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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돌아온 Apr 25. 2020

특별하지 않다는 것-1

그 사실을 인정하기까지의 이야기

23년의 인생 중 반 이상은 내가 특별한 존재라고 믿어왔다. 드라마나 영화, 로맨스 소설의 주인공처럼, 또는 트루먼 쇼의 트루먼처럼, 내가 알지 못해도 남들은 항상 나에게 주목하고 바라보는 줄 알았다.
 
  그 이유로는 세 자매 중 둘째로 태어나 중간에 끼인 채 부모님의 관심을 얻으려는 본능적인 이유도 있을 것이고, 부모님의 직업의 특성상 외부인과의 접촉이 빈번한 탓에 어릴 적부터 감독님, 연출님, 선생님의 딸로 자라와 관심받는 존재라는 것의 희열을 느끼며 자라온 이유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끝나지 않은 것 같은 사춘기를 미성년의 시절 겪어 오면서 나는 내가 특별하지 않고 작품 속 주인공이 아닌 주인공 뒤에 지나가는 행인 1 정도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떠한 계기로 인해 나의 세상이 무너진 것일까? 나의 유년시절을 기억나는 대로 되짚어 봐야겠다.
 
  그 계기는 5학년 여름방학이 끝난 후 새로운 학교로 전학을 간 그 날. 복도에 서서 교실 안에 있는 아이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애쓰며 선생님을 기다릴 때 느꼈던 그 생경한 수치심, 짜증남, 불안함이 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동아줄처럼 잡고 있던 친구들과의 관계가 틀어져 공포를 느꼈던 6학년 말. 그리고 전학 간 학교에서 5-6학년 내내 나를 괴롭혔던 남자애들. 지나가면 일부러 어깨를 치고 가고, 욕을 하고 그 당시에는 부모님보다 무서웠던 6학년, 중학생 언니 오빠들을 통한 협박들은 그때의 나를 쪼그라들게 만들었다.
 
  오랜만에 초중고등 시절을 생각하니 분화 수처럼 기억이 떠오른다. 맞아 나는 괴롭힘을, 혹은 미움 비슷한 것을 거의 삼 년간 받아왔다. 생각난 김에 몇 가지를 더 써봐야겠다.

  중학교에 입학하며 조금은 나아진 괴롭힘. 아마 그들도 어느 정도는 머리가 컸기 때문일까. 하지만 여기서 어느 정도 하는 건 아직도 머리가 콩알만 한 아이들도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하굣길에 나를 싫어하던 타학교(나를 싫어하는 아이들의 범위는 옆 학교로 점점 넓어져 갔다. 지금 생각하면 웃긴 일이다 그들은 나를 괴롭힘과 동시에 거의 무한한 관심을 지속적으로 준 것 아닌가?) 아이가 무려 자기보다 두 살이나 많은 형! 중학교 삼 학년 형과(중학생은 맞는데.. 사실 잘 기억이 안 난다) 친구들을 데리고 내 하굣길 중간에 딱 나타난 것 아닌가(생각하다 보니 너무 웃기다. 그들은 나의 등하굣길을 관찰해왔다)    

그때만큼 양가성을 띈 나의 내면의 세계를 마주할 기회가 또 있을까? 극심한 공포와 더불어 웃겼다. 왜 웃겼지? 형을 앞에서 뒤에서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는 그 아이의 표정이? 아니면 나대지 말고 다니라는 그 형의 말에 '그냥 학교 다니는데 그걸 나댄다고 하면 뭐 어쩌라고 나보다 키도 작은놈아'라는 생각을 한 나 자신이? 모르겠다. 어린아이가 느끼는 본능적인 공포와 이게 막 커가는 머리에서 오는 이성의 목소리가 동시에 들렸기 때문일까. 
  지금은 저 친구들은 뭘 할까? 저랬던 것을 기억이나 할까?라는 의문도 의미가 없어진 지 오래이다. 그래도 만약 지금의 내가 저 때로 돌아간다면 쪼꼬만 것들이 14살의 나를 겁주냐! 정도밖에 말하지 못할 것 같다.
  

 여하간, 이러한 괴롭힘의 대상이 돼보면, 초반에는 그 이유를 내 안에서 찾는다. 내가 뭘 잘못했지? 왜 그럴까?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생각은 꼬리를 문다. 
  그들은 나를 나대고 깝죽거린다고 싫어했다 - 그러나 지금 당장의 나는 여전히 나대고 깝죽거리고 다닌다 - 그렇다는 건 이 성격은 나의 고유한 성격이다 - 그렇다면 그들은 자연 그대로의 나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 아닌가? - 그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 무의미한 일에 애를 쓰는 그들을 무시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이러한 나름의 논리적인 이유를 찾는 그 과정이 내가 '특별하지 않음'을 깨닫게 해 준 것일까?
 
   다음으로는 친구들과의 관계도 영향을 주었을 것 같다.
  초등학생 때부터 타인의 괴롭힘에도 불구하고 항상 붙어 다니는 친구는 있었다. 물론 지금은 그중 한 명하고만 연락하며 가장 친하지만 그때는 소속감을 느끼게 해 주는, 어쩌면 학교보다 더 나를 안정감 있게 해주는 존재였다. 학교는 오히려 나를 더 불안하게 했지. 물론 그 네 명의 관계도 그리 수평적이진 않았던 것 같다. 몇몇은 괴롭힘을 당하는 나를 서열의 마지막으로 생각하고 그렇게 대했던 기억(이라기 보단 그때 느꼈던 감정)이 있다. 
  초등학교 때부터 유지된 이 네 명의 관계는 중학교에서 들어와 자연스럽게 흩어지고 그중 한 명과의 관계만 더 깊어지며 지금까지 유지 중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착한 그 친구는 거하게 치인 사춘기로 인해 뾰족하게 모났던 나의 인생의 흑역사 시절을 견뎌 준 정말 심성이 착한 친구이다. 
 
  이러한 나의 초, 중학교 시절의 친구들과의 관계는 나의 자존감을 낮아지게 했던 것 같다. 동시에 인간관계에 대한 기술은 높아졌겠지. 이렇게 정리해보니 답의 윤곽이 보이는 것 같다. 그래, 폭풍 같은 초, 중학교 시절의 인간관계가 '특별하지 않음'을 깨닫게 하는 계기 중 하나였다. 남과 나를 비교하고 나의 단점을 스스로 깨닫게 되고, 자존감이 낮아짐과 동시에 나 이외의 타인이 관심받고 주목받는 것을 보며 나의 세계는 조금씩 무너져 왔던 것이다.
 
  금방 답을 찾을 줄 알았는데 중학교 시절까지만 되짚어봐도 그때의 나는 참 많은 일을 겪었구나. 오늘은 여기까지만 적어야겠다. 다음에 또 생각이 나면 아마 고등학교, 대학교 시절을 꺼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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