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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킴치 Apr 14. 2020

홍콩 가출기 #3-2. 밥 잘 사 주는 옛날 영국 오빠

1-3. 모든 것은 2015년 12월 25일, 그 날 시작이 되었다

그가 말한 대로 그들은 모두 금융권에 종사하는 사람들이었다. 두 명의 미국인이 있었고, 한 명의 호주인, 그리고 나머지 두 명은 영국인들이었다. 두 명은 큰 자산운용사의 펀드매니저 들이었고, 두 명은 시중은행에서 일하고 있었으며, 한 명은 헤지 펀드사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홍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조합이었다. 홍콩에서는 발에 채이는 게 뱅커와 변호사들(그리고 대부분이 금융 관련 변호사들이다)이라 할 정도로 특히 엑스팻(expat)들 사이에서 이 두 업종이 압도적 비율을 차지하고 있었으니.


룸메 언니를 포함에 나까지 두 여자가 나타나자 모두들 호기심 띄는 얼굴로 테이블로 모여들었다. 으레 그렇듯, 이름이 무엇이며, 어디서  무슨 일을 하고 있으며, 원래는 어느 나라 사람이고, 홍콩에 온 지 얼마나 됐는지 등의 전형적인 자기소개를 했고 이후 하는 일에 대한 몇 번의 질문들이 오고 갔다. 곧 명함도 주고받고 왓츠앱(What's App, 외국에서 많이 쓰는 카카오톡과 같은 메신저다) 번호도 주고받았다. 직업적 호기심과 이성적 호기심 사이,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그제서야 신사인 척(!)하며 아주 예의 바르게 행동하는 그들 모습이 우스웠다. 비웃음의 웃음이 아니라 그냥, 재미있는 상황.


내가 처음 홍콩에 가서 놀란 것 중 하나이자, 반대로 홍콩 생활 10년 후 한국에 와서 적응하기 힘들어하는 것들 중의 하나가 바로 결혼 적령기에 대한 것이 아닐까 싶다. 외국에 결혼 적령기라는 것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한국처럼 그 시기에 결혼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사회의 이치를 거스르려는 자처럼 취급되지는 않는다. 대략 어느 나이 때에 결혼을 많이 한다는 컨셉 정도가 있는 거지 결혼의 시기는 제각각이며 이에 대해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이제까지 내가 관찰한 바에 따르면 (서양권의) 외국 사람들은 아예 결혼을 일찍 해버 리거나, 아예 안 해버리는 경우로 나눠지는 듯했다. 뭐, 적어도 홍콩에서는.


전생에 큰 공덕을 쌓아야 가능하다는 홍콩에서의 연애, 그리고 결혼. 커플들을 볼 때면 항상 궁금했다. 저들은 만난 지 얼마나 되었을까, 또 얼마나 더 만날까.

우리나라에서 30대 중 후반 정도라 하면 다들 결혼하고 애 하나 둘 정도 있는 아줌마 아저씨를 떠올리겠지만, 외국에서는, 그리고 아주 분하지만 특히나 남자들 사이에서는, 그 나이가 거의 직업적, 그리고 인생의 황금기라 생각한다. 어느 정도 수준의 사회적 지위와 재력을 갖춘 잘 나가는 싱글. 미드를 자주 보는 사람이라면 뉴욕의 잘 나가는 변호사들의 삶을 배경으로 한 '슈트(Suits)'라는 미국 드라마를 떠올리면 빠를 것이다. 그 드라마에서 나오는 잘생기고 돈 많고 잘 나가는 로펌의 파트너 하비(Harvey)의 모습이랄까? 물론, 모두가 그렇게 잘 나가는 건 아니지만서도.


