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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옹의 이방인 Aug 30. 2020

피, 정액 그리고 플룻

삼비아의 성인식을 통해 알아보는 젠더와 인류학

8-90년대 생들은 《란마 1/2(이분의 일)》이라는 추억의 애니메이션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주인공 란마는 전설의 수련장에서 무술을 연마하던 중, 한 소녀가 익사했다는 '낭익천'이란 연못에 빠진다. 연못의 저주로 인해 찬물이 닿으면 여성의 몸으로 변하게 된 란마, 그(녀)가 다시 남자로 돌아오려면 뜨거운 물에 닿아야 한다. 이러한 설정을 토대로 이 작품은 남/녀 두 모습을 오가는 주인공이 저주를 풀려고 고군분투하는 에피소드를 풀어간다.


본성인 남자 란마(위)와 저주의 결과인 여자 란마(아래).


비록 러브 코미디물에 살짝 얹은 토핑 수준이라도 80년대 소년 만화에 성전환이란 소재를 사용한 것은 지금 기준으로도 꽤 파격적이다. 작중 성 정체성에 대한 주인공의 진지한 고찰은 거의 없지만 불편해하던 브래지어를 직접 사러 가게 된다든가, 여성인 상태의 미모를 남자들에게 어필한다든가 하는 장면들을 통해 주인공이 이성의 몸과 마음에 적응해가는 모습을 보는 것도 흥미로운 요소이다. 그도 그럴 듯이, '다른 성으로 사는 것'은 인류가 오랫동안 해소하지 못한 궁금증이기 때문이다.


물론 란마와 같은 생물학적 성전환은 현실에서는 아직 불가능하다. 현대 의학으로는 신체의 형태만 바꿀 수 있을 뿐, 한 인간의 타고난 성(sex)을 바꾸려면 염색체를 완전히 갈아엎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타고나지 않은 성(gender)의 경우엔 어떨까? 인류학 시식코너를 쓰면서 종교와 함께 가장 다루기 곤란한 테마라고 생각했던 '젠더', 그 판도라의 상자를 조심스럽게 열어보자.



완전한 존재에서 불완전한 존재로


매번 언급되는 인류학자들의 황금어장, 멜라네시아로 가보자. 파푸아 뉴 기니의 선주민인 삼비아 Sambia 부족은 매우 특이한 성인식을 치르는 것으로 유명하다. 6살에서 10살 사이의 삼비아 남자아이는 어머니의 품에서 빠져나와 한 명의 전사가 되도록 교육받는데, 그 방식이 현대인의 시각에선 상당히 강압적이며 또한 폭력적이다. 우선 어른들은 성인식을 치르게 된 아이를 물가로 끌고 가 날카로운 막대기로 콧구멍을 뚫어버린다. 코의 통증과 피의 두려움으로부터 달아나려는 아이에겐 더 큰 고통이 기다리고 있다.


진짜 전투민족 삼비아인.


본론은 피를 본 이후부터이다. 주위를 둘러싼 부족민들의 플룻 연주 속에서, 성인식의 주인공은 구강성교(!)를 통해 다른 남성의 정액을 마셔야 한다. 정액을 제공하는 상대는 보통 같은 집단의 성인 남성으로, 주로 형이나 삼촌 등 먼저 성인식을 치른 어른이 이 역할을 맡는다. 배경지식이 없는 사람들에겐 언뜻 동성애 문화로 보일 수 있지만 이 행위는 결코 성적 흥분이나 쾌락을 위한 것이 아니다. 아이에게 남성성을 부여하여 온전한 전사로 만드는 것이 삼비아 성인식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아이가 가지고 있는 여성성을 제거하고 남성성만을 남기는 상징적 의식이다.


우리 눈에 다소 폭력적이고 비정상적으로 보이는 일련의 의식들은 여성성/남성성에 대한 삼비아 사회의 독특한 인식에 기인한다. 삼비아인들은 성인식을 치르기 전까진 아이가 아버지의 성질과 어머니의 성질을 모두 가지고 있다고 여긴다. 그게 남자아이일지라도 어머니의 젖을 먹고 자라는 과정에서 어머니로부터 여성성을 받았기 때문이다. 남성성과 여성성을 모두 가진 상태, 삼비아인들에게 이것은 '완전한' 상태이다. 하지만 홀로 완전한 존재는 짝을 만나 생식을 할 수 없다. 그래서 앞서 말했듯 남자아이에게서 '여성'을 빼내서 불완전한 상태로 만들고, 자신의 부족한 부분인 여성을 찾아 서로 합칠 수 있게 만든다.


코를 뚫어 피를 흘리게 만드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그들의 문화에서 피는 여성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이후에 이어지는 동성 간의 구강성교와 정액 흡입은 여성성을 빼낸 자리에 남성성을 채워 넣는 주술적 행위이다. 의식의 배경 음악을 깔아주는 플루트는 어머니의 젖꼭지와 남자의 페니스를 동시에 상징한다. 플루트 소리를 들으며 성인식의 주인공은 자신에게서 여성성이 빠져나가고 남성성이 주입됐다는 것을 이해한다. 삼비아 아이의 생물학적 성은 처음과 다르지 않지만, 그의 사회적 성은 양성(cross-sex)에서 남성으로 바뀐 것이다.



