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옹의 이방인 Jun 29. 2020

움찔거림의 소중함

당연하지 않은 당연함에 대하여

오늘 나는 아침에 일어나 잠시 운동을 하고 과일 주스를 만들어 마셨다. 샤워를 하고 나와서는 유튜브에서 침착맨 채널의 최근 영상을 틀어놓고 설거지를 했다. 어제 브런치에 쓴 글을 발행하고 다음 글을 위한 자료를 찾다가 점심으로 카레를 해 먹었다. 불 앞에 있었더니 더워져서 창문을 닫고 에어컨을 튼 뒤 다시 브런치에서 글을 쓰고 있다.


방학을 즐기고 있는 학생으로선 딱히 특별할 것이 없는 한나절이다. 네다섯 줄의 첫 문단을 읽은 당신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에겐 이 모든 것이 특별하고 어려운 과정일 수 있다. 그 누군가의 팔다리가 쉴 새 없이 떨리며, 자신이 마음먹은 대로 움직이지 않고, 목도 한쪽으로 꺾여서 돌아가지 않으며,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일어나 앉을 수도, 용변도 제대로 볼 수 없다면 말이다. 오늘은 조금 진중하게,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은 경우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10분짜리 단편 영화의 줄거리를 천천히 읽어보자. 가능하다면 영화의 ost와 함께.


※줄거리에 성적인 묘사가 담겨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rb-wk0ATuvI

Philémon Chante - Je te mange



Take me


극의 장소는 한 장애인 치료센터. 간호사 '마니'는 분홍색 머리의 여성을 휠체어에 태워 어딘가로 데려간다. 화면이 바뀌고 다른 방, 마니는 크레인 같은 기계를 조작하여 짧은 머리의 남성을 휠체어에서 들어 올려 침대에 눕힌다. 꿈틀거리는 남성의 속옷을 벗긴 뒤 얇은 천 이불로 덮어주고 침대를 옆으로 밀어붙이자, 남성은 옆 침대에 누워 있는 방금 전의 분홍색 머리 여성과 마주 보게 됐다. 여성도 알몸에 흰 천을 덮었다. 두 남녀는 손을 잡고 옅은 미소를 띠며 서로를 바라본다.


둘은 부부이고 이 방의 이름은 'Intimacy room', 의역하면 관계의 방이다.


마니는 방을 나가고 이제 두 사람의 살갗은 꼭 붙어 있다. 여성은 자신의 가슴을 만지는 남성의 떨리는 왼손을 끌어당겨 사타구니 사이로 가져간다. 남성의 왼손이 부단히 움찔거린다.


"'관계의 방'에서 도와달라고 하네요.", 동료 간호사가 다른 방에서 일하고 있는 마니를 부른다. 방금 전의 남녀가 있는 방으로 돌아가 보니 남성은 여성의 등에 딱 붙어 허리를 움직이려 애쓰고 있다.

"우리를 더 가까이 붙여줄래요?", 여성이 부탁한다. 떨떠름한 표정으로 남성을 여성에게 더 가까이 밀어주고 다시 나가려는 마니. 하지만 남성은 외마디 소리로 마니를 멈춰 세운다.

"닿지 않아요!", 마니의 동공은 크게 흔들린다. 잠시의 침묵과 고민 후, 마니는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침대에 다가간다.


"미안하지만, 그래요. 여기선 그런 일도 당신의 업무예요.", 그의 상사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한다. "원한다면 언제든지 조합에 불만을 얘기해도 돼요." 잠시 정적이 흐르는 사무실.

"혹시..." 여전히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마니가 묻는다. "모르는 사람의 성기를 잡아서... 그의 아내에게 삽입할 수 있게 도와줘 보셨나요...?"


막 시작한 일에 설명할 수 없는 어려움을 느끼는 마니 (왼쪽).


다시 관계의 방. 남성의 앙상한 몸은 최선을 다해 꿈틀거리고, 여성도 그에 맞춰서 허리를 움직인다. 호흡은 거칠고 근육은 긴장돼 있다.


마니가 돌아와 문을 두드리고 방으로 들어간다. 즐거운 웃음소리가 나는 침대.

"2분만 기다려 주실래요?", 여성이 고개를 들어 말한다. 마니는 구석 세면대에서 잠시 수건을 빤다.

"이제 됐어요." 두 사람의 유희가 끝나자 마니는 천을 들춰 수건으로 남성의 성기 주위를 닦아준다. 그리고는 크레인에 태우기 위해 남성을 일으킨다.

"고마워요."

남성과 마니는 눈이 마주쳤다. 마니의 동공은 또다시 흔들린다.

"천만에요..." 뒷말을 삼키는 마니. 그는 어찌해야 좋을지 알 수가 없다.


이제 마니는 남성의 휠체어를, 다른 간호사는 여성의 휠체어를 끌고 돌아간다.

"잘 끝났어요?", 동료 간호사가 묻는다.

"네..." 많은 감정을 느끼고 있는 마니. 방으로 돌아가는 복도에서 여러 환자들의 다양한 모습이 스쳐 지나간다. 신문을 보는 환자, 전화를 하는 환자, 음악을 듣는 환자, 빗질을 하는 환자, 수집한 모자가 벽에 빼곡히 걸려 있는 환자... 그들 모두가 휠체어에 앉아 있지만, 모두가 움직이고 있다.

 


제품 설명 : 몸과 움직임의 인류학


그동안 인류학 시식코너를 통해 설명한 인류학의 테마는 가족, 종교, 경제로 전부 문화나 제도의 형태였다. 반면에 이번에 소개한 영화는 분야가 좀 다르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테이크 미 Take me (2014)> (불어 제목 : Prends-moi)라는 제목의 이 단편은 퀘벡 출신의 두 감독 아나이스 바르보-라발레트와 앙드레 투르팽이 합작한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장애인 치료 센터에서 일하게 된 간호사가 지체 장애 부부의 성관계를 도와주는 일을 맡게 된다는 다소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에서 인류학이 다룰 수 있는 연구 대상은 무엇일까.


