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쇠 Aug 21. 2023

영국 유머를 맛보고 싶은 자, 고생하라

런던 1일 차 저녁, 스탠드업 코미디를 보기 위한 짧은 기록

비가 내리는 저녁, 런던 도착.

샤를 드 골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며 런던 첫날밤을 장식할 이벤트들을 미리 찾아봤다.

유명한 연쇄살인마 잭 더리퍼의 행적을 좇는 잭 더리퍼 투어, 방탈출 같은 비밀 미로 방, 영화를 보며 술을 마시는 시네필 음주가무 놀이 등등.


우리의 선택은 스탠드업 코미디였다.

순전히 나의 고집이었다. 어울려줘서 고맙다는 말을 다시 한번...

영국인들의 자조적인 비터스윗 유머를 듣기 전까지는 내가 있는 이곳이 런던인지 파리인지 뉴욕인지 분간이 안될 것 같았다. 스스로에게 준비한 웰컴 이벤트인 셈이다.


우선 배를 채우러 런던브릿지역 근처의 스페인 식당으로 갔다.

팁문화가 있는 곳의 외식이란 만만치 않은 것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며, 미리 검색해 둔 스탠드업 코미디 가게로 향했다. 주택가 쪽에 있는 오래된 펍이었는데, 펍 2층에서 무료입장인 아마추어 코미디 쇼가 펼쳐지는 곳이었다. 가게에 입장해서 코미디를 보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직원에게 속삭이면, 으슥한 문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계단을 올라가라고 알려준다. 2층에 가까워질수록 거짓말같이 몽롱한 박수소리와 웃음소리가 들렸다.

계단을 뒤덮은 사진들


이곳이다! 우리가 찾던 런던의 코미디 장이!

잔뜩 기대감을 안고 그 문을 열었을 때, 가게 주인 같아 보이는 나이 지긋하신 아저씨가 지금 온 거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하자, sweetie 우리 지금 자리가 방금 가득 차서 입장이 안될 것 같다고 너무나 스윗하게 말해주셨다. 슬쩍 내부를 둘러봤다. 말 그대로, 소극장 같은 방의 의자는 모두 누군가의 몸집으로 빽빽하게 채워져 있었다.


망연자실!


무대에 푸른색 핀 조명을 받고 한 손에는 맥주를 든 코미디언이 시시껄렁하게 공연을 펼치는 광경을 눈에 두고, 우리는 가게를 나올 수밖에 없었다.


가게 입구의 처마 밑에서, 아까보다 차갑게 느껴지는 비바람을 맞으며 우리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할지 궁리했다. 얼마 남지 않은 배터리를 통해 다른 스탠드업 코미디 가게를 찾기 시작했다. 이미 저녁이 지나가는 시간이었기에 선택지는 줄고 줄어서 이대로 심심하게 런던의 밤을 마무리하려나 하는 순간, 멀지 않은 곳의 펍에서 하는 다른 아마추어 코미디장을 발견! 공연은 이미 시작했지만, 빨리 간다면 한 시간은 볼 수 있으리라. 그렇게 우리는 빨간 2층 버스를 타고 런던의 서쪽으로 달렸다.


작가의 이전글 몇 시간 뒤 출발하는 런던행 티켓을 끊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