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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벗 Aug 20. 2023

바위와 새

새는 나무 밑에 있는 둥그렇고 널찍한 바위가 마음에 들었다. 바위 위에 움푹 들어간 틈에는 비가 그친 다음 날까지 물이 고여 있었다. 바위는 새가 마음껏 목을 축일 때 기뻤다. 나무에서 떨어진 도토리도 새의 차지였다. 바위는 새가 도토리를 맛있게 쪼아 먹을 때 기뻤다.


새는 바위를 기쁘게 해주고 싶었다. 바위가 좋아할 만한 걸 선물하고 싶어. 이곳저곳 날아다니던 새는 꼭 바위처럼 생긴 작은 조약돌을 찾았다. 바로 저거야.

새는 작은 부리로 조약돌을 물고 바위에게로 날아갔다. 새의 부리가 작았기 때문에 조약돌을 몇 번이나 놓쳤고 새는 조약돌을 놓칠 때마다 놓친 조약돌을 찾아 같은 곳을 맴돌았다. 드디어 조약돌을 물고 바위까지 도착했을 때는 주둥이 안쪽이 모두 헐어서 얼얼할 지경이었다.


바위야, 너를 닮은 조약돌을 찾았어. 예쁘지 않니?


바위는 불같이 화를 냈다.

어디에나 굴러다니는 조약돌을 가져다주고 나에게 기뻐하라는 거니? 이런 건 선물이 될 수 없어.


새는 몹시 슬펐다.

잘 봐. 이 조약돌은 너의 동글동글한 모습을 꼭 닮았잖아.

바위는 물러서지 않았다.

나를 이렇게 작고 하찮은 것과 비교하다니 너는 나를 무시하고 있었어.

새는 뭐라고 더 얘기하고 싶었지만 주둥이가 쿡쿡 쑤시고 너무 속상해서 더 이상 얘기할 수 없었다. 어쩌면 바위가 옳을지도 몰라. 바보같이 그런 생각을 못하다니.

새는 밤새도록 슬피 울었다.

주둥이가 좀 아물자 이번에는 바위가 정말 좋아할 선물을 찾아 나서기로 결심했다.


새는 다시 몇 날 며칠을 돌아다니다가 빨갛고 예쁜 열매가 열리는 나무를 발견했다. 빨간 열매는 게다가 달착지근한 즙이 가득했다. 이 열매를 정말 예쁘고 맛있는 걸. 흔하지도 않고. 이 열매를 가져다주면 바위가 정말 좋아할 거야. 새는 열매를 입에 물고 먼 길을 다시 날아갔다. 열매는 조약돌처럼 무겁지는 않았지만 거친 나뭇가지는 이번에도 주둥이 안에 날카로운 상처를 냈다. 이미 지친 날갯죽지는 날갯짓할 때마다 욱신거렸다.


마침내 바위에 다다른 새는 열매를 바위 위에 올려놓고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바위야 네가 좋아할 만한 선물을 찾았어. 흔하지도 않고 아주 예쁜 선물을 말이야.

바위가 말했다.

이따위 쭈글쭈글한 열매가 예쁜 선물이라고?

넌 어째서 나에게 시들어버린 열매를 가져다주는 거지?

바람이 불어 열매가 바닥에 떨어졌는데 바위는 열매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다. 새의 눈에 이제는 쭈글쭈글해진 열매가 들어왔다.


새는 항변할 기운도 없었다. 마지막 힘을 다해 지친 날개를 파닥여 바위 위로 드리운 나뭇가지로 날아올랐다. 그 날밤 새는 마지막 숨을 쉬었다.


다음 날 바위 위에 차가운 새가 떨어졌다.

바위는 나지막이 지껄였다.

난 따뜻한 네가 좋았는데.

멀리 날아다니는 것보다 늘 그늘이 드리워 차가운 내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게 좋았을 뿐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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