우리는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을 매우 당연하게 여긴다. 침대에서 일어나고, 등이 가려우면 긁고, 허리를 숙여 떨어진 물건을 집는 일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특별함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잠시, 누군가에게 '움직이지 마!'라는 명령을 들었다고 가정하고 딱 1분만 모든 움직임을 멈춰보자. 시~작!


오늘의 활동 과제 :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과연 당신은 1분 간 전혀 움직이지 않았을까? 빛에 반응하는 동공, 심호흡으로 들썩이는 횡격막, 움직임을 멈추기 위해 힘을 준 모든 근육은 사실 단 한순간도 멈추지 않았다. 의식하지 못하지만, 우린 매 순간 수많은 움직임을 통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이 영화를 통해 인류학이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바로 이 움직임의 중요성이다. 그동안 사회의 구조나 기능, 혹은 제도에 집중하던 문화인류학은 문화를 구성하는 근본적인 요소를 놓친 것이 아닌지 성찰했다. 인류가 지구 상의 수많은 장소에서 각자의 멋진 문화를 꽃피울 수 있었던 것은 산과 바다를 건너 이동하고, 다른 사람과의 신체적 교감을 이루었기 때문임을 상기한 것이다.


몸과 움직임에 주목해보면 그곳에 문화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발을 대각선으로 벌리며 걷는 팔자걸음을 종종 양반걸음이라고 부르는데, 이를 통해 조선 시대 양반들의 걸음걸이에 계급 사회의 문화 요소가 있었음을 유추해볼 수 있다. 하와이 원주민들의 전통 춤인 훌라에는 문자가 없던 시절에 지식을 전달하기 위해 동작으로 대신한 역사와 문화가 담겨 있다. 특히 손동작은 수화의 역할을 한다고 한다. 프랑스에서는 볼을 맞대며 뽀뽀 소리를 내는 인사법을 비주 Bisou라고 하는데, 지역에 따라 횟수나 순서가 다르다. 이처럼 행위에는 의도가 있고, 그 사회의 사고방식과 가치관이 반영되고 있는 것이다.


영화의 제목 <테이크 미 Take me>는 한국어로 번역하기 좀 애매하다 (불어 제목도 그렇다). 맥락에 따라 다양한 의미를 갖는 표현이라 한국어로 된 영화 소개를 찾아봐도 그냥 발음만 옮겨 놓았다. 필자는 영화를 다 보고 나서, '나를 저기로 데려다주세요'라고 해석하기로 했다. 극에 등장하는 부부는 자신들의 의도를 행위로 옮길 수 없는 상황에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리고 장애를 가진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모두 움직이려 하고 있고, 살아있음을 격렬히 보여주고 있다. 그 의지와 결실을 연구하는 것이 몸과 움직임의 인류학이다.



곁들일 이야기 : 장애인과 성()


이  영화가 관객들에게 전달하려는 감정은 간호사 '마니'의 표정과 눈빛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는 왜 이렇게 당황해하는 걸까? 일반적으로 성적인 것 (sexuality)은 현대 사회에선 일상의 대화 주제로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성욕과 성관계, 성적  쾌락은 지극히 사적인 영역인 동시에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 박혀 있는 종교적 타부 (taboo)이기 때문이다 (타부는 멜라네시아  원주민 사회의 언어로 '금지된 것'을 뜻하며 '터부시 하다'라는 표현의 어원이기도 하다). 연출의 측면에서도 성기를 그대로  드러내거나 성관계 장면을 카메라에 담아서 관객에게 포르노그래피를 연상하게 만든다. 심지어 부부 관계의 현장에 뜻하지 않게 개입해야 하는 마니는 마치 금단의 영역에 서 있는 듯한 불안감을 느낄 것이다.


당연한 그들의 욕구, 당연하지 않은 삼자 구도.


여기에 영화의 주제 의식인 '장애인'이 더해지면서 마니의 당혹감은 극대화된다. 비장애인이 기준인 사회에서 장애인을 바라볼 때는 아무래도 불편한 조건과 어려운 상황에 초점을 맞추게 되고, 그들도 똑같이 가지고 있을 성욕과 그것을 해소하는 일은 논외이기 때문이다. 장애인 치료 센터에서 일하는 주인공조차 그러한 현실을 마주했을 때 매우 난감해하는데, 하물며 장애인과의 접점이 많지 않은 사람들은 어떨까? 다소 당혹스러울 수 있는 이러한 스토리와 연출을 통해 영화는 '장애인과 성'이라는 담론이 여전히 부족한 현대 사회를 꼬집고 있다. 실제로 많은 장애인 관련 단체에서는 '사회가 장애인의 성욕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 같다'라는 의견을 내고 있다. 하지만 터부시 되는 주제를 더 과감하게 언급할 수 있어야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모두 저마다의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사회가 되지 않을까? 오늘은 10분만 더 시간을 내어 타부 taboo와 마주해보자. 한글 자막은 없지만 문제는 없을 것이다.


https://vimeo.com/274546268



참고 자료 : 바르보-라발레트, 아나이스. 튀르팽, 앙드레. <테이크 미 Take me (Prends-moi)>, François Bonneau (By-Pass Films), 2014

김민경, "장애인도 성이 있다", 복지타임즈, 2005/10/03

이현정. <몸과 아픔에 대한 비판적 탐구와 실천>, 권숙인 외 18명. 《현대문화인류학》, 2018, pp.331-333

매거진의 이전글 선물을 가장한 폭탄돌리기 경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