유유상종이라는 게 맞는 말일까. 내 주변에는 (어린 나이에 결혼해 정착한) 커플들 보다는 (일을 하느라 결혼 적령기를 놓친, 혹은 자발적으로 잡지 않은) 인생의 황금기를 즐기는(이라 쓰지만 물음표를 던지고 싶다) 싱글들이 대부분이었다. 사실 나만 해도 그러했다 어느 순간부터 내 삶에서 일의 비중이 늘어나면서, 그리고 지난 연애에서 얻은 상처로 인해 사람 만나는 것이 더욱 두려워지고, 이에 더 좋은 사람을 만나 정착해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아예 상처 받을 일은 만들지도 말자라는 생각이 내게 자리 잡으면서 일을 연애, 내 개인사보다 우위에 두기 시작했다.


경쟁적인 홍콩의 워킹 문화(working culture) 또한 이에 한몫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정해진 일(만)을 끝내고 가는 사람은 승진에 욕심이 없는 야망 없는 사람으로 비치는 곳에서 내 영혼의 반쪽을 찾고 싶다는 말은 아직 철이 덜든 이의 순진무구한 이야기로 치부되었다. 데이트를 할 때 갑자기 잡힌 일에 관련된 일정으로 상대방의 약속을 본의 아니게 펑크를 내도, 2시간 전에 갑자기 약속을 취소한 사람이 아닌, 약속을 취소 당해 속상해하는 사람이 배려심이 없는 사람이 되는 곳이 홍콩이었다. "미안해 갑자기 출장이 잡히게 되었어" "미안해, 갑자기 뉴욕이랑 컨퍼런스 콜이 생겨서 우리 약속 미뤄야 할 꺼 같아" "미안, 나 지금 일본 클라이언트랑 일이 생겼는데, 알잖아, 그들은 자신이 연락하던 컨택 하고만 일하는 거. 내가 회사에 늦게 남아 있어야 할꺼 같아" 상대방이 ‘일’이라는 카드를 꺼내 드는 순간 내가 반박할 수 있는 여지는 더 이상 없었다.


어쩌면, 홍콩에 사는 이들은 그냥 일과 결혼을 했다고 보는 것이 맞을 수도 있다. 아무리 상대방이 천사라 해도 거의 매일 기본 퇴근시간이 10시 이후이며 (혹은 퇴근 이후에도 미주/유럽 등지와 콜이 있다거나), 매주 클라이언트나 친구들과의 저녁 모임이 있고, 한 달에 일주일 이상을 출장으로 나가 있는 사람과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사람들은 흔치 않을 것이다. 양방이 그런 삶을 살고 있다면 더더욱. 이런 뭣 같은 구조와 더불어 나이를 한 살 더 먹을수록 강하게 다가오는 불확실성, 상처에 대한 두려움은 우리 모두를 일에 매달리게 만들었다. 적어도, 일은, 노력을 배신하지는 않으니까. 홍콩에 유독 싱글이 많은 이유 중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영국 식민지 시대의 건물과 그 뒤로 빽빽이 늘어선 고층 아파트, 그리고 이를 반짝반짝 비춰주던 햇살이 가득하던 날

아무튼,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싱글이었다. 왁자지껄 떠들고 술이 계속 들어가자 금세 흥이 올랐다. 원래 5명인 그룹에 우리 둘까지 합쳐져 금세 그 바 안에서 가장 큰 그룹이 되었다. "저기 제니퍼, 혹시 내 친구 하나 여기 오라고 해도 될까요?" 펀드 매니저라는 남자가 나에게 물었다. "아니 그걸 왜 나한테 물어봐요? 맘대로 해요. 근데 왜 이렇게 조심스럽게 물어봐요? 여자 친구?" 호기심에 가득 찬 목소리로 그에게 질문을 했다. "그러게요. 내가 왜 제니퍼한테 물어봤지? 하하 아, 여자 친구는 아니고, 요즘 만나는 사람이에요" 그는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을 했다. "그래요? 얼마나 만났어요?" "흠.. 한 2달 정도 만났나? 뭐 그즈음된 거 같아요" "그럼 슬슬 무슨 관계인지 정립할 때가 오고 있네요? 이렇게 친구들한테 소개할 정도인 거 보니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나 봐요? 부러워요" " 아주 좋은 여자에요. 내가 이렇게 술 취해 돌아다녀도 날 내치지 않으니 아주 다행이죠" 그 또한 장난스러운 미소를 띠며 갓 나온 맥주를 벌컥벌컥 마셨다.


