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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옹의 이방인 Oct 19. 2020

코로나를 마주하는 프랑스의 모습에 대한 단상

à propos de la France pandémique

현지 기준 10월 15일 저녁, 프랑스의 일일 신규 확진자는 기어이 3만 명을 넘어섰다. 유럽에 전염병이 창궐하기 시작했던 3월 경, 먼저 출발한 이웃 국가들과 치열한 순위 경쟁을 펼쳤던 프랑스는 팬대믹의 2차 파동에서도 강한 경쟁력을 보여주고 있다. 자유를 최우선의 가치로 두고 있는 나라답게 코로나바이러스도 프랑스 영토를 거침없이 순회하고 있으며 프랑스 정부도 격리 해제, 여행 허용, 각종 행사와 축제 진행 등 전염병의 확산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하고 있다.


이렇게 비꼬아도 전혀 타격감이 없다는 사실이 프랑스 사회의 강한 에고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유학생들이 자주 이용하는 네이버의 한 카페에 누군가 남긴 댓글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프랑스 젊은이들 : 검사를 많이 하니깐 그렇지!
트램 방송 : 우리 모두를 위해 수칙을 지킵시다.
이웃들 : 파티하자!
미래의 뉴스 : 확진자가 너무 늘어 봉쇄를...
프랑스 시민들 : 자유를 달라!


우습지만 이 심각한 상황에서도 언론, 국민, 정부가 각각 따로 노는 프랑스 사회의 현주소를 매우 정확하게 묘사한 것이다. 참고로 프랑스의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은 14일 발표를 통해 토요일 (10월 17일)부터 약 4주 간 '저녁 통행금지 조치'를 취하겠다고 얘기했는데, 위의 댓글은 대통령의 발표 며칠 전에 달렸다. 실로 훌륭한 분석과 예측이 아닐 수 없다.


비판과 이견의 요소가 없진 않겠지만 비교적 일사불란한 방역을 행하고 있는 한국의 입장에선 프랑스의 이러한 중구난방함을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반면에 일일 신규 확진자가 만 명을 훌쩍 넘는 프랑스의 입장에서 겨우 100여 명에 혼비백산하는 한국 사회를 보면 '왜 이렇게 호들갑을 떨지?'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학과 동기가 말하길, 한국에 교환학생으로 간 친구가 하필 거리두기 2.5단계 시기와 겹쳐서 학교를 가지 못하고 있어 매우 화가 났었다고 한다. 그 친구에게는 만 명이든 2만 명이든 학교를 가는 프랑스의 모습이 평범한 것이었을 테니...


사실, 프랑스의 일반 대학은 모두 공립이기 때문에 학기의 정상 진행은 프랑스 교육부의 뜻이다. 학교나 학과마다 대면 수업과 비대면 수업을 섞어서 진행하기도 하지만 수 천, 수 만 명의 학생들이 캠퍼스에 모이도록 결정하는 것은 오롯이 교육부의 소관이다. 개학 시즌인 9월부터 이미 다수의 학교에 확진자가 나오면서 개강 첫 달도 못 넘기고 문을 닫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는데, 문제는 확진자가 나와도 여전히 수업을 진행하는 학교들이 더 많다는 사실이다. 파리의 한 대학 교수는 ‘학교는 전염병 발생 구역이 아니다, 전염병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학교를 닫을 이유는 없으며 이는 교육의 측면에서도 방역의 측면에서도 불필요하다’라며 학기를 정상적으로 진행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개인적으로 이는 다분히 전략적인 발언으로 느껴진다. 물론 교육의 질이라는 측면에서 비대면 수업이 상대적으로 충분치 못하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더구나 대학이 공교육의 일환인 프랑스의 경우, 학교나 교수마다 강의의 퀄리티가 들쑥날쑥하다면 서비스의 불평등이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프랑스 교육 인프라의 현실을 고려했을 때, 충분한 수준의 비대면 강의를 제공할 능력이 대학에게 없다는 것과 인프라(인터넷과 PC의 보급률)의 측면에서 모든 학생들이 비대면 강의를 받게 하기도 어렵다는 것이 실질적인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프랑스 대학들이 이 간극을 메우기 위해 충분한 노력을 했는지는 솔직히 의문스럽다. 3월 중순에 모든 학교들이 문을 닫고 9월 학기를 개강하기까지 약 반년의 시간이 있었는데, 학교로 돌아와서 목도한 캠퍼스의 모습은 전혀 준비돼 있지 않아 보였다. 또한 강력한 이동 제한 조치로 전염병의 확산세가 한 풀 꺾이자 안심한 것인지, 많은 학교 및 학과에서 대면 수업을 우선하는 방향으로 학기를 시작했다. 즉, 비대면 영상 강의는 아예 준비가 안 되어 있고 그럴 플랫폼도 만들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대면 강의를 위한 방역 조치는 제대로 돼 있었는가? 마스크 의무 착용은 그럭저럭 시행되고 있지만 사회적/물리적 거리두기는 엿 바꿔 먹은 듯하다. 대형 강의를 위한 강당이나 일반 강의실 어디에도 거리두기를 위한 조치는 없었다. ‘1미터의 간격을 두고 앉으세요’라는 지침은 학기 시작 전부터 강조하고 있는 부분이지만, 물리적으로 갈라놓지 않으면 학생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수업을 듣기 마련이다. 심지어 다수의 강의는 강의실 수용 인원 50%*를 훌쩍 넘어서 수십 명의 학생들이 살을 맞대고 수업을 듣고 있다. 강당의 경우, 때때로 마이크가 작동이 안 돼서 학생들은 멀리 퍼져 앉을 수 없고, 교수는 소리가 뭉개진다는 항의에 마스크를 벗고 얘기를 한다. 학교는 시설물을 고칠 생각이 있는지, 교수들은 고쳐 달라고 말이나 해봤는지 모르겠다.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 아닐 수 없다.

