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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옹의 이방인 Jun 19. 2020

보이지 않는 뭔가가 있다고!

마법, 주술, 영혼, 저승... 썸띵 인비저블에 대한 인간의 믿음

[인류학 시식코너] 시리즈를 구상하고 있을 때, 두 가지 테마는 정말 조심해서 건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늘 다룰 것은 그 두 가지 중 하나, 바로 종교이다. 할 말이 많은 소재인 만큼 투기장이 열리기 좋기 때문에 개인적인 의견은 최대한 배제하려고 한다. 키보드를 쥔 글레디에이터 같았던 스무 살의 내가 불현듯 생각이 나지만.

※소개에 앞서 필자는 종교가 없으며 특정 신앙을 깎아내리거나 혹은 권유할 목적이 없음을 밝힌다.



믿지 않으려 하니 보이지 않게 됐다

신보다 니코틴을 더 자주 찾는 엑소시스트, 존 콘스탄틴 (키아누 리브스 分)

인류학적 관점에서 종교란 무엇일까? 이를 조심스럽게 소개하기 위해 이번엔 내가 즐겨 본 두 픽션을 예로 들려고 한다. 하나는 2005년에 개봉한 DC 코믹스 원작 영화, <콘스탄틴>이다. 극장에선 흥행하지 못했지만 어째서인지 TV의 영화채널에서 심심하면 틀어주는 탓에 볼 사람은 다 본 영화. 줄거리를 간략하게 설명하겠지만 왓챠 플레이나 넷플릭스에서도 볼 수 있으니 오늘 외출할 일 없으면 한번 감상해보자.

어릴 때부터 악령이 눈에 보여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었던 존 콘스탄틴은 자살 시도 후 경험한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지옥과 신의 존재를 알게 된다. 극적으로 소생한 존은 자신의 죄 (자살한 사람은 가톨릭 교리 상 천국에 갈 수 없다)를 만회하기 위해 이승에 떠도는 악령을 지옥으로 돌려보내는 엑소시스트가 되지만, 15살 때부터 입에 달고 산 담배 때문에 어느새 죽음을 눈 앞에 둔 상황이다. 지옥에 떨어질 운명을 피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어느 날, 안젤라 도슨이라는 형사가 그를 찾아와 자살한 자신의 여동생이 실은 악령에 의해 살해당했다며 도움을 요청한다. 사건의 내막에 사탄의 아들 마몬과 그의 강림을 도우려는 또 다른 존재가 있음을 알게 된 존은 여동생 이사벨에 이어 언니 안젤라까지 위협하는 무언가를 저지하기 위해 나선다.


이 영화의 세계관은 기본적으로 오컬트적 요소가 가미된 기독교 판타지이다. 그래서 성경에서 언급되는 신과 사탄의 대립, 천국과 지옥, 천사와 악마라는 개념이 실존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자살을 시도했다가 지옥을 목격한 콘스탄틴이나 강한 영력 때문에 악령의 표적이 된 도슨 형사 등, 등장인물들은 대부분 <인간이 아닌 실체>가 영향을 미치는 삶을 살고 있다. 그런데 안젤라 도슨의 경우, 어릴 때부터 쌍둥이 동생인 이사벨과 같이 악령을 볼 수 있었지만 동생과 달리 그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 10살 즈음부터 부모가 이사벨을 병원에 보내기 시작하자 안젤라는 악령을 본다는 사실조차 믿지 않으려 했고, 결국 정말로 보이지 않게 됐다.


공포는 믿음의 양식이기도 하다. 이말년이 절필할까봐 두려운 나처럼.


안젤라가 자신의 영력을 고백하는 이 장면은 영화 속에서도 중요한 장면이지만, 인류학이 생각하는 '종교'의 정의가 무엇인지 알 수 있는 핵심적인 부분이기도 하다.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어떤 것의 존재를 느꼈을 때, 우리는 <보이지 않는 실체>가 있음을 추측하게 된다. 우리가 그것을 믿으면 존재하게 되고, 믿지 않으면 계속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인류학에게 종교의 핵심은 '믿음'이 인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내는가이다. 종교 스스로의 기본 명제가 '세계를 창조한 절대적 존재가 우리의 운명을 관장한다'인 것과는 사뭇 다른 해석이다. 극 중 죽음이 두려워진 존이 대천사 가브리엘에게 생명 연장을 구걸하는 장면에서 가브리엘 역시 핵심을 분명하게 전달한다.


콘스탄틴 : 내가 신을 덜 섬겼나? 내게 뭘 원하신대?
가브리엘 : 알잖아? 자기희생, 믿음.
콘스탄틴 : 난 신을 믿어!
가브리엘 : 믿는 게 아니고 아는 거지. 봤으니까.