"저번에 만나던 그 프랑스 여자는 어떻게 하고?" 갑자기 옆에서 누군가가 끼어들었다. 고개를 돌리니 하얀 비니를 쓴 영국 남자였다. "우리 자기소개했나요? 난 제니퍼예요. 이름이 어떻게 돼요?" 그에게 악수를 하기 위해 손을 내밀었다 "아 미안해요, 난 R이에요. 한국 사람이라죠? 아까 S한테 들었어요. S가 당신을 상당히 맘에 들어하는 거 같던데?" 그는 내민 내 손을 보더니 살짝 멈칫하다 눈을 맞추며 악수를 했다. "맞아요 한국 사람. 그리고 이것도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난 지금 누구 만나는 데 별 관심이 없어요. 당신이 뭐라는 건 아니고, 혹시 몰라서 미리 말하는 거에요" "왜 내가 당신을 좋아할 거라 생각하죠? 자신감이 넘치네요?" 그는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이 사람 뭔가 하는 호기심 어린 표정과 함께. "어머, 그런 뜻은 아니었는데. 그러게요. 내가 그 말을 왜 했지? 나 완전 재수 없는 사람처럼 들리네요. 나 취했나 봐요. 미안해요 " 민망한 마음에 귀 끝까지 얼굴이 화끈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런 나를 보고 펀드매니저와 R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남자에 관심 없는 제니퍼와 보내는 즐거운 크리스마스를 위하여 건배 한 번 할까요?" 그가 손에 있던 맥주잔을 들었다. 순간 여자 친구인지 아닌지의 하는 사람의 전화가 온 펀드 매니저는 걸려온 전화와 R의 건배 제의 사이에서 정신없어하면서 들고 있는 잔을 들어 부딪히며 외쳤다. "메리 크리스마스"


펀드 매니저가 데려 온 여자 친구와 그녀의 친구 둘, 그리고는 옆에 있던 테이블의 사람들까지 모여 어느덧 10명이 넘는 아주 큰 그룹이 되었다. 내가 홍콩을 떠나 가장 그리웠던 것, 그리고 지금도 그리워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어느 곳에 가던 한두 시간만 있으면 주변 이들과 바로 친구가 될 수 있는 분위기. 혼자 사는 사람들이 많은 홍콩이라 그런지 홍콩 엑스팻들 사이에는 서로 지인을 소개시켜주거나 모르는 사람들을 기꺼이 자신의 이벤트들에 초대하는 문화가 있다. Sure, the more, the merrier (물론이지,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  누군가를 데려와도 되냐는 물음에 가장 많이 듣는 대답이었다. 주로 아는 사람 위주의 모임, 그 모임에 뉴 페이스를 데리고 오려면 모임에 있는 모든 사람의 눈치를 보고 동의를 얻어야 하는 우리나라와 사뭇 반대되는 문화다. 아마도 직종이 거의 비슷비슷하다는 데서 기인한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단순 친목 이외에도 이후의 소셜 네트워킹 면에서도 실(失)이 될 것은 없으니.