제품 설명 : 젠더 스터디 (Gender studies)


젠더는 섹스처럼 둘로 나뉘는 게 아니다.


20세기 중반에 들어서며 산업화와 근대화의 영향으로 여성의 사회 진출이 가속화되면서 학계에도 강력한 여풍(女風)이 불었다. 여성 학자들은 그동안 남성의 입장과 관점에서만 서술됐던 '성'에 대한 편파적 통념에 이의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특히 6-70년대 영국의 인류학계를 중심으로 발전한 '여성 연구 (Women studies)'는 두 성별 집단의 관계를 학문적으로 해석하려 시도했고, 이론적 분석과 민족지학적 관찰을 제안하며 주목을 받았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여성 연구는 더 고차원적인 해석을 위한 '젠더 스터디 (Gender studies)'로 발전한다 (Bonnemère : 162).


인류학에서도 젠더는 가장 뜨겁게 다뤄지는 테마 중 하나이다. 문화의 상대성과 다양성을 중요시하는 학문답게 여러 장소에서 관찰되는 다양한 성(性) 문화에 주목하며 일찌감치 성의 사회성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가령 영국의 여성 인류학자 마릴린 스트라던 Marilyn Strathern은 위에서 설명한 삼비아의 성인식을 포함한 여러 문화를 비교 연구하여 남성성/여성성이 태생적 특성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 속에서 후천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임을 주장했다 (《The Gender of the Gift》, 1988).


게임하는 여자와 집안일하는 남자는 이상한 것일까?


인류학의 젠더 연구는 특히나 문화인류학의 근간이 되는 반성과 성찰의 의식에 맞닿아 있다. 인류학이 타파하고자 하는 근대주의적 관점의 하나가 바로 성역할이기 때문이다. 남성과 여성이라는 이분법은 그 자체로는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이러한 생각이 생물학적 구별에서 멈추지 않고 사회문화적 고정관념으로 발전돼 왔음을 인류학은 지적하고 있다. 이런 고정관념이 우리 사회에 투영되어 나타나는 것이 남녀 갈등, 고부갈등, 동성애 혐오, 아웃팅 등의 사회적 폭력이다. 그동안 말 못 할 고민들을 안고 살아온 사람들을 보듬으려면 우리 사회가 젠더의 다양성을 더 이해하고 존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 당연하게 여겨온 구분이 꼭 당연하진 않다는 것을 깨닫는 것부터가 진정한 다양성의 시대를 여는 시작일 것이다.



부록 : 아군이냐, 적군이냐!


젠더라는 테마에 쏟아지는 학계의 관심과는 별개로, 이러한 흐름에 많은 영향을 준 페미니즘과 인류학 사이에는 미묘한 거리감이 있다. 그래서 스트라던은 둘 사이의 관계를 '엉성하다'라고 표현한다. 이러한 의견을 설명하기 위해선 페미니즘이 ―동의 여부나 가치판단을 떠나서― 하나의 '사상'이라는 점을 조심스럽게 짚고 넘어가야 한다. 사상이란 것은 확고한 관점과 방향성을 토대로 하기 때문에 강한 주관성을 띄고 있으며 그 목적은 대상을 비판하거나 계몽, 혹은 바꾸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학문은 대상에 대한 이해와 통찰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연구할 대상이 변질되어선 안된다. 또한 인류학은 단순 관찰이 아닌 관찰자가 연구 대상 (이 경우, '현지'라고 부르는 조사 현장과 사람들)에 매우 가깝게 다가가며 이해와 공감을 얻는 연구 방식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페미니즘이 환영하는 것은 외부의 관찰자가 아니라 같은 뜻을 나누는 동지이다. 이에 대해 스트라던은 '사회과학 분야에서의 페미니스트적 사고방식은 여성 외 누구도 여성의 자리를 언급할 권리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라며 학문과의 양립을 어렵게 만드는 페미니즘의 태도에 우려를 나타냈다 (Strathern : 288). 


국내에선 비교적 최근에서야 페미니즘이 대중적으로 알려지게 되면서 사회적으로 크고 작은 담론들이 오가게 됐다. 하지만 "모르면 공부하세요"하는 식으로 응대하는 경우가 종종 생기다 보니 받아들이는 쪽(기성 사회)과 소모적인 감정 싸움으로 번지곤 하는 모양새이다. 한 세기 동안 많은 굴곡을 겪어온 페미니즘이 앞으로도 성평등을 실현하고 젠더 소수자들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선 스트라던의 지적을 곱씹어 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참고 자료 :

_BONNEMÈRE, Pascale. Chapitre 8. Petite histoire des études de genre dans l’anthropologie de l’Océanie. In :  Les sciences humaines et sociales dans le Pacifique Sud : Terrains, questions et méthodes. Marseille : pacific-credo Publications, 2014, p. 161-179.

_Strathern, Marilyn (1987). An Awkward Relationship: the Case of Feminism and Anthropology. Signs 12:276-292.

_Herdt, Gilbert. Ritualized Homosexuality in Melanesia.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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