존은 그 실체가 보이기 때문에 아는 것이지, 믿음으로써 보이는 것이 아니다. 종교에서 말하는 믿음이 이성이나 논리의 영역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는 대목이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이지만 인류학에서는 신이나 사후 세계의 존재를 해명하거나 논증할 생각이 없으며, 그럴 필요도 이유도 없다. 인류학의 눈에 비치는 것은 실존 여부를 떠나서 어쨌든 무언가를 믿고, 그 믿음을 근거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가브리엘이 지적했던 자기희생을 마침내 실천한 콘스탄틴의 사후 운명이 바뀌는 후반의 장면은 기독교인의 입장에선 신의 자비와 구원의 증거이지만, 인류학에겐 믿음을 통한 '보이지 않는 무언가'와의 상호작용이 이뤄진 결과인 것이다.



9와 ¾번 승강장을 지나면


18세기 이후 서유럽 사회는 교회가 주도하는 질서에서 점차 벗어나게 됐고, 유럽에서 시작된 과학 혁명이 대륙을 넘어 퍼져나간 20세기 이후에는 대부분의 근대 국가들이 세속적인 사회로 넘어갔다. 하지만 수 천년 간 인류가 공유했던 믿음의 흔적은 현대에도 우리 사회 곳곳에 새겨져 있다. 이해를 돕기 위해 가져온 두 번째 픽션 <해리 포터>를 통해 믿음의 눈으로 본 세계는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현재 우리의 세계에는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는지 알아보자.


개인적으론 영화보다 원작 소설이 더 좋은 <해리포터>. 하지만 저 때의 주인공들은 너무 귀엽다.


세기의 베스트셀러라는 수식어가 전혀 과장이 아닐 정도의 히트작이지만 (흔히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린' 소설이라 한다) 그래도 줄거리를 한번 살펴보자.

사고로 부모를 잃고 아기 때부터 이모의 집에서 자란 해리 포터는 11년 간 계단 밑 벽장에서 살 정도로 온갖 구박을 받는다. 그러던 어느 날 [호그와트]라는 이름의 마법 학교에서 입학 축하 편지를 받으며 따분하고 재미없던 그의 삶에 엄청난 변화가 찾아온다. 해리는 아무것도 모른 체 갑작스레 편입된 마법사의 세계에서, 평범한 일상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경험들을 겪으며 생각지 못한 모험을 하게 된다.


영화로 먼저 접한 사람들이 많겠지만 <해리 포터>의 원작은 영국의 작가 조앤 롤링이 집필한 총 7권의 시리즈로 이루어진 장편 소설이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의 설정 중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판타지 세계와 현실적인 세계를 퍼즐 조각처럼 배치한 방식이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해리를 비롯한 소년·소녀 마법사들은 호그와트 마법 학교에 가기 위해 런던의 킹스크로스 역에서 호그와트 급행열차를 타야 한다. 신입생 해리가 안내받은 장소는 9와 ¾번 승강장이지만 킹스크로스 역에 그런 승강장은 없다. 그런데 해리 또래의 아이들이 짐수레를 밀고 9번과 10번 승강장 사이를 향해 돌연 처박는가 싶더니 어느새 사라지고 없다. 마법사로 보이는 일가족의 도움을 받아 해리도 딱딱한 돌벽을 향해 눈을 질끈 감고 질주하는데, 걱정과 달리 그는 어디에도 부딪히지 않고 호그와트 급행열차 앞에 당도한다. 9와 ¾번 승강장은 마법사들만 찾아올 수 있는 비밀의 장소였던 것이다.


사실  9와 ¾번 승강장의 입구는 8번과 9번 사이에 있다고 한다...


두 승강장 사이의 벽을 보이지 않는 문처럼 통과하여 숨겨진 장소로 들어가는 장면은 종교인류학의 관점에서 상당히 상징적이다. <해리 포터>의 세계관 속에서 마법사들의 구역은 머글 (마법사가 아닌 일반인)의 세계와 같은 곳에 존재하지만, 이 구역은 특정한 입구를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으며 머글들이 우연히 흘러 들어가는 것을 막는 마법이 걸려 있다. 이러한 구분은 인류학에서 종교의 초기 형태를 연구할 때 여러 원주민 사회에서 발견한 체계이다. 신성한(sacré) 영역과 세속적인 (profane) 영역으로 장소를 나누고, 신성 영역에 함부로 들어서는 것을 금지하는 행위가 종교적 속성을 띈다고 본 것이다. 대표적으로 교회나 절 같은 사원이 이러한 영역이며 좀 더 토속적인 형태로는 성황당 (서낭당)을 예로 들 수 있다.