이 모든 게 웬수 같은 술 때문? 혹은 술 덕분? 코즈웨베이에 위치한 호텔의 루프탑 바에서 마셨던 더티 마티니

어떠한 이유가 되었건 이렇게 서로 만난 낯선 이들은 술이라는 강력한 매개체를 두고 금세 친구가 되곤 했다. 시시콜콜한 일상 이야기부터 시작해, 새로 연 레스토랑에 대한 이야기, 다가올 이벤트에 대한 이야기, 때로는 일에 관련된 이야기나 세계 정치 이야기를 두고 토론이 벌어지기도 했다. 토론문화가 강하지 않은 (아니 전무하다 해도 좋을 법한) 한국에서 자란 나로서는 이렇게 모르는 사람들끼리 금세 심도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도, 또 그들이 의견을 나누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 자체 또한 아주 흥미로웠다. 어떤 식으로 자신의 논지를 전하는지, 어떤 식으로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면서 자신의 의견을 펼치는지, 어떤 식으로 제스처를 취하며 상대방으로 하여금 내가 당신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음을 어필하는지 등등, 실제로 술자리에서 얻는 소소한 관찰일기들, 혹은 이래 저래 주워들었던 이야기들이 실제 내 회사 생활이나 일상에서 도움이 될 때도 있었다.


두 어번 바/펍을 옮겨 마침내 음악 소리가 시끄럽게 흘러나오는 바에 도착하자 모두의 흥이 최고조에 이르렀다. 어느덧 룸메 언니 또한 그들 사이에 껴서 팔씨름을 하고 있었고, 펀드 매니저와 그의 여자 친구(인지 아닌 지 모르겠는 여자)는 바 한쪽에 놓인 주크 박스에서 노래 선곡을 두고 서로 자기가 좋아하는 노래를 틀겠다며 언성을 높이고 있었다. 설마 저러다 크리스마스 날에 싸우기라도 하는 건 아니겠지?라는 생각과 함께 어느새 취기가 많이 올랐는지 그 둘이 흐릿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저녁을 안 먹고 계속 달려서 그런지 다른 때 보다 취기가 더 빠르게 오르는 듯했다.


"언니, 벌써 열 두시 반이야. 우리 너무 빈속에 달린 거 아니야?" 방금 팔씨름을 마치고 다른 이들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는 언니에게 다가갔다. "어머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어? 집에 갈래?" 시간을 확인한 언니는 놀란 토끼눈을 하고 물었다. "에이 뭐, 어차피 내일 박싱 데이(boxing day)인데 뭐, 좀 더 마시다 가자. 또 팔씨름 한 판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아까 이긴 거 같던데? 내가 술 사 올게. 보드카 소다 마실 거지?" "응 그러니까, 나 왜 크리스마스에 여기서 이러고 있니. 근데 여기 은근히 재밌네? 아무튼 고마워! 나 여기 있을 테니 괜찮으면 여기로 좀 가져다 줄래?" 나는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음료를 주문하기 위해 바로 다가갔다. 저 멀리서 내가 오는 걸 보던 아주 섹시한 차림의 여자 바텐더는 주문을 하려는 나를 발견하고는 그녀의 짧은 반바지 앞자락에 달아 놓은 수건에 젖은 손을 닦으며 금세 내게 다가왔다. "진토닉 하나랑 보드카 소다 하나 주세요!" "알았어요 달링(darling), 금방 만들어 올게요. 그동안 이거 하나 마셔요" 그녀는 내게 윙크를 하더니 작은 샷 잔에 정체불명의 파란 술을 두 잔 따라 한 잔은 자신 앞에, 그리고 다른 한 잔은 내 앞에 내려놓았다. "어머 이럴 거까지 없는데! 아무튼, 고마워요, 메리 크리스마스!" 그녀가 내민 샷 잔을 받아 단숨에 마셨다. 그녀는 내 잔을 가져가며 장난스럽게 눈웃음을 치며 대답했다. “메리 크리스마스 골져스(gorgeous)”


홍콩에는 재밌는 컨셉의 바가 많다. 그리고 모든 역사는 이 바들에서 이뤄진다. 홍콩에서 내가 제일 애정 하는 바인 오펠리아(Ophelia)에서 토끼 가면 쓰고 앉아 있는 예쁜 언니

