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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옹의 이방인 Jun 19. 2020

아버지가 셋인 베레니스

가족의 개념을 다시 생각해보다

제목에서 여포가 생각났다면 당신은 삼국지를 좀 아는 사람이다. 다행히도(?) 인류학 시식코너 첫 번째 썰의 주인공 베레니스는 그런 패륜의 아이콘과는 다르지만 그만큼 극적인 성장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단순히 이혼과 재혼의 반복으로 생긴 할리우드 셀럽 스타일의 막장 가족 관계가 아닌, 베레니스만의 특이하고 흥미로운 사례를 함께 구경해보자.




너도? 나도! 야 나도 아버지야!


베레니스의 어머니 아니크는 시몬 시리우스 (Simon Sirius)라는 남자와 결혼하여 베레니스를 낳았지만 곧 이혼하고 나탱 (Nathan Norman)이라는 새로운 남자와 동거하며 딸을 키웠다. 세월이 흐른 뒤 시몬은 친자 확인 소송을 제기했고, 베레니스는 28년 만에 본인의 친아버지가 시몬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아니크의 옛 연인 다미앵 (Damien Leborgne)도 28년 만에 자신에게 혈육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아빠인 듯 아빠 아닌 아빠 같은 세 남자와 베레니스 사이의 복잡한 관계가 마침내 밝혀진 것이다.


여기서 다시 한번 정리해보자. 주인공의 풀 네임은 베레니스 시리우스 (Bérénice Sirius)이다. 즉, 이혼 후에도 시몬은 베레니스에게 성(性)을 물려준 법적 아버지이다. 하지만 시몬이 제기한 친자 확인 소송으로 인해 다미앵이 같은 피가 흐르는 생물학적 아버지임이 밝혀졌다. 반면에 실제로 28년 간 베레니스를 기르며 아버지 역할을 한 것은 나탱이지만 그는 아니크와 재혼하거나 베레니스를 입양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베레니스가 아버지라고 부르는 사람은 나탱이다.


이보다 적절한 이미지를 찾을 수 없습니다.


이게 뭔 소린가 싶겠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시몬은 베레니스에게 자신의 성을 물려줬지만 그를 더 이상 딸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시몬의 부모도 베레니스를 자신들의 가족이라 여기지 않는다. 다미앵은 그동안 존재도 몰랐던 혈육에게 큰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아버지의 권리와 의무를 행사하고 싶어 한다. 나탱은 베레니스와 실질적 부녀 관계를 형성하고 있지만 베레니스가 박사과정을 밟으며 이미 시리우스라는 성으로 논문을 게재했기 때문에 그의 커리어에 쓸 데 없는 혼란을 주는 것은 피하고 싶다. 베레니스는 법적 아버지, 생물학적 아버지, 그리고 일상의 아버지가 모두 자신과 관계되어 있다고 인지하고 있다.


과연 베레니스에게 아버지란 무엇일까? 가족의 전통적 형태가 많이 허물어진 현대에는 한부모 가정이나 계부·계모와 양자로 구성된 복합적인 형태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하지만 사회가 인지하는 부모-자녀 관계의 원칙은 결국 직접 낳았거나 가족 관계 증명서에 올려진 경우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베레니스에게 나탱이 생판 남이라고 하기에는, 28년 간 아버지라는 존재의 역할과 기능을 수행했다는 사실을 무시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베레니스는 선택에 기로에 서 있다. 아버지스러운 세 남자와의 복잡한 관계를 유지해야 할까, 아니면 정리해야 할까? 우리가 베레니스의 상황에 놓여 있다면 어떤 결정을 하게 될까? 가족임을 성립하게 하는 요소가 무엇인지, 인류학은 우리에게 질문한다.



제품 설명 : 가족인류학


일반적으로 인류학에서 얘기하는 가족의 요소는 친족과 동맹이다. 즉 피를 나눴거나 혼인을 통한 결합으로 만들어진 관계를 가족이라고 지칭한다. 사회학의 아버지이며 자살론으로 유명한 에밀 뒤르카임 (Emile Durkheim)으로부터 나온 이러한 분석은 인류학의 가족 연구의 베이스가 됐다. 하지만 베레니스의 사례를 연구한 플로렌스 베버 (Florence Weber)는 앞선 두 가지 요소로는 그의 세 아버지들을 설명하기에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의 연구는 생물학적 근거와 사회적 계약 외에도 친밀감이라는 지극히 인간적인 감정 역시 가족이라는 단어를 의미 있게 만들어준다는 사실을 이끌어냈다.


 물론 가족이란 개념의 구성 요소만이 가족인류학의 관심사는 아니다. 그러한 요소들이 어떻게 생성되고, 구성원들에게는 어떻게 적용되고, 역할과 행위는 사회마다 어떻게 다르고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관찰하는 것이 가족인류학의 연구이다. 이 글을 쓰고 있을 때 마침 가족과 관련한 민법이 개정된다는 이슈를 접했다. 찾아보니 민법 제915조, <친권자는 그 자(子)를 보호 또는 교양하기 위하여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다.>라는 조항을 삭제하기로 법무부가 결정했다는 내용의 기사이다 (출처 : 중앙일보). 최근 훈육이란 명분의 가정폭력으로 사망하는 아이들이 뉴스에 자주 언급되면서 이러한 행위에 대한 사회적 리액션이 나오는 상황으로 보인다. 민법 제정 초기에 저런 조항이 버젓이 들어갈 수 있었던 이유는 법이 시대상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시에는 당연하게 여겼던 부모의 역할이 현대에 와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받게 되는 것이다.

가족인류학 또한 연구와 조사를 통해 가족의 전통적 형태와 역할 등이 사실 근대에 만들어진 개념이며 실제로는 시대, 장소, 문화, 정치적 상황 등 다양한 변수를 통해 바뀐다는 것을 알았다. 아버지가 셋인 베레니스가 생각하는 가족과 우리가 생각하는 가족은 그 의미가 전혀 다를 것이다. 그런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이해하는 사회가 된다면, 또한 인류학이 그런 지식을 대중에게 잘 전달한다면 이런 안타까운 일들이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본다.



_ 참고 자료 : Weber, Florence. 《Le sang, le nom, le quotidien : Une sociologie de la parenté pratique》, Aux Lieux D'etre, 2005.

이가영. “부모라도 체벌은 안 돼” 민법서 자녀 징계권 없앤다 [뉴스], 중앙일보, 2020/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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