 

하지만 인류학은 계속된 연구를 통해 다수의 사회에서 신성/세속의 구분이 딱 맞아떨어지지 않거나 혹은 어떤 사회에선 그러한 구분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예를 들어 애니미즘 사회에선 주변의 모든 것이 영혼이 깃든 존재이며 동시에 일상의 영역이다. 더 나은 해석을 위해 인류학은 현대의 우리에게도 매우 익숙한 단어인 마나 (Mana)라는 개념을 찾았다. 리니지나 디아블로 등 판타지 세계관의 게임을 플레이해 본 사람이라면 캐릭터의 마법을 쓰기 위해 필요한 마나라는 시스템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멜라네시아 사회에선 마나라는 생명 에너지가 우리 주변의 모든 물체에 깃들어 있고 이것이 주술적인 힘을 구성한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종교는 이러한 힘을 어떻게 이끌어낼까? 인류학자들이 생각한 답은 바로 종교적 의식이다. 종교인류학에서 의식이란 주술적 의미가 담긴 상징의 체계를 통해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행위를 말한다. 다시 작중에서 예를 찾아보자. 해리와 친구들이 호그와트에 처음 입학했을 때 가장 먼저 한 것은 기숙사 배정식이다. 호명된 신입생은 연회장에 홀로 놓인 의자 위에 앉아 마법의 분류모자를 쓰고, 모자는 소년·소녀의 자질과 적성, 그리고 의지를 읽고 알맞은 기숙사를 정해준다. 이 일련의 과정은 합의된 공간 (연회장), 상징적 물건 (마법의 모자), 그리고 특정한 행위 (모자를 쓰고 기숙사를 배정 받음)로 이루어져 신입생들이 본격적인 마법사의 세계로 들어설 수 있게끔 해준다. 기독교의 세례나 불교의 수계식, 또한 무속신앙의 내림굿에서도 같은 요소를 찾을 수 있다. 종교에서 이러한 의식의 실천은 믿음을 현실로 구현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독자와 관객은 해리의 기숙사 배정식을 통해 마법사의 세계로 함께 들어가게 된다.


영역을 분리하고 경계를 통과하거나 특정한 의식을 치르는 행위는 비단 종교적 성격으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단적인 예로 해외에 입국하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국경선 너머 다른 국가의 영토로 들어가려면 외국인은 입국관리소에서 필요한 수속을 밟아야 한다. 대한민국의 경우 육로로 갈 수 있는 외국이 없긴 하지만 공항을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신앙의 세계에선 사회적으로 공유된 상징체계가 이 모든 과정에 논리를 부여했다면, 현대에는 그것이 국제법과 국가 간의 합의라는 형태로 바뀌었을 뿐이다. 이처럼 종교인류학적 관점으로 현대의 세속 사회를 관찰하면 우리가 미처 몰랐던 종교의 산물들을 찾아볼 수 있다. 쉬운 설명을 위해 <콘스탄틴>과 <해리 포터>라는 픽션을 예로 들었지만, 이 글을 읽고 나면 현실에서도 종교의 구조와 기능이 보이는 재미를 맛볼 수 있을 것이다.  



제품평 : 어머! 이건 사야 돼!


개인적으로 종교인류학이라는 과목이 흥미로웠던 이유는, 각각의 종교가 어떻게 다른지 비교하는 게 아니라 어떤 공통점이 있는지 연구하기 때문이다. 이는 인류학이 종교라는 개념을 일종의 보편적 사회 구조로 해석하거나 특정한 기능을 하는 사회 제도의 하나로 보기 때문이기도 하다. 프랑스에서 학교를 다니는 탓에 불어로 수업을 듣는 것이 매우 어려운데, 이 과목만큼은 내게 더 친숙한 한국의 전통 신앙을 떠올리며 이해할 수 있어서 따라가기 수월했던 기억이 있다. 또한 과제를 위해 기독교는 물론 이슬람교, 힌두교의 의식도 공부하면서 종교에 대한 내 편협한 사고를 더 확장할 수 있었던 계기이기도 했다. 스크롤의 압박이 걱정되어 그런 내용들을 소개하지 못해 아쉽지만, 추후에 종교인류학 2편을 쓰거나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를 특집으로 구성해서 못다 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_ 참고 자료 : 로렌스, 프렌시스. 콘스탄틴 [영화], 워너브라더스, 2005.

롤링, 조앤. <해리 포터> 시리즈, 문학수첩, 1999-2007.

Houseman, Michael. « Qu'est-ce qu'un rituel ? », L'Autre, vol. volume 3, no. 3, 2002, pp. 533-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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