"보드카 소다랑 진토닉?" 옆에서 나지막한 남자 목소리가 들리기에 돌아보니 잠깐 담배를 피운다면서 밖으로 나갔던 R이 내 옆에 서 있었다. "여기 더운데 비니 쓰고 있는 거 덥지 않아요? 뭐 주문했어요? 담배 피운다고 나가더니 한참 있다 왔네요?" 어느새 사람들로 꽉 찬 바는 따뜻하다 못해 후덥지근하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나 기다렸어요?" 그가 장난기를 가득 머금은 표정으로 물어봤다. “당연하죠. 기다리다 지쳐 울 뻔한 거 안 보여요?" 내가 우는 시늉을 하며 바 위에 있던 냅킨을 집어 들어 눈물을 닦는 시늉을 하자 그가 웃음을 터뜨렸다. "뭐 마실래요? 내가 한 잔 살게요" 그가 말했다. "아, 나 방금 주문했는데? 나 아직 카드 안 받았는데 이거 내가 한 잔 사줄까요?" "진짜요? 고마워요. 그럼 다음 라운드는 내가 살게요. 난 보드카 소다로 할게요"  방금 주문을 했던 바텐더를 다시 소리쳐 불렀다. "저기, 미안한데요, 혹시 보드카 소다 한 잔 더 주문해도 돼요?" "아 지금 막 계산서 찍었는데" 그녀가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내 카드와 영수증을 흔들어 보였다. "아 정말 미안해요, 혹시 한 잔만 더 주문해도 될까요?" "휴, 계산서 줄이 긴데. 어랏 R? 메리 크리스마스!!" 내 옆에 서 있던 R을 발견한 그녀는 단숨에 달려와 R을 반갑게 포옹하며 양 볼에 입을 맞추었다. 뭔가 살짝 어색한 기분이 들어 나도 모르게 그들에게서 두 발자국 정도 떨어져 섰다.


간만에 재회를 한 듯한 R과 그녀는 대화를 하면서 내 쪽을 몇 번 흘긋 흘긋 보았다. 시끄러운 음악 소리에 그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는 들리지 않았다. 아니, 엿듣고 있다는 인상을 주고 싶지 않아 일부러 주위로 시선을 돌린 것도 있었다. "R 친구였어요? 그럼 마지막 껀 바에서 사는 걸로(on the house)!" R과의 대화를 끝낸 그녀는 내 쪽으로 폴짝 뛰어 오더니 빠르게 추가 주문이 들어온 보드카를 만들기 시작했다."서로 친한 사이인가 봐요? 여기 자주 와요? " R에게 물었다. "네, 여기 내가 홍콩에서 제일 좋아하는 바 중에 하나에요. 방금 우리랑 이야기 한 바텐더 이름이 베키에요. 대회에 나가서 상도 많이 타고 여기 말고도 다른 바에 컨설턴트 바텐더로 있는 아주 유능한 사람이에요" " 아 그래요? 그쪽은 잘 몰라서." 그녀와 R이 친하다는 사실이 묘하게 거슬렸다. "근데 제니퍼, 그거 알아요? 그냥 혹시나 해서 이야기해주는 건데 베키가 나한테 제니퍼가 엄청 귀엽다는 데요? 아참, 베키는 레즈비언이에요” 그가 내 귓속에 작게 속삭였다. 왠지 모를 설레는 마음과 이상한 안도감이 들었다. "그래요? 아, 그래서 나한테 아까 샷 공짜로 줬구나? 젠장, 가슴이 더 파진 옷을 입고 왔어야 했는데." 입고 온 두꺼운 스웨터의 상의를 펄럭이며 그에게 말했다. 그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나를 쳐다보더니 이내 웃음을 크게 터뜨렸다. 그로부터 두 달 후, 우리는 연인이 되었다.