*방역 조치의 일환으로 교육부가 결정한 방안


그럼에도 현재, 교육부를 포함하여 바이러스 2차 확산에 대한 프랑스 정부의 견해는 ‘사적인 만남’이 집단 감염을 야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학교, 대중교통, 상점 등 공공시설은 마스크 의무 착용과 손 소독제 배치 등 방역 조치가 정상적으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정부의 통제가 미치지 않는 사적인 영역에서 전염병이 번지고 있다는 것이 정부의 의견이다. 마크롱이 발표한 이번 통금 조치도 이러한 분석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는 3월에 있었던 이동 제한 조치를 발표하며 강조했던 ‘개개인의 책임감’이 오버랩되는 부분이다. 그때도 대통령은 정부의 노력에 대한 국민들의 비협조적인 태도를 신랄하게 꼬집은 바 있다. 토요일부터 통행을 제한한다고 하니 금요일 밤에 우르르 몰려나와 파티를 벌이는 시민들의 볼썽사나운 행태는 이번 10월에도 어김없이 반복되었다. 이를 악물고 분노를 삭이며 시민들에게 책임감 있는 행동을 부탁하던 마크롱의 얼굴을 기억하는 사람은 이제 없는 게 분명하다.


그러나 시민들도 할 말은 있다. 3월로 넘어가며 확진자가 속속 나타난 데다 이웃 국가인 이탈리아에서 집단 감염이 제대로 터지자 프랑스 내에서도 걱정스러운 목소리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 시기의 한국도 31번 환자의 등장과 함께 번진 집단감염 사태로 마스크 대란이 일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프랑스 정부는 마스크 무용론을 공식적으로 밀면서 ‘패닉에 빠지지 말라’는 원론적인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하며 방역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이후 코로나바이러스가 전국적으로 퍼지자 그제야 학교와 상점의 문을 닫고 시민들의 이동을 막았으며, 그렇게 두어 달의 시간을 벌어 마스크를 어느 정도 생산할 수 있게 된 뒤 이동 제한을 풀고 마스크 의무화를 시행했다. 시민들의 입장에선 정부의 오락가락 조치와 말 바꾸기에 신뢰를 잃어 비협조적인 태도를 갖게 되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다만 이들이 원래부터 정부에 일말의 신뢰라도 가지고 있었는지, 협조할 의지가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당장 코로나 사태가 터지기 이전에도 정부의 여러 정책에 반대하는 노란 조끼 시위가 수 차례 발생하며 마크롱과 시민들의 관계는 돌이키기 어려울 만큼 나빠지고 있었다. 사실 프랑스인들의 반골 기질, 좋게 말해 혁명 정신은 어떤 행정부가 들어서건 약해진 적이 없긴 하다.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중요시하는 프랑스의 사회 분위기 상, 어떤 정부든 국민의 삶에 개입한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정부에 대한 불신이 너무 지나쳐서 방역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보건 당국의 지침보다 사이비 의사가 유튜브를 통해 퍼트리는 코로나 루머를 더 신뢰하는 반지성주의적인 모습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대중의 이러한 경향을 누구보다 빠르게 캐치하는 게 바로 언론인데, 이들 중 일부는 코로나 루머를 확대 재생산하는 데에 일조하고 있다. 애초 한 지역 언론은 파리에 첫 확진자가 보고됐을 때도 황색경보*라는 인종차별적 문구를 써가며 사회 분열에 앞장선 바 있다.

*황색경보는 중국 등 아시아계 이민자들이 늘어나기 시작한 19세기 말부터 유럽에 퍼진 루머로, 중국인들이 세계 경제를 지배할 생각으로 진출하고 있다며 유럽 내 아시아인 차별을 부추겼다.


