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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아온 Apr 25. 2020

결핍의 존재, 나의 가족

결핍과 결핍의 만남으로 무언가를 기대하긴 힘들다


결핍과 결핍의 만남으로 무언가를 기대하긴 힘들다. 

어릴 적부터 새엄마의 차별을 받은 여자는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무엇인가를 하기보다는, 새엄마에게 혼나지 않기 위해 언니가 어지른 방을 치우고 아침 일찍 일어나 동생들과 자신의 도시락을 챙기며 유년 시절을 보냈다. 여자는 유일하게 공부에서 만족감을 느꼈다. 고등학교 생활의 중반이 지나서야 시작한 공부지만 여자의 머리를 꽤나 좋은 편이었다. 좋은 성적을 가지고 여자는 진로를 정할 때 조차도 엄격한 아버지에 의해 자신의 꿈을 접으며 교육자의 길을 선택했다. 여자에겐 진정한 가족애와 자신이 원하는 무언가를 할 수 없었던 결핍이 있었다. 

모부의 이혼으로 형제들과 떨어져 할머니와 유년시절을 보낸 남자는 어릴 적부터 할머니를 도와 농사를 짓고 장에 나가신 할머니를 홀로 기다리는 날이 대부분이었다. 남자의 유일한 행복은 주일에 교회에서 찬양을 부를 때, 사람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칭찬하는 그 순간이었다. 어릴 적부터 따로 지냈고 어느 것 하나 지원해 준 적 없는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성악의 길을 선택했지만, 현실의 벽을 높았고 그에게는 여전히 자신을 인정해 줄 타인과 모부의 사랑에 대한 결핍이 존재했다. 

이러한 여자와 남자의 만남은 서로의 결핍을 잠시나마 채워주는 것 같았지만, 그들의 결혼에서의 행복은 사치와 같았다. 

여자와 남자의 첫 아이는 그 탄생부터 결핍의 존재였다. 백혈구에 암세포가 생겨 그 기능이 저하되는 병, 백혈병을 껴안은 채 태어난 첫 아이는 여자에게나 남자에게나 처음인 결혼생활, 모부의 역할을 맡은 채 떠나는 배에 생겨난 구멍과도 같았다. 한 사람은 열심히 노를 젓고 한 사람은 배로 들어찬 물을 계속해서 퍼내도 배는 좀처럼 속력을 내지도, 가라앉기를 거부하지도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와 남자는 자신의 아이를 사랑했다. 배에 난 작은 구멍을 너무나도 작고 소중해서, 그들의 여정에 함께하는 동반자와 같아서, 그들은 손에 쥔 노를 놓치지도, 퍼내는 손을 멈추지도 않고 계속해서 사랑하고 노력했다. 

여자와 남자의 이러한 사랑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배에 난 구멍은 점점 커져 배를 잠식하게 하더니, 결국엔 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부서졌다. 여자는 목을 놓아 울었고, 남자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여 우는 여자를 위로해주지 못했다. 작은 구멍은 천사가 되어 하나님의 곁으로 가겠다는 말을 남기곤 떠나버렸다. 5년의 여정이었다.


여기까지 나의 엄마, 아빠, 그리고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세상을 떠난 나의 오빠의 이야기이다. 


오빠가 한참을 병과 싸우고 있을 때 나의 언니가 태어났다. 오빠의 나이 2살일 때의 이야기이다. 태어난 것을 축하받기도 모자랐지만, 오빠의 병은 언니가 오롯이 사랑받기를 내버려 두지 않았다. 언니가 태어난 후에도 오빠는 계속해서 병마와 싸웠고, 언니는 유년시절 응당 받아야 할 모부의 관심을 충족하게 받지 못했다. 

오빠가 세상을 떠난 후 엄마 아빠의 관심이 이제야 언니에게 돌려질 무렵 내가 태어났다. 모부 님의 관심을, 밀접한 사랑을 받을 그 타이밍이 언니에게는 결국 돌아가지 못한 것이다. 내가 태어날 무렵 엄마와 아빠는 더욱더 우리 네 식구를 위해 맞벌이를 하셨고, 특히 아빠는 예술이라는 이름 아래 밤낮 없는 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감히 짐작하건대, 오빠가 세상을 떠나고 난 후 내가 태어났기 때문에 당신의 마음에 지닌 죄책감과 슬픔을 나에게 쏟아붓는 사랑으로 잊으려 하신 것 같다. 그렇게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을 유년기에 받지 못한 모부의 관심은 언니가 성인이 된 지금에서도 결핍으로 남아있다. 