우리는 약 8개월간을 사귀었고, 어쩌면 내 생애에 가장 롤러코스터 같았던 연애를 했다. 대학교 때 이후 이런 감정 소모적인 연애는 처음인 거 같았다. 둘 다 성격이 불같았고 어느 한쪽도 지려고 하지 않았다. 둘 다 너무 바쁜 것도 문제였다. 특히나 승진과 함께 이직을 한 지 얼마 안 된 그는 더더욱이 바빴다. 보통 아침 8시에 출근해 저녁 6시가 되기까지 점심시간도 제대로 갖지 못한 채 일을 했고, 이후 짧게 운동을 다녀오고 저녁을 먹고는 보통 자정이나 새벽 1시까지 뉴욕 본사와의 백투백(back-to-back,  끊임없이 이어지는) 콜을 하고는 했다. 일주일에 제대로 볼 수 있는 때는 금요일이나 토요일 하루(그는 일요일에도 자발적으로 회사를 나갔다), 제대로 만나지 못하는 상황에서 오해와 그에 기분 상한 감정까지 쌓여 어느 순간부터 얼마 만나지 못하는 그 마저도 싸우기만 하는 시간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아니다, 바빠서 헤어졌다는 건 핑계다. 우리가 잘 맞지 않았다는 건, 그리고 이 사람과 헤어져야 한다는 건 사귄 지 두 달여 정도 되었을 때부터 알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 어느 쪽도 헤어지자는 말을 하지 못했다. 아니 헤어지자는 말이 나오고 나서도 2~3일 후면 어영부영 다시 만나고는 했다.


크리스마스 날의 만남 이후 종종 어울려 노는 친구로 지내다 우리가 급속도로 가까워진 건 그 후로 한 달여 뒤, 우연한 기회로 서로의 과거의 이야기를 하면서부터였다. 그는 런던에서 3년여를 사귀다 홍콩으로 이직을 해 오며 헤어진 연인이 있었다. 그는 그녀가 그와 함께 홍콩으로 옮겨 오기를 원했고, 그녀 또한 이에 홍콩에서 직업을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을 했으나 결국 실패를 하고 런던으로 돌아갔다고 했다. 그러다 그녀는 그녀를 곁에서 위로해 주던 친구와 눈이 맞게 되었고,  애석하게도 그는 R의 친구이기도 했다. 그로부터 1년 후 그들은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졌다. 여자 친구와 자신의 친구에게 배신을 당했다 생각한 그는 나를 만나기 전까지 어떤 여자도 사귀지 않았다 했다. 나를 만나던 초반에도 가끔 그녀가 좋아했던 노래가 나올 때면 아주 슬픈 표정을 짓거나, 갑자기 집으로 가야겠다며 히스테릭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나에게는 2년간 사귄 이가 있었다. 정식으로 프러포즈를 하지 않았지만 언제인가부터 미래를 함께 계획하던 사람이었다. 그의 부모님이 홍콩에 오셨을 때 우리는 다 함께 만나게 되었고, 잘 지내보고자 했던 나의 바람과는 달리 그의 부모님은 나와는 전혀 맞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이미 내가 그의 여자 친구인 것 자체가 맘에 들지 않는 분들이셨다. 자신의 아들이 아시아에서 만난 여자가 자기 아들의 런던으로의 귀국길을 막고 있다 생각하시는 분들이었다. 서운해서 그러겠지, 그들의 말도 안되는 행동을 참아보려고 했으나 결국 이런 갈등은 나와 그의 부모님 간의 싸움으로 번지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부모님이 아무리 비이성적일 지언정 부모 자식의 연을 끊을 수 없다 했다. 그래서 지금 나보고 어떻게 하자는 거냐는 말에 그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헤어지자고 했다. 그 후 그, 나, 모두 아주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는 헤어지고 매일을 미안하는 메세지를 보냈다. 매일을 울었다. 회사 화장실에서 하도 울어 당시 같이 일하던 팀장님이 집으로 가라고 한 적이 있을 정도로 반쯤 정신을 놓고 회사를 다녔다. 그 이후 6개월 뒤 나는 그를 길에서 마주쳤다. 두 눈이 마주치는 순간 동시에 그와 내 눈에 눈물이 찼다. 갑자기 우두커니 선 그 뒤로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이냐는, 걱정하는 듯한 눈빛의 여자가 보였다. 난 그 날 그의 전화번호를 지워버렸다.


