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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와우 Jan 15. 2024

나의 몸매에 상관없이 나의 몸을 사랑한다

엄마, 부탁이 있는데...

늦은 밤, 침대에 누워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고 있는데

큰 아이가 쭈뼛거리며 입을 엽니다.


도통 볼 수 없던 아이의 얼굴이 낯설어 

왜 그러냐 물어보았죠.


"응, 뭔데?"


"있잖아............"

살 좀 빼주면 안 돼?



아이가 던진 한마디에 

온몸이 정지된 듯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짐짓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아이에게 되물었습니다.

"엄마 많이 뚱뚱해?"


다소 머쓱한 얼굴로 아이가 답하더군요.

"아~~~~~주 쪼금...."


모르는 척 계속 책을 읽어내려갔지만

머릿속이 그저 하얬습니다.


아이에게 이런 말을 듣게 될 줄이야.

엄마 인생 8년 동안 이런 순간은

단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했는데.........


엄마의 충격 어린 낌새를 알아챘는지

아들이 뒤늦게 수습을 시작합니다.


"아니야 아니야.

 엄마 안 뚱뚱해, 살 안 빼도 돼"


저 순수한 영혼이 

마음에서 우러나오지도 않는 말을

내뱉진 않았을 텐데 싶은 마음에,


책을 한참이나 더 읽어준 뒤

무심한 듯, 그러나 의도적으로 물어보았습니다.


"엄마 많이 뚱뚱해?"

역시 한번의 망설임 없이 아들이 답하더군요.


"응, 조금.

 아.... 아니야 아니야.... 하나도 안 뚱뚱해"


하...................

사실이었습니다.

아이의 눈에 비친 엄마의 모습은

꽤나 뚱뚱했나 봅니다.


아이와 함께한 일상을 헤집어 봅니다.


'맞아,

 밥 많이 먹고 산처럼 불러온 배를

 아이한테 장난처럼 뵈줬었지?


호호호~ 엄마 배 좀 봐.

꼭 임신한 것 같지? 우하하하'


하..........

아이 앞이라도 그래서는 안되는 거였는데......



다음 날부터 바로 다이어트에 들어갔습니다.

아이를 두고 운동시설에 따로 갈 순 없으니

식단 조절을 먼저 시작했습니다.


간헐적 단식을 시작하며  마시기 시작한  

'그린스무디 다이어트'로 결정했습니다.


책장에 꽂혀있던 '10 Day 그린스무디'책을 꺼내놓고

초록 잎과 사과, 바나나를 수북이 쌓아놓고

블렌더를 요란스럽게 돌렸습니다.


10일간 일반식이 아닌 그린스무디 음료만 마시며

몸의 독소와 체중을 동시에 빼는 다이어트인데

매년 1번정도 해왔기에 이번에도 고민없이 택했지요.


어느덧 식사 시간,

아이가 묻습니다.

"엄마는 왜 안 먹어?"


"엄마는 이제 밥 안 먹을 거야.

 네가 엄마 살쪘다고 했잖아"


하.. 이렇게 유치찬란하게 나가고 싶지 않았는데..


마음과 달리, 아니 마음에 맺힌 말을 

정제 없이 아들에게 쏟아냅니다. 


아들이 황급히 외치더군요.

"아니야 아니야 엄마 안 뚱뚱해......"

"쳇, 어제 몇 번이나 물어봤는데

 너가 계속  뚱뚱하다고 했거든!!!!"


그린스무디 다이어트를 하는 10일 동안

이런 유치찬란한 도돌이표 대화가 연일 계속되었고

아이에게 내뱉은 투정만큼

체중은 4kg이 빠졌습니다.


항상 불러있던 배는 

다소 가라앉았고

아이와 마주 앉아 정상 식사를 할 수 있게 되었지요.


하지만 예상치 못한 복병이 터졌습니다.

바로 코로나19.


아이와 유치찬란하게 신경전을 하며 

진행했던 다이어트는

2 달여 동안 집콕 생활을 하며

계속해서 먹어댄 탓에 다시 원점이 되었습니다.


하아.......... 지져 스...........................................


하지만 모든 것에는 장단점이 함께 있는 법.