특히 언니와 아빠와의 관계에서 그 결핍은 두드러진다. 언니가 진로를 아빠의 직업과 비슷한 방향으로 잡고, 성인이 된 후에야 그 어색함이 조금은 사라지긴 했지만, 여전히 언니와 아빠는 겨우 잡은 이 안정기를 깨지 않으려 조심하는 모습을 볼 때에는 엄마는 아주 많이 슬퍼하신다. 잠깐 분위기를 전환하자면, 아빠와 언니의 성격은 신기할 정도로 비슷해서 가끔 엄마와 내가 둘의 모습을 보며 웃는 날도 많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오빠가 세상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원인이 오빠가 세상을 떠난 후 태어난 나에게도 발견되었다. ‘우리에게 다시 돌아온 아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나에게 그와 같은 결핍도 같이 돌아온 것 같았다. 같은 병은 아니었지만 심장의 피를 돌게 하는 판막에 구멍이 뚫려 자칫하면 피가 역류할 수도 있는 위험한 병이었다. 내 기억으로는 5-6살 때까지 일주일에 한두 번 병원을 가서 호흡기 같은걸 쓰며 검사를 맡았고 다행히도 점점 커질 거라던 판막의 구멍을 점점 좁아져 막히게 되었다. 다시 재건한 엄마와 아빠의 인생이라는 배에 또다시 난 구멍이 그들의 사랑과 기도로 안전하게 막힌 것이다. 

병이 나았다고 해도 나의 결핍은 그 흔적을 남겼다. 남들보다 체력이 약하고 조금만 무리하면 숨이 가빠 져서 엄마 아빠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아직까지도 5년에 한 번씩은 검진을 받아야 하고 밤낮 없는 진로를 결정한 탓에 그 걱정이 날로 늘어가고 있는 중이다. 

나의 결핍은 타고난 신체적 결핍에서 끝나지 않는다. 내가 막 개념을 인식하고 대인관계와 세상을 이해할 무렵인 초등학교 입학 즈음부터 고학년이 되기까지 집안의 사정이 아주 많이 안 좋아졌다. 물론 지금도 계속해서 빚을 갚고는 있지만 그때는 상황이 아주 심각했다. 나의 동생까지 5명의 가족이 13평 정도 되는 반지하에서 3년 정도를 살았다. 전기가 끊기는 것은 물론이고 가스, 물도 끊기고 집으로 빚 독촉 전화를 내가 받을 때도 종종 있었다. 맞벌이를 하시는 엄마 아빠는 나와 동생을 학원 종일반에 맡기셨지만 결국 학원비를 낼 돈도 없어지자 나는 학원을 갈 수 없게 되었다. 모두가 나가버린 아침 동생을 챙겨 아직 문을 열지 않은 유치원 문 앞에서 선생님을 기다리고, 선생님이 오시면 동생을 맡기고 학교를 등교하는 생활에 익숙해질 무렵 그나마 집안 사정이 나아졌다. 이러한 돈에 대한 결핍은 나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 전체에게 있는 결핍이다. 


이제 마지막인 나의 동생에 대한 이야기이다. 오빠와 언니, 그리고 나의 결핍과 달리 동생은 태어날 때부터 가진 지병도, 집안 사정으로 인해 생긴 부족함도 없었다. 공주풍의 옷, 장난감, 배우고 싶은 것을 다 배울 수 있는 학원까지, 엄마와 아빠는 나와 언니에게 해주지 못한 것을 동생에게는 다 해주고 싶으셨던 것 같다. 하지만 9살이 된 동생이 어느 날 밤 숨이 잘 쉬어지지 않는다고 하여 응급실에 가게 되었는데, 그때의 진단은 후천적 천식으로 내려졌다. 또다시 그들의 배에 금이 간 것이다. 동생이 성인이 된 지금은 거의 증상이 나타나지 않고 있지만 동생이 9살이 될 무렵 생긴 금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나의 가족은 결핍의 존재들이다. 지금까지의 결핍이 끝이라는 보장도 할 수 없을뿐더러 존재하는 결핍조차 그 부재가 채워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엄마와 아빠의 결핍은 그들이 가진 사랑으로 날카로운 결핍의 자리를 조금은 무디게 만들어 주고 있으며 언니와 나, 동생의 결핍은 그들이 채워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그 빈자리를 채워 물이 새어 나오지 않게 하는 중이다. 옛날엔 사랑을 받기만 했단 우리 자식들도 지금은 표현하는 사랑으로 그들을 채워주고 있음을 믿는다. 


이제는 엄마와 아빠의 배가 아닌 우리 5명 모두가 한 배를 타고 있다. 부서졌다가 다시 붙인 배는 사이사이에 금도 가있고 구멍이 났던 흔적이 보이지만 5명의 노력으로 천천히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남은 시간 동안 다시 구멍이 생겨나 물이 차오를 수도 있지만, 이제는 그 물을 퍼낼 수 있는 손이 3명이 더 있으며 거센 바람으로 배가 밀려날 때 노를 저을 수 있는 손도 3명이나 더 있다. 그리고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언제든 배를 고칠 수 있는 튼튼한 접착제 또한 존재하기에, 앞으로 계속해서 나아갈 수 있다고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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