상황을 요약해보자. 2020년 10월 17일 기준으로 프랑스의 누적 확진자는 80만 명을 웃돌고 사망자는 3만여 명에 달한다. 그런데 기간을 9월부터로 좁혀보면 약 45일 동안 50만 명이 넘는 확진자와 3천 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이미 8월 중순부터 2차 파동의 조짐을 보였다는 것을 고려하면 프랑스 정부가 통금이라는 카드를 꺼내 들기까지 두 달이나 걸린 것이다. 그동안 시민들은 저녁 파티와 레스토랑, 바, 클럽 등을 자유롭게 돌아다녔고 언론은 영국, 스페인, 미국 등 다른 나라를 들먹이며 시간을 보냈으며 투르 드 프랑스*는 3주간 전국을 돌며 무수한 관람객들을 끌어들였다.

*프랑스 전역을 달리는 세계적인 사이클 대회

 

2020년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인한 피해는 단순히 전염병으로 인한 생명의 손실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올해 상반기는 전염병의 창궐이라는 특수한 재난 상황에서 그동안 가꿔온 보건/의료 인프라, 행정부의 대응 속도와 방역 프로토콜, 혼돈을 마주한 사회의 단결력을 낱낱이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그런 측면에서 미국과 서유럽 국가들을 위시한, 일명 ‘선진국’들의 볼썽사나운 민낯을 본 세계인들은 여러모로 실망감을 느꼈을 것이다. 이는 특히 서구 강대국들에 불분명한 환상을 지니고 있던 한국인들에게 소소한 충격을 줌과 동시에 상대적 자부심을 느낄 기회를 제공했다. 특히 예술과 낭만의 나라로 포장되어 판타지를 자극하던 프랑스는 이젠 오히려 무질서하고 몰상식한 사회로 조롱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양국의 현실을 비교할 수 있는 유학생의 입장에서, 코로나 사태에서 프랑스가 보여준 무수한 삽질은 변론해줄 부분이 딱히 없다. 다만 유례없는 전염병을 마주한 상황에서 프랑스 사회가 우리와 다르게 선택한 여러 부분을 이해하기 위해선 보충 설명이 필요할 수도 있다.


우선 프랑스 정부가 초반에 마스크 무용론을 주장했던 것은 보건/방역 분야에서 상징적이고 공신력도 있는 국제기구인 WHO의 의견을 반영했다는 명분이 있다. 물론 국내 언론에서도 수 차례 분석했듯이 서구 사회 전반적으로 마스크에 대한 인식이 그다지 좋지 않은 탓도 있고, 애초의 마스크라는 제품의 산업 규모가 작기 때문에 방역을 이유로 수요가 급증해도 공급이 전혀 따라가지 못해 시장 질서가 어그러질 것을 우려했을 것이다.

 

이번 10월의 경우, 어째서 더 빨리 통금 조치를 하지 않았으며 왜 3월 같은 전면적 이동 제한이 아닌 저녁 통금이라는 어정쩡한 조치인지 의문이 들 수 있다. 이 부분은 두 사회의 관점과 가치관의 차이를 알아야 한다. 한국은 효과적인 방역 및 확산 방지를 위해 선제적으로 강수를 두는 방식을 취했는데, 이 과정에서 희생된 개인의 자유와 자영업자들의 피해는 어물쩡 넘어간 측면이 있다. 아직은 사회적 결속과 공동체 의식이 비교적 강한 한국 사회이기에 이렇게 밀어붙일 수 있지만, 프랑스는 전체의 이익을 위해 개인이 희생되는 상황을 극도로 기피한다. 이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유럽 사회를 뒤흔들었던 파시즘에 대한 반감이 크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전염병으로 인해 사망자가 나오는 것보다, 전염병에 대한 공포로 사회가 위축되고 일상생활을 영위하지 못하는 상황이 더 치명적이라는 게 프랑스인들의 전반적인 의견이다. 자칫 생명을 경시한다는 오해를 낳을 수도 있지만, 패닉에 빠지지 않고 건강한 정신을 유지하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물론 Covid-19의 치사율이 그다지 위협적이지 않다고 판단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취합해보면, 프랑스의 현재 상황은 문화적 특징, 가치관, 시민 의식, 교육과 의료 인프라, 정치·사회적 갈등, 기능적 한계 등 다양하고 복합적인 원인들이 얽히고설켜 만들어진 결과로 볼 수 있다. 여느 나라들처럼 프랑스도 장·단점이 골고루 있는 사회이지만, 전 세계적 전염병에 대처함에는 그다지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이와는 별개로 프랑스에 체류하는 한국인으로서는 두 사회의 모습을 비교하며 다양한 차이점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다만, 매일 수만 명의 확진자와 수백 명의 사망자 숫자를 확인하는 것은 이제 너무 지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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