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뱅이의 다짐 한 번 더
글을 쓰고 싶다고 말하며 기웃기웃 거리는 나에게 친애하는 작가 누님께서 책을 선물로 주셨다. 약속이라도 한 사람처럼, 뭐라도 쓰기 위해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한다.
무엇을 써야 하지?
여러 가지 일들에 관심이 많았고 그런 내 생각을 드러내기에 글쓰기보다 좋은 수단은 없었던 것 같다. 말하기를 좋아하고 말도 많은 사람이지만, 말이란 것은 주어 담기 어렵고 가끔 미친 듯이 떠들다가 내가 뭔 소리를 하고 있는지 쉽게 방향을 잃어버리기도 하기 때문에 다시 읽어볼 수도 있고 뒤늦게 생각을 뜯어고칠 수도 있다는 점에서 글쓰기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참으로 안전하고 차분한 말하기의 방법이 된다.
과거를 떠올려 보았다.
싸이월드에서 시작된 공개적인 글쓰기는 당시의 나에게는 불가피하게 선택된 나를 드러내는 도구였다. 디지털 세상이 막 열릴 즈음이었기에 디지털카메라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흔하지 않았고 내가 나온 사진 한 장이 귀했다. 내가 올릴 수 있는 이미지는 남이 찍어준 내 사진 혹은 인터넷에 올라온 유명인 또는 유명한 물건들 뿐이었기에 그러다 보니 나는 나의 정체성을 다른 사람 혹은 다른 사람의 작품에 대해 글을 쓰면서 마치 그것이 내 것인양 끄적거리고 있었다. 뒤돌아 생각해보니 그렇다는 얘기다. 당시엔 별다른 생각도 없었다. 그냥 좋아서 그러고 있었다.
나는 언제든 노트와 팬을 가지고 다니면서, 틈나는 대로 뭔가를 끄적거렸다. 다시 보면 손발이 마구 오그라들게 되는 허세의 결정판 같은 그런 내용으로 가득 찬 노트가 여기저기 굴러다니며 놀림감이 되기 딱 좋은 습관인데도 나는 여전히 그러고 산다. 대부분은 매우 개인적인 기록이어서 남이 보는 게 부끄럽지만 잠재적으로 누군가에게 공개될 것을 늘 염두에 두고 글을 쓴다. 작가 본능, 혹은 나중에 내가 유명인이 되어서 유명을 달리한 뒤에 나의 일기장 같은 것이 발견되어 사람들에게 공개되는 것을 생각하는 일종의 과대망상일 수도 있겠다.
아무튼 간에
작은 시작점을 마련하기 위해,
뭐라도 쓰다가 진짜로 소중한 무언가를 쓸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가지고,
다시 써 보겠다.
누가 본들 어떻고 혹은 아무도 보지 못한 들 어떠한가.
서두에 선물로 받았다는 그 책에는 글 쓰는 것이 자기를 일으켜 세우는 힘이 되었다는 작가의 고백이 쓰여있다. 나는 깊이 공감하였다. (책의 제목은… 어떻게 쓰지 않을 수 있겠어요 - 이윤주)
타자와의 관계 유무는 사람에게 생명이 있고 없음의 기준과도 같은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글쓰기는, 물리적인 인간관계에 대한 각 사람의 반응과 상관없이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좋은 도구라고 할 만하다.
농구도 쓰고 음악도 쓰고 가끔 진심으로 뭔가를 느꼈을 때는 책이나 영화에 대해서도 쓰고 그렇게 생각을 나누고 교감한다면 지금 인생이 재미가 없어 보인다는, 어떤 심리 상담가가 최근 나에게 내렸던 진단에 대한 좋은 치료제도 되리라 믿어본다.
나는 늘 정답 같은 얘기를 하면서도 그게 내 삶에 답이 되어 본 적이 있는지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은 정말로 답이 되어야만 한다. 절실하다. 그래서 쓸 것이다.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두고 보아야 하겠지만...이라고 말하며 아직도 게으름 피울 여지를 두고 있지만... 힘을 내어 보겠습니다.
2022년 어느 날 썼던 글-또또또 게으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