집콕하며 이 책 저 책 많이 읽게 되었고

오프라 윈프리의 

'내가 확실히 아는 것들', '위즈덤'이란 책을 보게 되었죠., 


살이 빠지지 않는 데는 

많이 먹고 적게 움직이는 것 외

'감정적 요인'이 있을 수 있다는걸요.

'나는 가치 있는 인간이 아니다'라는 식의 생각말이죠


그러다 브런치에서

한 작가의 글을 읽게 되었어요.

'뚱뚱한 여자라 자주 슬펐다'라는 글이었는데

아래 같은 내용이 있었어요

"날씬하면 끝장나게 행복할 것 같아.
길 가다가 예쁜 옷이 있으면
사이즈 걱정하지 않고 살수 있고,
앉으나 서나 거리낄 지방이 없으니
몸은 얼마나 자유롭고 가벼울까?
한여름에는 비키니도 입을 수 있겠지

무엇보다 나는 자신감이 넘칠거야
세상을 지금보단
더 적극적인 자세로 살 것이 분명해
매 순간이 날씬한 내가 꾸려가는
완벽한 나날이겠지?
그때는 애인도 있을거야
지금은 누구도 만날 수 없어
내가 날씬해졌을 때
준비되었을 때"

한참을 주절거리던 내게 지인이 말했다.

"나는 평생을 날씬하게 살았어!
  네 말대로라면
  날씬한 나의 삶은
  완벽해야하는데 왜 그렇지 않지?
  그렇담 나에게 문제가 있는거니?

  '넌 지금 충분히 괜찮아'
  '뚱뚱해도 자신감있는 사람 많아'같은   
  늘상 들어온 말을 예상했던 내게
  지인의 말은 충격이었다.

  저 사람은 날씬하니까 문제없고
  나는 뚱뚱하기 때문에
  모든 문제가 발생한다고 생각했다.

  날씬함이 언제나
  완벽하고 자신감 넘치는 삶을
  살아가게 만들어주지는 않는데
  왜 그것을 이렇게 자주 잊어버릴까.

  - 뚱뚱한 여자라 자주 슬펐다 中

작가의 글을 보고

그 어떤 자기계발서나 다이어트책보다 충격을 받았어요.


코로나로 인한

길어진 집콕으로 인해 모든 것이 느슨해진 상태.


멀찌감치 치워놓았던

'아주 작은 습관의 힘' 책을 꺼내

'정체성' 부분을 다시 읽어보았습니다.

                                                                                                                         

                                                                            

수년간 제 스스로에게 

어떤 이야기를 반복해서 들려주었는지

떠올려보았습니다.


'나는 날씬하지 않아' 

'나는 키가 작아'

'내 말투는 어른스럽지 못하고 늘 아이 같아'

'나는 왜 말 끝맺음이 분명치 못하고 흐리멍텅할까'

'어쩜, 배 나온 것 좀 봐, 임산부도 아니고....'

'나는 왜 이렇게나 가슴이 큰 걸까.... 부끄러워...'


끝없는 부정적인 메시지를

스스로에게 해주고 있었음을 느꼈습니다.


자신이 바라는 최고의 모습이 되려면

자신의 믿음들을 끊임없이 편집하고

자기 정체성을 수정하고 확장해야만 한다는 부분에

밑줄을 그었습니다.


다음 날 

모처럼 일찍 일어나 운동화를 신고 나갔습니다.

동네에 인접한 산으로 향했죠.


'다이어트를 해서 날씬해지고 말겠어'가 아닌

'나는 매일 아침 동네 산을 오르내리는 사람이야'라고

나의 정체성을 정하고 하루를 시작합니다.



'나는 이런 것을 '원하는' 사람이야'가 아닌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는 말을 나에게 건네봅니다.


한 걸음씩 뗄 때마다

늘 숨기고 감추려 했던 가슴을 의식적으로 펴고

위축되고 굽어있던 어깨도 편안히 내려줘봅니다.


아이 말투 같아 늘 부끄러워했던 제 목소리로

나에게 나직이 말을 건냅니다.

"내 몸매에 상관없이 나의 몸을 사랑한다.

 나라는 사람이 깃들어 사는 나의 몸에 고맙다"


9살 아들의 충격 발언으로 시작한 다이어트.

나를 돌아보게 하는 견인차가 되어주었습니다.


나의 몸을 미워하지 않지 않고

나의 몸과 싸우지 아니하는 나,

내 몸을 사랑하는 나를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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