너무 어메이징 하지만 또 날 사무치도록 외롭게 했던 홍콩에서의 삶. 그렇게 힘들었으면서도 아직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 뛰게 하는 홍콩의 매력은 도대체 뭘까?

아직까지도 과거의 망령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우리는 외로웠던 것 같다. 외로웠고, 그래서 곁에 누가 필요했던 것 같다. 전혀 기대도 하고 있지 않던 사이 우리는 어느 크리스마스날 서로가 서로의 인생에 나타나게 되었고, '친구'라는 이름으로 어느 순간 서로의 삶의 한 부분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연말연시가 주는 들뜬 분위기는 이에 기름을 붓는 역할을 했다. 그리고 이 것이 제대로 된 감정인지, 우리가 서로에게 맞는 사람인 지 확인하지도 않은 채, 그리웠던 안락함을 찾아 서로를 찾았던 것 같다. 당연히 잘 될 리가 없었다.


지금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리고 한숨부터 나오는, 서로가 서로의 최악의 모습으로까지 끌어내리게 한 무수한 배틀들을 몇 달간이나 지속하고 나서야 우리는 인정했다. 우리 사이에는 더 이상 미래는 없다는 것을. 그와 헤어지고 마음의 평화가 찾아왔다. 아쉬움보다는 이상한 안도감. 이제 다 끝났다, 홀가분하다 라는 느낌. 어쩌면 우리는, 전 상대에게 해야 했던 화와 분풀이를 엉뚱하게 서로에게 하면서, 또 이상하게 그 과정 속에 각자 치유가 되었었던 것 같기도 하다.


헤어지고 6개월 여 동안 서로 연락 한 번 하지 않았다. 6개월 정도 후 그에게 문자가 왔지만 바로 지워버렸다. 그와 헤어지기 전 했던 무수한 다툼에서 나왔던 비수와 같은 말들로 받은 생채기들이 아직 여물어지지 않았고, 이를 다 이겨내고 드디어 안정감을 찾은 내 생활을 다시 깨고 싶지 않았다. 고되었던 전 직장에서 나와 갓 이직을 한 때이기도 했다. 새 직장, 새 출발, 새 마음가짐. 과거의 모든 힘들었던 기억은 잊고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마음이 강했다. 그리고 아주 신기하게도, 일부러 그를 피해 다닌 것도 아닌데 그 좁디좁은 홍콩의 어느 곳에서도 그를 마주치지 않았다. 꼭 그 누군가가 너네는 아직 다시 만날 때가 아니야, 라며 서로의 길에 장막을 쳐 주는 듯이.


가끔씩, 그에게 미안하다는 그리고 자신의 말과 행동을 반성한다는 기나긴 장문의 문자들이 간간이 왔지만 답장을 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읽고 지우기를 5번, 어느덧 다시 크리스마스가 돌아오고 있었다. 새 회사도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고, 간만에 좀 여유로운 날이라 회사 휴게실에서 커피 한 잔을 내려 휴식을 취하던 때 그에게 또 한 번의 메세지가 왔다.


'아까 점심시간에 퍼시픽 플레이스(Pacific Place, 시내 중심에 있는 쇼핑몰)에 있었어? 샐러드 사가는 거 같던데. 날 봤는데 무시하고 가는 건지 못 본 건지 확실하지가 않아서 아는 척 안 했어. 잘 지내?'


구구절절한 내용 없이 조심스럽게 내 안부를 물어보는 그의 문자에 갑자기 이상하게 가슴이 찡한 느낌이 들었다. 답장을 보낼까 말까 살짝 고민을 하다 답장을 했다.


'오늘 몇 시에 끝나? 끝나고 커피나 한 잔 마실래?'


헤어진 지 1년 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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