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맞춤법 지랄밭이 터졌다.
내가 속한 회사는 몇 천명의 직원이 소속된 기관인데, 사람이 많다보니 상사 유형도 참 다양하다.
밥 먹는 것에 민감한 상사, 맞춤법에 민감한 상사, 예절에 민감한 상사.
내가 모시는 상사는 이 모든 것의 총체라고 할 만큼 다양한 지랄을 시전하는 분이셨는데,
부임 초기, 전 직원들이 마음 고생을 심하게 했다.
매주 월요일 아침, 직원들이 나누는 대화 내용은 늘 한결 같았는데 내용인 즉슨
"오늘 부장님 기분 어떠시디?"
"별로던데...."
"아유 참... 주말에 사모님이랑 다투셨나..." 등의 말들이었다.
직원들은 주말을 보내고 온 부장님의 똥 씹은 얼굴의 연유를
부장님의 개인 사정에서 찾았으나,
점차로 '내가 뭘 잘못했나..'하며 자신의 과오를 파헤치는 슬픈 방향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나 역시도 부장님의 다양한 지랄밭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썼는데
그 와중에 '맞춤법 오류 투성이 딸의 편지'를 발견하곤 한방 맞은 느낌이었다.
<리얼리티 트랜서핑>이란 책에 보면 이런 내용이 있다.
펜듈럼(=대중의 생각)에 맞서 싸우며 싸울 필요가 없다.
혐오감을 느끼고 부정적인 생각을 하면
그 원치 않는 일은 우리 삶 속에 현실화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펜듈럼과 싸우는 것은 헛수고다.
저항하지 말고그냥 지나가게 하라.
그러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그냥 다른 파도를 골라타면 된다.
더 많은 행복과 풍요로 넘실되는 파도를 골라 그 위로 올라타라.
억지로 애쓰지 말고 그저 선택하라.
내가 원하는 인생트랙, 파도로 옮겨타면 되는 것이다.
'짜증내는 상사가 바로 나를 끌어내리는 펜듈럼이었구나.
펜듈럼에 동조할 것이 아니라 전혀 반응하지 않거나 이상하게 반응해버려야하는데!'
이후 상사가 지랄을 시전할 때면,
웃긴 상상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마치 <피지컬: 100>에 나올법한 엄청 건장한 체격의 소유자로
팔짱을 뀐 채로 룰루루 거리고 있고,
상사는 정말 tiny tiny한 쪼꼬미가 되어서
새끼 병아리처럼 삐약삐약거리는 상상.
때로는
남태평양의 어느 한적한 휴양지에서
상사가 느긋하게 휴식을 취하는 상상을 하며
그가 만족감 속에 있는 장면을 그렸다.
그랬더니 정말
상사의 짜증에 어쩔 줄 몰라하던 에너지에 휩싸이는게 아니라
전혀 다른 에너지에 올라탈 수 있었다.
오늘도 상사가 짜증 폭탄이 떨어졌는가?
그렇다면 상대방의 짜증이라는 에너지에 동조하지말고
유머감각과 상상력을 발휘해보자.
지금 우리는 얼음 꽁꽁 남극에 있고,
짜증을 내는 상사는 뒤뚱거리는 펭귄이라고 말이다.
그럴 때 나를 감싸던 에너지는 유쾌해질 것이며
상사의 에너지 또한 빛깔이 바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