졸이는 일과는 비교하기 어려울 만큼 세상은 학교 수강신청보다 더 예상할 수도 없고, 자유도가 높지 않겠나.
이십 대 중반을 넘어간 내가 ‘이제’야 학교를 졸업했다는 사실도 뭐가 그렇게 이상하게 느껴지는지. 아깝게 시간을 날렸다기보다 정말 어딘가로 시간이 증발해버린 것 같았다. 이십 대가 인생의 가장 찬란한 순간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나도 이 말에 동의한다. 아직은. 더 살아보면 바뀔 수도 있으나 나는 내가 겪은 시간만 판단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참 이상하다. 선물 받은 꽃다발을 들고 학사모를 쓴 사진 속 나는 복잡한 생각들을 전부 잊은 듯하다. 졸업할 때의 나는 뭐가 그렇게 좋아서 웃고 있나. 나는 웃을 때 얼굴을 다 쓴다. 얼굴을 다 쓰지 않는 웃음은 냉소거나 비웃음이거나 내 눈앞에 있는 사람의 장단을 맞추려 입꼬리 근육을 움직이는 활동에 가깝다. 그런데 졸업 사진 속 내 얼굴은 그런 웃음의 기미조차 없다. 다시 졸업하면 이런 웃음을 지을 수 있나. 대학원까지는 생각이 없고, 인생을 졸업하기에는 난 굉장히 오래 살고 싶으니까. 대학교를 다시 다닌다면 졸업을 할 때 또 그렇게 웃을 수 있을까. 그럼 해 볼 만할 것 같다가도…… 끝내 그러지 않을 듯하다. 다시 한다고 해서 내가 대학교에서 만났던 모든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는 것도, 지금과 같은 관계를 이어나갈 수 있는 건 아니니까. 그러니 당분간 졸업은 없다. 정말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